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매각 1년 만에 U턴…미·중 해빙 신호탄인가, 외교 전략인가
이란 전쟁 변수로 협상 중단…한국 수출·반도체에도 파장 가능성
이란 전쟁 변수로 협상 중단…한국 수출·반도체에도 파장 가능성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중국이 한 손엔 관세 폭탄을 쥔 채 다른 손으로는 악수를 시도하고 있다. 그 악수의 한복판에 2350조원짜리 지갑이 등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4일(현지시각) 중국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가 최근 수 주 사이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Blackstone Inc.)과 TPG Inc.에 신규 자금 배분을 타진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운용 자산 규모 1조 5700억 달러(약 2350조 원)에 달하는 CIC가 불과 수개월 전 미국 시장에서 발을 뺀 뒤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투자 결정이 아닌 지정학적 신호로 읽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팔았다가 다시 사려는 CIC,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그랬던 CIC가 미·중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자 발을 빼기 시작했다.
CIC는 지난해 헬만앤드프리드먼(Hellman & Friedman), 웰시카슨앤더슨앤드스토(Welsh, Carson, Anderson & Stowe LP) 등 대형 자산운용사 지분을 정리했고, 칼라일그룹이 운용하는 펀드를 포함해 약 10억 달러(약 1조 4900억원) 규모의 미국 사모펀드 지분을 팔아치웠다.
CIC가 2007년 블랙스톤 기업공개(IPO) 당시 30억 달러(약 4조 4900억원)를 투자해 한때 지분율 12.5%까지 올렸던 '황금 파트너십'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기관 투자자들이 매각 절차를 이렇게 늦게 뒤집는 일은 드물다. 이는 CIC가 미국 자산의 유동성 위험을 줄이려는 목표와 '전략적 후퇴'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사이에서 상충하는 우선순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중국의 핵심 에너지·교역 파트너다. 중동 전선의 확전이 베이징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국부펀드가 '지정학 무기'가 된 시대
이번 CIC의 움직임을 금융업계에서는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아닌 외교적 제스처로 해석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세계 최대 국부펀드들이 경제·정치적 협력을 신호하는 지정학적 지렛대로 기능하게 됐다는 점을 이번 사안의 핵심으로 짚었다.
중동 국부펀드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 Pte 등도 같은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저조한 수익률로 미국 사모펀드 시장의 자금 모집이 길어지는 가운데, 미국 공적연금 등 전통적 큰손들도 배분금이 줄자 신규 투자를 거둬들였다.
블랙스톤이나 TPG 입장에서 CIC의 귀환은 단순한 고객 한 명의 복귀가 아니라, 자금 수혈의 숨통이 트이는 신호다.
CIC 펑춘 회장과 블랙스톤 스티브 슈워츠먼 회장은 최근 회동해 양 기관 간 협력, 글로벌 경제와 시장 환경, 핵심 투자 분야 등을 논의했다고 CIC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재접촉이 물밑 탐색 수준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중 해빙, 한국 경제엔 양날의 검
CIC의 월가 복귀 시도는 한국 경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중 관계가 풀릴 경우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인 중국으로의 수출 환경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전체 수출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15%로 2위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면 이 두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변수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월 발표한 경제전망 수정치에서 미국의 관세 인상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여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겠으나, AI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도체 수출은 호조세를 이어가면서 상품 수출의 하방 압력을 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공격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연기를 요청한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과 미국 기업인들이 트럼프 팀의 준비 부족에 이미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전했다.
CIC의 월가 재진출이 이 정치적 공백 속에 다시 가로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2007년 블랙스톤에 거액을 베팅하며 화려하게 월가에 입성한 CIC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같은 문을 다시 두드리고 있다. 미·중이 해빙과 냉각 사이를 오갈 때마다 그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해온 점에서, 한국으로선 그 문의 향방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