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정보 이용 내부자 거래 의혹…노벨상 수상자 "반역죄" 직격
원유 70% 중동 의존 한국, 유가 급등·시장 신뢰 붕괴 이중 충격
원유 70% 중동 의존 한국, 유가 급등·시장 신뢰 붕괴 이중 충격
이미지 확대보기전쟁과 외교를 뒤섞은 트럼프발 정책 발표가 되풀이될 때마다, 시장에서는 누군가 먼저 알고 돈을 버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기대는 한국에게 이 사태는 단순히 먼 나라 금융 스캔들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유가를 흔들 때마다 국내 소비자 물가와 제조업 원가가 동반 출렁이는 구조에서, 미국 선물 시장의 내부자 거래 의혹은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과 곧바로 맞닿아 있다.
이 기사는 영국 BBC, 미국 CBS 뉴스, 포춘, 블룸버그 등의 25일(현지시각) 보도와 산업연구원·삼일PwC경영연구원·현대경제연구원의 국내 분석 자료를 종합했다.
15분의 비밀: 발표 전 쏟아진 수억 달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이란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군사 공격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고 올렸다.
발표 직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84달러(약 12만 원) 수준으로 급락했고,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1000포인트 이상 뛰어올랐다.
BBC와 블룸버그가 독립적으로 분석한 거래 데이터는 그 15분 전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준다.
오전 6시 49분(미 동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원유 계약 734건이 체결된 데 이어, 단 1분 만에 2168건으로 세 배 가까이 치솟았다. 금액으로 약 1억 7000만 달러(약 2400억 원)에 이른다.
같은 시간대 국제 기준유인 브렌트유 계약도 20건에서 1650건 이상으로 폭증해 약 1억 5000만 달러(약 2200억 원)가 순식간에 오갔다.
블룸버그는 이 시간대 계약 건수가 직전 5거래일 같은 시간대 평균의 약 10배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시장 추적 계정 '언유주얼 웨일스'가 별도로 산출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발표 5분 전에는 S&P 500 지수 선물 약 15억 달러(약 2조 2000억 원)어치가 한꺼번에 순매수됐다.
원유 분석업체 엑스애널리스츠의 무케시 사흐데브 수석 애널리스트는 "그 시각에는 미국과 이란 사이에 진지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어떤 신호도 없었다"며 "이 규모의 베팅은 분명히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자산관리업체 킬릭앤드코의 파트너 레이철 윈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게시 직전, 상당수가 원유 가격 하락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계약을 집중 체결했다"며 "내부자 거래 여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 "반역죄", 의회는 "1조 원대 베팅 누구냐" 추궁
이번 의혹에서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국가 안보 기밀, 즉 특정 국가를 공격할지 여부에 관한 내부 정보를 사익에 활용하는 행위를 우리는 다른 말로 부른다. 바로 반역"이라고 썼다.
나아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결정 자체가 시장 조작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네티컷)도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15억 달러짜리 베팅"이라고 규정하며 "트럼프 본인인가, 가족인가, 백악관 직원인가"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BBC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입을 닫았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의 니킬 라티 청장은 의회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시장 감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 당국이 무엇을 하는지는 말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CBS 뉴스 금융 분석가 질 슐레싱어는 "트럼프 행정부가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CFTC는 SEC에 비해 수사 여력이 크게 부족하다"며 실제 조사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워터게이트 이후 설치된 법무부 공공청렴부 검사 인력을 36명에서 단 2명으로 줄이고 신규 사건 수리 권한마저 박탈했다. 이 사태가 홀로 서 있는 이례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90일 유예 발표 직전에도 주식 대량 매수 주문이 선행했고, 올해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구금 발표 수 시간 전에도 예측 시장에서 대규모 베팅이 쏟아진 사실이 잇달아 확인됐다.
이란 측 반응도 판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란 의회 의장 모하마드-바게르 갈리바프는 "미국과 어떤 협상도 없었다"며 "가짜뉴스로 금융·원유 시장을 조작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이란의 부인이 알려지자 유가는 다시 소폭 올랐다.
원유 70% 호르무즈 통과하는 한국, 이중 충격 앞에서다
이번 사태는 한국에게 두 겹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는 에너지 직격탄이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한국의 원유 도입 가운데 약 70.7%가 중동에서 들어오는 구조를 지목하며, 호르무즈 해협 불안정이 장기화할 경우 석유제품 산업의 생산비가 최대 6.3%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학제품(1.59%)·고무 및 플라스틱(0.46%) 산업도 원가 상승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1%포인트 추가로 뛸 수 있다며 내수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에너지 비용 급등은 소비와 투자 모두를 짓누른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직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올려잡을 때 내세웠던 반도체 수출 호조 근거도 이 변수 앞에서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는 항공 운송 비중이 높아 유류비 급등의 영향을 직접 받는 데다, 전력 집약 산업인 만큼 액화천연가스(LNG) 수급 불안도 복합 부담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충격은 시장 신뢰의 손상이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미국·이란 군사 충돌 이후 발생하는 경제 파급 효과가 "에너지·물류·금융·제재·운영 리스크가 결합된 복합 충격"이라고 규정했다.
이번 내부자 거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글로벌 원자재 선물 시장의 가격 형성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수 있다. 원유선물을 활용해 에너지 비용을 헤지하는 한국 정유·항공·해운사들은 시장 가격의 왜곡이 심화할수록 위험 관리 비용이 커지는 구조에 놓인다.
국내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주시하면서도 구체적인 입장표명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유가 방향성 자체보다 "가격 결정의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을 더 우려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이 외교 발표를 내보내기 전 누군가 먼저 수익 포지션을 잡았다는 의혹이 반복 확인된다면, 한국이 직면하는 문제는 유가 수준이 아니라 시장 질서 자체가 된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서 '정보 우위'에 기반한 시장 교란이 용인된다면, 그 비용은 국내 소비자와 제조업체가 나눠 짊어지게 된다.
CFTC와 SEC의 수사 의지가 시험대에 오른 지금, 그 결론은 에너지 가격표를 넘어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 문제로 귀착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