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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대출 펀드 환매 봉쇄…투자자 6.9조원 묶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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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대출 펀드 환매 봉쇄…투자자 6.9조원 묶인 이유

아폴로·아레스·블랙록, 1분기 130억 달러 인출 요청에 줄줄이 5% 상한 발동
AI 대출 부실·골드만 "2년 내 105조원 증발" 경고…블루올 결과가 분수령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연합뉴스
"이 돈,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까.“

올해 들어 글로벌 사모대출(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에 뭉칫돈을 넣은 수십만 소매 투자자들이 품고 있는 공통된 물음이다. 연 9% 안팎의 고수익에 이끌려 수조 원을 맡겼건만, 정작 환매 창구는 굳게 잠겨 있다.

블룸버그는 27일(현지시각) 올해 1분기 12개가 넘는 사모대출 펀드에서 투자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자금이 46억 달러(약 6조 9500억원)를 웃돈다고 보도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와 아레스 매니지먼트가 이번 주 환매 제한 대열에 합류하면서 블랙록, 모건스탠리에 이어 봉쇄 전선이 업계 전체로 번지고 있다.
130억 달러 인출 신청에 45% 거절…"신청해도 절반밖에 못 받아“

블룸버그와 리서치 업체 로버트 A. 스탠저앤컴퍼니 집계를 보면, 이번 분기 해당 펀드들에 쏟아진 환매 요청 총액은 약 130억 달러(약 19조 6400억원)다.

그러나 이 펀드들이 분기당 순자산(NAV)의 5%를 환매 상한으로 묶어두는 구조여서 투자자들은 신청액의 3분의 2 정도만 건졌다. 나머지 3분의 1, 즉 46억 달러 이상은 다음 분기로 이월됐다.

피해 양상은 펀드마다 극명하게 갈렸다. 골럽 캐피털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의 환매 요청 비율은 1.4%에 그쳤지만, 클리프워터 코퍼레이트 렌딩 펀드는 약 14%에 달했다.

아레스 전략 인컴 펀드는 11.6%였고, 아폴로의 아폴로 데트 솔루션스(ADS)는 11.2%를 기록했다. 아폴로는 환매 신청액 15억 달러(약 2조 2600억원) 가운데 실제 지급액을 7억 3000만 달러(약 1조 1000억원) 수준으로 막아, 투자자들은 신청액의 45%가량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블랙스톤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BCRED)는 7.9%의 환매 요청에도 한도를 두지 않았지만, 이는 자체 자금 4억 달러(약 6000억원)를 펀드에 직접 투입한 덕분이었다.

블랙스톤 주가는 최근 52주 저점인 105달러 안팎까지 밀렸다.

코빈 캐피털 파트너스의 존 코크 신용 부문 부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시장 불안이 고조되면 신규 자금 유입은 한 줄기로 줄어들고 유동성을 찾는 투자자만 줄을 잇는다"며 "환매를 막으면 신규 투자자 유치가 더 어려워지고, 그것이 다시 유출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AI 대출 부실 공포 겹쳐…골드만 "2년 내 최대 105조원 증발“


이번 사태의 심층에는 단순한 유동성 불일치 이상의 구조적 결함이 자리한다. 사모대출 펀드들은 2021년 말 340억 달러(약 51조 3600억원) 수준이던 소매 투자자 자금을 지난해 말 2220억 달러(약 335조원)까지 불렸다.

5년간 유입된 자금만 약 2000억 달러(약 302조원)에 이른다. 고금리 시대 연 9%에 달하는 수익률이 개인 투자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환매 물결의 실질적 도화선은 AI 열풍으로 촉발된 소프트웨어 기업 대출 부실화 공포다. AI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대체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쪼그라들고, 저금리 시대에 쌓아올린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졌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모대출 직접 대출 부문의 디폴트율이 역사적 평균인 2~2.5%를 훌쩍 넘어 8%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UBP의 니콜라스 로트 사모시장 자문 총괄은 CNBC에 "현재의 환매 요청 물결은 이 자산군이 규모 면에서 처음 맞이하는 실질적 유동성 시험"이라며 "환매 압박, 거래 흐름 둔화, 시가평가 격차가 동시에 덮치고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2년 안에 소매 사모대출 펀드 자산이 최대 700억 달러(약 105조원)까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추산했다.

무디스는 이달 25일 KKR이 운용에 참여하는 퓨처 스탠더드 계열 사모대출 펀드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 등급(정크)으로 낮췄다.

부실 대출 증가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무손실 신화"를 내세웠던 사모대출 업계 전반의 신용도에 먹구름이 드리운 조치로 시장에서 받아들여졌다.

블루올 환매 결과가 분수령…"최악 시나리오면 3~4년 묶인다“


업계의 시선은 이달 말 환매 창구를 닫는 블루올 캐피털로 집중된다. 블루올은 경쟁사보다 공격적으로 소매 투자자를 끌어모았으며, 소프트웨어 기업 대출 비중이 높아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특히 강하다.

지난 분기 블루올 크레딧 인컴 코퍼레이션 펀드는 약 5.2%, 블루올 테크놀로지 인컴 코퍼레이션 펀드는 15%를 웃도는 환매 요청을 각각 소화했지만, 이번 분기 결과는 미지수다.

블루올은 올해 2월 자사 펀드 블루올 캐피털 코퍼레이션 II(OBDC II)의 환매 구조를 분기별 자본 반환 방식으로 바꾸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은 블루올이 유동성 압박 실태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씨티그룹의 마이클 앤더슨 글로벌 신용 전략 총괄은 "환매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남은 포트폴리오의 질이 허물어진다"며 "운용사는 자금을 빼려는 투자자와 계속 남아 있는 투자자 양측의 이해를 동시에 맞춰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말했다.

아폴로의 짐 젤터 사장은 27일 멜버른 아시아태평양 금융혁신 심포지엄에서 "일부 유통 채널이 이 자산군에 내재된 유동성 위험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헤지펀드 운용사 보아즈 와인스타인은 최근 팟캐스트에서 "환매 요청이 40%에 달하면 투자자는 8분의 1밖에 못 찾는다"며 "순자산 하락이 대규모 환매를 부르고, 이것이 강제 매각으로 이어져 다시 순자산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시작되면 3~4년 뒤에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UBP의 로트 총괄은 "이번 조정 국면은 구조적 유동성 완충 장치를 갖춘 강건한 운용사와 신규 자금 유입에 의존해온 취약한 운용사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약 3조 달러(약 4500조원) 규모로 성장한 사모대출 시장이 처음 맞는 진짜 시험대의 결과는 아직 진행 중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