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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1350억 달러 금 보유고 '리라화 방어'에 투입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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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1350억 달러 금 보유고 '리라화 방어'에 투입 검토

이란 전쟁·유가 100달러·물가 31%…에너지 수입국 튀르키예의 삼중 위기
바클레이즈 "연말 달러당 50리라 돌파"…리라 추가 하락 압력 불가피
튀르키예 리라화 지폐.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튀르키예 리라화 지폐. 사진=연합뉴스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배럴당 100달러 유가와 싸우는 법은 무엇인가.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그 답으로 꺼내 든 카드가 바로 금(金)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24일(현지시각)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이란 전쟁 이후 급격히 흔들리는 리라화를 방어하기 위해 약 1350억 달러(약 200조 원) 규모의 금 보유고를 외환시장 개입에 활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공식 논평을 거부했다.

잉글랜드은행 보관 금 300억 달러, '즉시 투입' 가능


튀르키예가 검토 중인 방식은 금-외화 스왑 거래다. 런던 시장에서 보유 금을 담보로 달러를 조달해 리라화 방어에 쓰는 구조다.

JP모건(JPMorgan Chase & Co.)의 파티 악셀리크(Fatih Akcelik) 이코노미스트는 25일 보고서에서 "튀르키예가 잉글랜드은행에 맡겨둔 약 300억 달러 상당의 금은 물류상 제약 없이 외환시장 개입에 곧바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튀르키예는 지난 10년간 미국 달러 표시 자산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목표 아래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금을 사들인 나라 중 하나다.

블룸버그와 튀르키예 중앙은행 자료를 종합하면 3월 초 기준 금 보유고 평가액은 135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잉글랜드은행 보관분 300억 달러가 이번 방어전의 핵심 실탄으로 부상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런던 금 현물 가격은 0.7% 하락했다. 막대한 규모의 금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즉각 가격에 반영된 결과다.

'에너지 수입국'의 구조적 약점…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튀르키예가 이처럼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는 배경에는 에너지 전량 수입이라는 구조적 약점이 있다. 올해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이란 전쟁이 시작된 뒤 국제유가는 배럴당 70달러대에서 100달러 위로 치솟았다.
원유와 천연가스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튀르키예로서는 수입 물가 급등이 곧 재정 압박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물가 전선도 이미 무너지고 있다. 튀르키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2월 기준 연 31.5%로, 세계 최고 수준 가운데 하나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그동안 리라화 절하 속도가 월간 물가상승률을 웃돌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실질 리라 절상' 전략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전쟁 발발 이후 외환보유고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수입 단가가 치솟으면서 이 전략을 유지하는 비용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이 상황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과도 구조적으로 겹친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서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경우 글로벌 물가상승률이 0.6~0.7%포인트 추가로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채권 '사상 최고 속도' 이탈…바클레이즈 "연말 50리라 돌파“


튀르키예 당국은 이미 여러 방어선을 쳤다. 역환매조건부채권(역RP) 경매를 중단해 시중 리라 조달 비용을 끌어올렸고, 국영은행을 통한 시장 개입도 병행했다. 3월 첫 주에만 8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시장에 풀었다.

미국 국채를 포함한 외화 표시 채권도 최근 수 주 사이 약 160억 달러어치를 매각했다. 이에 따라 1월 말 기준 튀르키예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170억 달러 미만으로 줄었다. 2015년 정점인 820억 달러와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외국인 자금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지난 24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의 튀르키예 국채 매도 규모는 3월 13일로 끝나는 한 주 동안 사상 최고 속도를 기록했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에서는 달러 환전 프리미엄이 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은행 간 거래 환율보다 비싸게 달러를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기준금리(현재 연 37%)에 대한 기대도 흔들리고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3월 초부터 기준금리 창구 대신 연 40%짜리 고비용 자금 공급 창구를 운용 중이다. 시장에서는 다음 달 추가로 100bp(1%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했다.

바클레이즈(Barclays)는 달러 대비 리라 환율이 올해 말 50.25리라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25일 오후 4시 17분(현지시각) 기준 리라는 달러당 44.35리라로, 올해 들어 하루 평균 약 0.05%씩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금 보유고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튀르키예의 지금 모습은,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나라가 지정학적 충격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한계에 몰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 사례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