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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금 14톤 기습 매각... 24년 만의 방출 배경과 금값 전망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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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금 14톤 기습 매각... 24년 만의 방출 배경과 금값 전망 분석

전쟁 비용 충당 위해 실물 금 매도... 재정 적자 GDP 3.4% 육박
에너지 수입 반토막에 ‘최후 보루’ 손질... 국가복지기금 고갈 우려 속 글로벌 공급 충격
금값 온스당 5000달러 돌파에도 하방 압력 가중... 한국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주의보
지난 10일(현지시각)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순도 99.99% 골드바.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10일(현지시각)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순도 99.99% 골드바. 사진=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위한 전비 마련과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 24년 동안 굳게 닫았던 실물 금 창고를 열었다.

이는 단순한 자산 교체를 넘어 러시아 재정이 자력갱생의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이자, 국제 금 시장의 수급 체계를 흔드는 변동성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독립 언론 비즈니스 인텔리뉴즈(bne Intellinews)가 27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CBR)은 최근 가파르게 치솟는 예산 적자를 메우기 위해 보유 중인 실물 금을 시장에 직접 매각하기 시작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금과 외환을 합쳐 15조 루블(약 1840억 달러, 한화 약 277조 8000억 원) 이상이 이미 투입되었으며, 올해 들어서만 두 달 만에 3조 5000억 루블(약 420억 달러, 한화 약 64조 8200억 원) 상당의 예비 자산이 소진되었다.

장부상 거래 끝내고 ‘실물 방출’ 정조준... 전비 조달에 ‘비상금’ 투입


러시아의 이번 행보는 과거 재무부와 중앙은행 사이의 형식적인 장부상 거래에서 벗어나, 국제 시장에 직접 실물 금을 매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 가해지는 압력의 차원이 다르다.

중앙은행 통계상 지난 1월과 2월에만 각각 30만 온스와 20만 온스, 합계 약 14톤의 실물 금이 시장에 풀렸다. 이는 단일 분기에 58톤을 팔아치웠던 2002년 2분기 이후 24년 만에 최대 규모의 연속 매각이다.

이 영향으로 러시아의 금 보유량은 7430만 온스까지 떨어지며 4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러한 긴급 자금 수혈의 원인으로 전쟁 비용의 급증을 꼽는다.

러시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6%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으나, 전문가들은 연말 지출 이월분을 포함하면 실제 적자 폭은 3.4%에 달할 것으로 분석한다. 초기 예상치(0.5%)를 무려 7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글로벌 금 시장 ‘매수’에서 ‘매도’로 급변... 변동성 확대 불가피


그동안 국제 금 시장을 지탱하던 ‘중앙은행의 매집’ 공식도 러시아발 공급 충격에 균열이 가고 있다. 세계 5위 금 보유국인 러시아가 매수 주체에서 매도자로 변모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이 '최종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양상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Natixis) 등 외신 분석에 따르면, 최근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한화 약 754만 원)를 돌파한 고점 시기를 노려 러시아가 유동성 자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의 제재 강화로 오일·가스세 비중이 전체 세입의 20%까지 줄어든 상황(전쟁 전 대비 50% 급감)에서 금은 유일한 재정적 숨통인 셈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러시아의 실물 매각은 금값 상승을 억제하는 강력한 저항선이 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4월 중 보유 물량의 추가 투매 가능성이 있어 국제 금 시세의 높은 변동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복지기금 바닥과 ‘달러 없는 경제’의 한계

러시아 정부는 현재 약 4조 루블(한화 약 74조 원)이 남은 국가복지기금(NWF)과 부가가치세(VAT) 인상분 등을 통해 적자를 방어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4년 차에 접어들며 국가의 최후 보루인 금과 복지기금에 동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즈니스 인텔리뉴즈는 러시아가 2014년 이후 달러 의존도를 낮추며 2000톤 이상의 금을 비축해왔지만, 실물 자산의 직접 방출은 재정적 인내심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외채 비율을 GDP 대비 14%로 낮게 유지하며 버티고 있으나, 세입의 40%를 차지하게 된 부가가치세 등 내수 쥐어짜기식 재정 운용은 장기전 수행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의 금 매각은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고육지책이자, 글로벌 금 시장에는 중앙은행들이 언제든 잠재적 매도인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심어준 사건이다.

국제 금 시장은 당분간 지정학적 리스크와 실물 공급 확대라는 두 변수가 충돌하며 불안정한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