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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HBM이 살린 글로벌 무역… 트럼프 관세 전쟁에도 2025년 사상 최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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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HBM이 살린 글로벌 무역… 트럼프 관세 전쟁에도 2025년 사상 최고치

맥킨지 "반도체·데이터센터 장비 출하 40% 폭증… 세계 무역 성장의 3분의 1 견인"
미·중 직거래 30% 급감했으나 ASEAN·한국·대만이 새 교역 허브로 급부상
중국, '최종재 수출국'서 '글로벌 공급망 상류 장악' 전략으로 구조 전환
WTO 무력화·정책 비일관성… 미국, 신뢰받는 리더에서 '파괴적 불안 변수'로 추락
트럼프의 관세는 글로벌 무역의 경로를 바꿨을 뿐, 무역 자체를 멈추지는 못했다. AI 기술 붐이 교역을 끌어올리고, 새 거래 경로가 빠르게 열리는 동안 세계는 조용히 자기 몫의 장사를 계속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의 관세는 글로벌 무역의 경로를 바꿨을 뿐, 무역 자체를 멈추지는 못했다. AI 기술 붐이 교역을 끌어올리고, 새 거래 경로가 빠르게 열리는 동안 세계는 조용히 자기 몫의 장사를 계속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트럼프의 관세는 글로벌 무역의 경로를 바꿨을 뿐, 무역 자체를 멈추지는 못했다. AI 기술 붐이 교역을 끌어올리고, 새 거래 경로가 빠르게 열리는 동안 세계는 조용히 자기 몫의 장사를 계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세계 경제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우려는 2025년 현실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글로벌 무역은 세계 경제 성장 속도를 앞지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관세는 교역 경로를 바꿨을 뿐, 교역 자체를 멈추지는 못했다.

1(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지정학과 글로벌 무역의 기하학: 2026년 업데이트' 보고서를 인용해 "2025년은 글로벌 무역이 종말을 맞이하기는커녕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하며 강력한 회복력을 증명한 해였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의 수출액이 각각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세계 교역의 판도는 지정학적 거리에 따라 조용히 재편됐다.

세계 무역이 버텨낸 이유는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인공지능(AI) 기술 혁명이 고부가가치 교역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둘째, ·중 직접 교역이 줄어든 자리를 제3국이 채우는 경로 재배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셋째, 다자 무역 질서가 약화됐음에도 세계 각국이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교역을 유지하는 '분산된 시스템 탄성'이 작동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3대 핵심 리스크.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경제위기 3대 핵심 리스크. 도표=글로벌이코노믹


AI, 관세 충격을 압도하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용 장비 출하액은 전년 대비 40% 폭증했다. AI 관련 수출은 전 세계 무역 성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성장 동력이 됐다. 한국·대만·동남아시아의 주요 거점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며 무역 네트워크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AI 관련 교역이 관세 충격을 이렇듯 강력하게 상쇄할 수 있었던 데는 세 가지 구조적 특성이 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장비는 △마진이 높고 수요 탄력성이 낮아 가격이 올라가도 구매를 멈추기 어렵고, △안보·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품목이어서 완전 차단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한국·대만이라는 소수 공급 거점에 집중돼 있어 구매자가 대체 조달처를 찾기 쉽지 않다. 간단히 말해 AI 관련 품목은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 투자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관세 충격에 대한 수요 탄력성이 극히 낮다.

한국이 이 흐름의 핵심 수혜국으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5년 한국 반도체 수출은 1734억 달러(261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이는 전체 수출의 약 24%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연간 영업이익 44조 원을 돌파하며 영업이익률 47%라는 제조업의 한계를 넘어선 실적을 기록했고, 삼성전자 역시 HBM4 엔비디아 공급 인증 이후 양산 출하를 시작했으며 점유율을 빠르게 회복 중이다. 세계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합산 점유율은 79%에 달해, K-반도체가 글로벌 AI 무역 확장의 최전선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AI 반도체 특수가 영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현재의 슈퍼 사이클이 2028년 이후 둔화 국면에 접어들 경우,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진 한국 경제는 구조적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각종 수출입 통제의 영향으로 중국의 AI 관련 무역 성장률은 16%에 그치며 상대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30% 급감, ASEAN·한국·대만이 채웠다


