지난해 12월 美 데이터센터 공사비 35억 7000만 달러로 사무실 앞질러
건설수주 잔고 3분의 1이 데이터센터, 한국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엔 '최대 호재'
건설수주 잔고 3분의 1이 데이터센터, 한국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엔 '최대 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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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美 건설시장 역전, '사람의 공간'에서 '컴퓨터의 공간'으로
미국 건설판에서 사상 처으으로 역전이 일어났다.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 집계 결과, 2024년 12월 미국의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액은 35억7000만 달러(약 5조3200억 원)를 기록했다. 같은 달 사무용 빌딩(오피스) 건설 지출 34억9000만 달러(약 5조2090억 원)를 8000만 달러(약 1190억 원) 차이로 따돌린 수치다. 블룸버그통신이 16일(현지시각) 이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이미지 확대보기4년 만에 5배 팽창… 터너 건설이 증명한 '데이터센터 르네상스'
이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한 곳은 현장이다.
미국 최대 종합 건설사 중 하나인 터너 건설(Turner Construction Co.)은 2024년 한 해 동안 총 94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2020년과 비교하면 4년 만에 5배 이상 팽창한 수치다.
수주 행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들어서도 터너 건설은 인디애나주에 들어설 메타(Meta) 데이터센터(공사비 100억 달러, 약 14조 9200억 원) 시공사로 선정됐다. 현재 이 회사 전체 수주 잔고의 3분의 1 이상이 데이터센터 공사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Jones Lang LaSalle)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건설 단가는 메가와트(MW)당 1100만 달러(약 164억 원)로 2020년(800만 달러, 약 119억 원) 대비 37% 이상 상승했다. 이 중 전기 시스템 구축에 투입되는 비용이 전체의 약 38%를 차지한다.
인력구조도 판이하다. 규모가 비슷한 오피스 현장에는 약 300명의 숙련공이 투입되지만, 데이터센터 현장에는 최대 800명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70~80%는 기계·전기 설비 전문가다. 24시간 무중단 운영을 위한 이중화 전력망과 대형 냉각 설비 설치 때문이다.
빅테크와 사모펀드의 '인프라 쟁탈전'
이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두 개의 자본 집단이다.
첫 번째 집단은 하이퍼스케일러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Google), 아마존(Amazon)이다. 이들은 전력과 용수가 풍부한 지역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메타 한 곳만으로도 터너 건설의 연간 수주액이 수십조 원대에 이른다는 사실이 그 규모를 방증한다.
두 번째 집단은 글로벌 사모펀드·자산운용사다. 블랙스톤(Blackstone), KKR, 브룩필드 자산운용 등이 데이터센터를 '10~15년 장기 임대 계약에 기반한 수익형 부동산'으로 규정하고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 기업 CBRE 그룹 보고서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전력 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 계약 체결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수익 구조를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JLL 데이터센터 부문 공동대표 앤디 크벵그로스(Andy Cvengros)는 "AI가 반복적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사람이 필요한 사무 공간은 줄어드는 반면, 그 처리 부하를 받아내야 할 데이터센터 수요는 더 빠르게 늘어나는 '자기 증식 구조'가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성장의 그늘, 전력난과 지역 반발
투자 열기의 이면에는 마찰도 쌓이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가 지역 전기요금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시간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건설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데이터센터 운영사가 자체 발전 시설을 갖추거나 전력망 확충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성장통(成長痛)'으로 해석한다. AI 모델이 고도화될수록 필요한 연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에서, 전력 인프라와 지역사회 갈등 관리가 향후 10년 데이터센터 시장의 '병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SK하이닉스에 보내는 '수요 확증 신호'
미국 건설 통계 역전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HBM 수요 폭증의 물리적 근거가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한 동(棟)에 들어가는 AI 가속기(GPU·TPU) 수량은 수만 개 단위다. AI 가속기 한 개에는 현재 세대 기준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6~8개가 탑재된다. 미국에서만 메타·MS·구글·아마존이 경쟁적으로 데이터센터를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공급 계약 파이프라인이 최소 3~5년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물리적 근거가 된다.
SK증권·IBK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 리포트(2026년 1분기 기준)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CAPEX 규모가 2025~2027년 합산 기준 1조 달러(약 1492조 원)를 넘어설 경우, HBM 수요는 현재 예상치의 30~40% 추가 상향 여지가 있다"고 추정했다.
둘째, 삼성전자의 HBM4 양산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3E 공급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진 상태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투자가 2026~2027년에도 이어진다면, HBM4 양산 시점을 선점하는 기업이 차기 사이클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따르면 HBM4 개발은 현재 일정대로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HBM4 조기 양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으며,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을 타고 시장 주도권 탈환 전략을 실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의 데이터센터 건설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HBM 구매 계획이 단기에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로서는 품질 이슈를 해소하면서 HBM4 전환을 앞당기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셋째, 건설·전력·냉각 밸류체인에서 국내 기업의 기회 확대다.
데이터센터 건설 단가의 38%가 전기 시스템이라는 JLL 데이터는 한국 전력 설비·냉각 기업들에게도 의미 있는 신호다. 국내 전력기기·냉각 설비 수출 기업들이 미국 데이터센터 공급망에 편입될 경로가 넓어지고 있다.
'컴퓨터의 도시'가 '사람의 도시'를 앞서는 시대
오피스 빌딩은 사람이 모여야 지어지고, 사람이 떠나면 빈다. 데이터센터는 AI 모델이 업그레이드될수록,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더 많이 지어야 한다.
미국 건설 통계가 보여준 역전은 단순한 지출 비교가 아니다. AI 연산 수요가 인간 업무 공간의 수요를 구조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력난과 지역사회 갈등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도, 방향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이 흐름은 위협이 아닌 기회다. 단, 그 기회의 문은 HBM 품질 경쟁력과 차세대 제품 전환 속도라는 두 개의 열쇠로만 열린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