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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끄고 맥주도 미지근하게... 세계 에너지 배급제 충격[이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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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끄고 맥주도 미지근하게... 세계 에너지 배급제 충격[이란 전쟁]

호르무즈 봉쇄로 원유 20% 차단·IEA 경고... 에너지 의존국 한국 원가 쇼크
유가 폭등에 세계 각국 에너지 배급제...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공급 충격"(IEA)
이란 전쟁의 여파로 중동발 원유·천연가스 공급이 사실상 멈추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졌기 때문이다. 배럴당 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각국 정부는 시민의 일상을 직접 통제하는 강제 절약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이란 전쟁의 여파로 중동발 원유·천연가스 공급이 사실상 멈추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졌기 때문이다. 배럴당 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각국 정부는 시민의 일상을 직접 통제하는 강제 절약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한국 산업계에서 "1970년대 이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중동발 원유·천연가스 공급이 사실상 멈추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졌기 때문이다. 배럴당 유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각국 정부는 시민의 일상을 직접 통제하는 강제 절약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이번 위기가 단순한 가격 충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처리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결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 상황을 "공급 측면에서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사태"로 규정했다.

이란 전쟁발 에너지 위기에 따른 아시아 주요국 긴급 조치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이란 전쟁발 에너지 위기에 따른 아시아 주요국 긴급 조치 현황.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봉쇄가 촉발한 '공급 절벽'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0(현지시간)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각국 정부가 강제 절약 조치와 배급제 도입에 잇달아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르시아만 입구에 자리한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이 집중되는 병목 구간이다. 이 관문이 막히면서 중동산 원유를 주로 수입해온 아시아·유럽 국가들은 즉각적인 에너지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이번 공급 충격의 규모는 19731차 오일쇼크,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2차 오일쇼크와 비견된다. 당시에는 OPEC의 수출 금지나 혁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선택적'이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중동산 원유 수출 전반을 물리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한층 크다는 것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수요 조정에 수개월이 걸렸지만, 지금은 시장 반응 속도가 훨씬 빠른 만큼 초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시간이 매우 짧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시아, '전시 경제' 수준 절약 강행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사실상 비상경제 체제에 돌입했다.
방글라데시의 에어컨 사용 제한은 전기 냉방으로 실내 온도를 25도 아래로 낮추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 것으로, 폭염 속 에너지 배급의 역설적 상황을 보여준다. 인도에서는 LPG 공급이 크게 줄면서 결혼식 케이터링 업체들이 숯과 장작을 대체 연료로 쓰거나 메뉴를 대폭 줄이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전기 인덕션 조리기가 일시 품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유럽도 가격 통제·소비 제한 경쟁


에너지 자원을 자체 조달하는 미국이나 노르웨이와 달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도 파생상품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의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영국 에너지부는 음식점과 술집()에 야간 시간대 냉장고 전원을 끄도록 권고했다. 이에 대해 영국 주류업계는 "상온의 맥주를 손님에게 내놓으라는 것이냐"며 즉각 반발했다. 슬로바키아는 연료 사재기와 국경을 넘어 싸게 기름을 사가는 이른바 '연료 원정 구매'를 막기 위해 경유 판매량을 제한하고 외국 차량에는 더 높은 가격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가격 통제 조치도 잇따랐다. 독일은 주유소가 하루 한 차례 이상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묶었고, 프랑스는 과도한 가격 인상 주유소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헝가리는 연료 가격 상한제를 시행 중이며, 포르투갈은 가정과 기업 모두를 대상으로 전기 요금 상한선을 법제화했다.

IEA "가격 보조금은 독약... 수요 감축만이 해법"


IEA는 이 같은 공급 측 보조금과 가격 규제가 오히려 수요 감소를 막아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구는 지난 20일 성명에서 "재택근무 확대, 항공 이용 자제, 고속도로 제한 속도 시속 10km 하향 조정 등 수요를 직접 줄이는 조치만이 이번 위기의 근본적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IEA 조사에서 전 세계 석유 소비의 45%가 운송 부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이동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어떤 공급 대책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IEA의 권고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한 에너지 전략 연구자는 "속도 제한이나 항공 자제 같은 수요 조치가 개인 수준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정부의 강제력 투입 여부가 이번 위기의 단기 해법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카디건 리더십" 재소환... 정치 불안과 가짜 절약 장치 기승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의 절약 강도가 1970년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카디건 차림으로 TV에 등장해 국민에게 난방 절약을 호소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지금은 에너지 효율이 개선된 기계와 자동차가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고, 태양광·풍력 등 대체 에너지원이 다양해진 덕분이다.

그러나 강제 절약 정책이 정치적 마찰로 번지는 양상은 1970년대와 닮아 있다. 필리핀에서는 운송 노동조합 피스톤(Piston)이 연료세 면제와 운임 인상을 요구하며 도심 시위에 나섰다. 2018~2019년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이나 2022년 에너지 가격 급등을 계기로 폭발한 스리랑카 정권 퇴진 운동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제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다.

위기 속에 편승한 사기도 기승이다. 독일과 인도네시아에서는 USB 동글이나 자석을 차량에 꽂으면 연비가 오른다고 주장하는 가짜 절약 장치 광고가 급증했다. 독일 자동차연맹 ADAC는 자체 실험을 통해 "이 제품들은 표시등만 깜빡일 뿐 실제 연료 절감 효과는 전혀 없다"며 소비자 피해 주의보를 발령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 90%... 韓 경제에 이중·삼중 충격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이번 사태는 충격파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물가 상승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국내 생산자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내수 소비를 위축시킨다.

둘째, 제조업 원가 급등이다. 전력 다소비 업종인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한국 주력 산업은 에너지 원가가 오르는 순간 수출 단가 경쟁력이 즉각 저하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국내 제조업 생산 원가는 평균 0.30.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셋째, 경상수지 악화와 환율 상승의 악순환이다. 에너지 수입액이 늘면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고, 이는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을 부추겨 다시 수입 물가를 높이는 구조적 악순환을 만든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보다 0.51%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계에서는 공장 가동률 조정과 재택근무 확대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전기·가스 요금 인상 압박과 민생 보호 사이에서 정책 방향을 고심 중이다.

글로벌 에너지 절약 운동이 한국에 주는 3가지 핵심 메시지


첫 번째는 "가격 통제보다 수요 감축"이다. IEA가 유럽의 가격 상한제와 보조금에 대해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공개 경고한 것은 한국 정책 당국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정부가 전기·가스 요금을 인위적으로 억누를 경우 수요 감소 유인이 사라지고, 공공 재정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를 고려하면 에너지 가격 현실화와 저소득층 선별 지원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두 번째는 "아시아식 강제 절약"이다. 기업들도 선제적으로 에너지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가 공급 위기 앞에 주 4일 근무제와 에어컨 금지령을 꺼낸 것은, 에너지 공급망이 끊겼을 때 경제 활동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극단적 리스크를 실증한다. 한국 기업들은 지금이라도 중동산 원유·가스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중장기 에너지 전략을 점검해야 한다. 특히 전력 다소비 반도체 공장의 경우 재생에너지 자가발전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제 전환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정치적 불안 관리. 필리핀 운송 노조 시위나 스리랑카 정권 퇴진 운동은 에너지 가격 충격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 안정을 위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연료비 급등에 민감한 화물 운송업계와 소상공인 업계의 불만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더라도 취약 계층과 운송업계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지원책을 먼저 설계해두지 않으면, 정책 저항이 역으로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