무역의 물리적 거리가 아닌 '지정학적 거리'에 따른 재편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 교역액은 지난해 약 30% 급감했다. 그러나 미국은 줄어든 수입 물량의 3분의 2를 다른 국가에서 조달하며 공백을 메웠다. 이 과정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의 수출이 활기를 띠며 새로운 수혜자로 부상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리처드 볼드윈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실제 행동보다 훨씬 무서웠다""다른 국가들이 보복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교역을 유지한 것이 시스템 붕괴를 막았다"고 평가했다.

중국, '최종재 수출'에서 '공급망 상류 장악'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파상공세에 직면한 중국은 단순한 우회로 확보를 넘어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서 자국의 역할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했다. 미국 직수출이 막히자 주변국에 기계류와 중간재를 공급하는 '공급기지'로 거듭나며 생산 사슬의 상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제 최종재 수출국이 아니라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중추 신경계'로 이동하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중간재·자본재 수출을 2230억 달러(336조 원) 늘렸다. 이는 대미 수출 감소분인 1300억 달러(195조 원)1000억 달러(150조 원) 이상 초과하는 수치다. 중국산 부품과 장비를 수입한 제3국들이 이를 가공해 미국으로 재수출하거나 신흥국의 제조 역량을 확충하는 데 활용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생산 사슬 더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전략적 전환의 함의는 크다. 표면적으로는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글로벌 가치사슬의 '보이지 않는 층'을 더욱 단단히 장악하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관세는 중국을 쫓아내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되레 중국을 '없어서는 안 될 부품 공급자'로 격상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신뢰받는 리더에서 '파괴적 불안 변수'


글로벌 경제가 예상 밖의 회복력을 입증했음에도, 미국의 국제적 위상 추락에 대한 우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제기된다. FT"예측 불가능한 인물을 두 번이나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은 더 이상 안정적인 글로벌 패권을 제공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보호주의가 아니라 '정책의 비일관성'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만들었다.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미국의 세계 상품 수입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중국을 합산해도 두 나라의 무역 비중은 전체의 25%에 그친다. 나머지 75%에 해당하는 국가들은 미국 중심의 질서가 흔들리더라도 자국 이익을 위해 교역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동맹국들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흐름도 가속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WTO 개혁 보고서가 한국의 개발도상국 지위 유지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등 통상 압박이 다각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공급망 다변화와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발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교역 다변화와 내수 기반 강화가 수출 충격을 흡수하는 핵심 완충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 진짜 균열이 올 수 있다


세계 경제는 지금까지 놀라운 인내심을 보여줬다. 그러나 관세는 우회할 수 있어도 에너지·금융·첨단기술의 병목은 우회가 불가능하다. 맥킨지 연구소는 2026년에도 지정학적 위험이 실물 경제의 급소를 찌르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 한계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목해야 할 3대 리스크는 에너지 공급망 차단, AI 공급망 병목, 금융 분절화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에너지 공급망 충격은 지난해 관세 전쟁을 훨씬 뛰어넘는 파괴력을 지닌다. 아울러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는 이미 현실화한 변수다. 한국의 경우 희토류를 주로 중국에서 조달하는 구조여서, 공급 차질이 현실화되면 AI 메모리 생산에 직접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26년 한국 반도체 수출이 1880억 달러(283조 원)11% 추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이 낙관 시나리오는 에너지·원자재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아담 스미스가 언급했듯 국가의 부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2025년의 글로벌 무역은 그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그러나 2026년의 진짜 시험은 관세가 아니라 에너지·기술·금융이라는 세 개의 급소를 겨냥한 지정학적 충격에서 올 수 있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체크포인트는 세 가지다. ①호르무즈 해협 긴장 수위와 유가 변동성,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HBM 단가 및 가동률 추이, ③달러 블록과 비달러 블록 간 결제 통화 분화 속도다. 이 세 지표가 동시에 악화 신호를 보낼 때, 비로소 '세계 무역의 회복력'은 한계 시험대에 오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