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휘발유 22% 폭등에 4월 CPI 4% 전망... 탈세계화·AI 에너지 수요, 저물가 시대 구조적 종언
"펀더멘털은 견고" 월가 낙관론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속 '양면 시장'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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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3월 물가 충격 예고... 갤런당 4달러, 20년 만의 최고 상승률
미국 노동통계국이 다음 달 10일 발표할 3월 CPI는 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한 달 새 갤런당 약 2.90달러(약 4370원)에서 3.98달러(약 6000원)까지 37% 가까이 치솟았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이미 4달러를 넘어섰다.
석유 가격 분석 기관 OPIS의 덴튼 친퀘그라나 연구 책임자는 배런스에 "3월 가솔린 가격 상승률은 지난 20년 통틀어 월간 기준 최고치"라고 밝혔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앨런 데트마이스터 UBS 이사는 이번 주유소 가격 급등이 3월 CPI를 최소 1%포인트(p) 끌어올려 3.4%에 이르게 하고, 4월에는 4%까지 밀어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국제 유가는 전쟁 직후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120달러(약 18만 1000원)까지 치솟은 뒤 최근 99달러 선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물가 압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여전히 시장 위험 요인으로 남아 있는 데다, 한 번 오른 주유소 가격은 원유 가격보다 훨씬 느리게 내려오는 비대칭 구조 때문이다. 국내 정유업계 관계자도 "국제 유가 하락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4주의 시차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2%로 돌아가려면 수년 걸려"... 탈세계화·AI가 바꾼 물가 방정식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세계화는 저렴한 중국산 제품과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물가를 억제하는 '자동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탈세계화와 이민 제한,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이 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월 미국 수입 물가는 1.3% 뛰어 전월(0.6%)의 두 배를 넘어섰다. 전쟁 영향이 본격 반영되기 전 수치라는 점에서 더욱 예사롭지 않다. 자본재 가격 상승 폭도 1980년대 후반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다.
높은 관세가 상품 가격을 밀어올리는 데 이어, 기업들이 이미 늘어난 생산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본격적으로 전가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연준 목표치인 2%로의 복귀는 빨라도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채권시장이 보내는 경고... 2008년 금융위기 데자뷔
금융시장은 이미 물가 재상승 공포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 2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쟁 이후 약 60bp(1bp=0.01%포인트), 10년물 수익률은 50bp 급등했다. 반면 S&P500 지수는 1월 고점 대비 8.4% 하락하며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세바스찬 라에들러 전략가는 "2008년 봄 유가 급등기에도 국채 수익률이 몇 달 만에 90bp 급등한 뒤 금융위기로 이어졌다"며 "당시처럼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 구매력 침식과 수요 감소 가능성을 현재 주식시장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현재와 2008년을 단순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08년 위기를 증폭시킨 결정적 요인은 신용 시장의 급격한 경색이었는데, 현재는 기업 실적 전망이 여전히 상향 조정되는 등 실물 경제의 버팀목이 남아 있다.
월가 낙관론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가 오히려 기회"
공포 지수가 극에 달한 지금, 월가 일각에서는 냉정한 반론도 나온다. 미국 증시가 5주 연속 하락하며 연초 대비 S&P500이 7%, 나스닥이 10% 빠지면서 시장 일부에서는 1970년대 오일쇼크나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 지표를 기반으로 한 분석은 다소 다른 그림을 제시한다.
우선 유가 충격의 실질 파괴력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일쇼크가 덮쳤던 1970년대에는 석유 소비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에 달했지만, 현재는 3% 수준에 그친다. 경제 구조 자체가 에너지 집약도가 낮아진 방향으로 이미 전환됐다는 뜻이다.
주식 밸류에이션도 극단적 공포를 반영한 상태다. 현재 미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9.9배 수준으로, 장기 국채 금리가 4.43% 이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상당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이미 녹아든 가격대라는 분석이다. 유가가 장기적으로 배럴당 60달러(약 9만 원) 이하로 안정화된다면 인플레이션 2% 시대의 복귀도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미국 경제 펀더멘털 역시 침체를 논하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금·대출·여신 증가율 등 금융 지표에서 유동성 감소 징후가 포착되지 않고 있으며, 3.7%에 달하는 임금 상승률과 AI 산업 활성화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나우(GDPNow)' 모델은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상향 조정했다. 변동성지수(VIX)가 31을 돌파하고 '공포와 탐욕 지수'가 극도의 공포 구간(10)에 진입한 지금이야말로 역발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낙관론자들의 논거다.
국내 채권 전문가들도 "미국 고용시장이 탄탄한 동안은 경기 침체보다 스태그플레이션 경로가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분석한다. 단, 은행주의 약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은 경제 활동 둔화의 선행 신호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끈적한' 서비스 물가... 임금발 인플레이션이 진짜 복병
물가 안정의 마지막 열쇠는 서비스 부문이 쥐고 있다. 주거비는 올해 들어 상승세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어, CPI 바스켓의 약 40%를 차지하는 이 항목의 안정은 전체 물가 완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주거를 제외한 나머지 서비스 물가다. 노동시장이 견조하고 임금 상승률이 높은 탓에 서비스 물가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이 2028년 말까지도 연준 목표치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트레이더들은 연준이 오는 4월 28~29일 FOMC 회의에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8% 수준으로 낮게 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다시 불안해지면 연준의 통제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될 수 있다.
한국 수출·가계에 미칠 영향은
미국 CPI가 4%대로 올라서면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는 사실상 사라진다.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 국내 수입 물가 연쇄 상승, 수출 기업의 미국 소비 둔화 타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국내 경제 싱크탱크 관계자는 "미국 소비가 위축되면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반도체·가전 업종의 실적 하방 위험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유가 상승의 직접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 가격 급등기마다 교역 조건이 악화돼 왔다. 다만 최근 원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에서 99달러 선으로 내려온 것은 일부 완충 요인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다시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전쟁이라는 단기 충격과 탈세계화·AI 에너지 혁명이라는 장기 구조 변화가 겹친 '이중 파고'다. 유가가 안정되더라도 물가가 곧바로 꺾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채권시장이 보내는 스태그플레이션 경보에 주식시장이 뒤늦게 반응하는 시차를 고려할 때, 에너지 비용 상승이 기업 이익을 잠식하는 2~3분기 흐름에 대한 보수적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펀더멘털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함께 읽어야 한다. '물가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공포 그 자체가 투자의 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