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입 원유 70% 호르무즈 경유… '가격 변수' 아닌 '공급 리스크' 현실화
하루 2000만 배럴 해협 통과량 중 대체 가능 물량은 절반 이하… "우회로는 턱없이 부족"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UAE 푸자이라 라인 풀가동 불구, 구조적 해결엔 한계
하루 2000만 배럴 해협 통과량 중 대체 가능 물량은 절반 이하… "우회로는 턱없이 부족"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UAE 푸자이라 라인 풀가동 불구, 구조적 해결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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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하루 2000만 배럴의 목줄… 이미 '일상적 비용'이 된 봉쇄 리스크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집계한 2025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의 일일 원유 통과량은 약 2000만 배럴이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약 20~25%에 해당하며, 이 물량의 80% 이상이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소비국으로 향한다.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약 33㎞에 불과한 이 바닷길 하나가 막히면 세계 경제의 맥박이 멎는 구조다.
문제는 이 리스크가 '가능성'의 영역을 벗어나 이미 '일상적 비용'으로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탱커 전쟁 위험 보험료는 선박 보험 가액 대비 0.125%에서 최대 0.4%까지 치솟았고, 초대형 유조선 한 척이 해협을 통과할 때마다 추가로 발생하는 전쟁 리스크 프리미엄은 최대 25만 달러(약 3억4000만 원)에 이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일(현지시각) 이런 배경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이 수십 년 만에 육상 우회 파이프라인 건설을 본격적인 실무 검토 단계로 끌어올렸다고 보도했다.
이미지 확대보기우회로 현황… "대안은 턱없이 부족하다"
호르무즈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거론되는 대안 인프라는 크게 두 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과 UAE의 '하브샨-푸자이라 송유관'이다.
두 노선을 합산한 일일 처리 가능 물량은 약 850만~880만 배럴로, 호르무즈 해협 통과량 대비 약 44%에 불과하다. 업계 실무 추산에서는 실제 봉쇄 상황에서 파이프라인으로 전환 가능한 물량이 하루 300만~350만 배럴 수준에 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존하는 우회 인프라를 모두 풀가동해도 호르무즈 해협 통과량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다.
1200㎞에 달하는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은 동부 유전 지대에서 홍해 연안 얀부(Yanbu) 항구까지 가로지르는 구조로,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구축됐다. 아민 나세르 사우디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현재 가장 전략적으로 운용 중인 핵심 경로"라고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사우디 정부는 하루 생산량 1020만 배럴 가운데 가능한 한 많은 물량을 파이프라인으로 흡수하기 위해 증설과 신규 노선 건설을 병행 검토하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최대 30조 원을 투입해도 '절반의 대안'밖에 안 되는 현실
FT 보도를 토대로 신규 파이프라인 건설의 핵심 장벽을 정리하면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첫째, 비용이다. 중동 최대 건설사 중 하나인 캣 그룹(Cat Group)의 크리스토퍼 부시 CEO는 사우디 동서 파이프라인을 현재 가치로 재건설할 경우 최소 50억 달러(약 7조5700억 원)가 든다고 추산했다. 이라크~요르단~시리아 또는 튀르키예를 잇는 다국적 노선은 건설비만 150억~200억 달러(약 22조~30조31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보안과 지형이다. 부시 CEO는 "이라크 내부에는 여전히 미확인 매설 폭발물 위협과 무장 세력의 활동이 잔존한다"고 경고했다. 오만 남부 노선 역시 광대한 사막과 단단한 암석 산맥을 관통해야 하는 지질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이번 호르무즈 위기에서 이란은 UAE의 푸자이라 항구를 드론으로 타격해, 파이프라인 종착점 자체가 군사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실증했다. 인프라를 깔아도 그 자체가 새로운 취약점이 된다는 역설이 확인된 것이다.
셋째, 정치·외교의 복잡성이다. 파이프라인 운영권과 통제권을 어느 국가가 갖느냐를 둘러싼 다국 간 합의는 역사적으로 번번이 좌초해 왔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메이순 카파피 선임 고문은 "과거에는 해상 운송이 가장 저렴하고 안전하다고 여겼지만, 이제 걸프 국가들의 사고는 가설에서 실행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며 "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용과 리스크를 고려할 때, 당장의 현실적 대안은 기존 시설의 활용 극대화다. UAE는 푸자이라 송유관 용량 증대와 함께 1800만㎥ 규모의 세계 최대 원유 저장 시설을 이미 운영 중이다. 사우디는 네옴(NEOM)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홍해 연안 심해 항구 및 수출 터미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튀르키예 간 IPC(국제 파이프라인 회사) 라인은 하루 약 100만 배럴을 지중해 방향으로 운송한다. 단기적으로는 이 같은 기존 자산의 최대 활용과 병목 완화를 병행하는 '모자이크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가격 변수"가 아닌 "공급 구조의 지각 변동"… 수혜·피해 갈린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산업계의 수혜와 피해 윤곽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대규모 우회로 확보 움직임에 따라 파이프라인 설계·조달·시공(EPC) 기업과 중동 인프라 건설사들이 직접적인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이란의 해상 통제권을 피하려는 육상 관로 건설 수요가 폭증하며 관련 수주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브라질 등 비(非)중동 산유국과 카타르의 우회 물량을 확보한 LNG 공급자들도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맞았다.
반면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에너지 안보 위협에 직면했다. 국내 정유사는 원가 상승에 따른 마진 압박을 피하기 어렵고, 연료비 급등으로 해운과 항공 업계의 수익성 악화도 우려된다. 특히 철강·화학·반도체 등 에너지 집약 핵심 제조업은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인한 글로벌 경쟁력 저하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장기적으로는 파이프라인 건설 비용이 원유 공급 단가에 얹히며 구조적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200일 비축' 넘어 '공급 다변화'가 과제
한국의 호르무즈 의존도는 아시아에서도 특히 높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수입 원유의 약 70%가 이 해협을 경유한다. 그간 '200일분 비축유'라는 완충 장치가 단기 위기 대응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고, 실제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UAE로부터 총 2400만 배럴(국내 일일 소비량의 8배 이상)을 긴급 확보하며 초동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축유는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일 뿐 구조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번 UAE발 원유 2400만 배럴은 국내 연간 소비량의 약 9일치에 해당한다. 해결의 핵심은 수입선 다변화다. 2025년 기준 한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연간 2232만 톤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하며 다변화 기조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동 비중이 여전히 70% 수준인 현 구조를 의미 있게 낮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브라질·노르웨이 등 비중동 지역과의 장기 계약 확대, 국내 전략 비축 규모의 추가 확충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자원안보 위기 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으나, 업계 일각에서는 "위기 경보 격상보다 중요한 것은 중동 편중 구조를 실질적으로 깎아내는 수입선 다변화 로드맵"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IMEC, 단순 물류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권력 재편'
장기 시나리오에서는 미국 주도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 핵심 변수로 부각된다. IMEC는 원유 수송 파이프라인에 철도망과 해저 디지털 케이블을 결합한 복합 인프라 프로젝트로, 중국의 '일대일로(BRI)'에 대한 서방의 대항 축으로 설계됐다. 뉴메드 에너지의 요시 아부 CEO는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육상 파이프라인과 철도망 구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우회로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통제 구조를 바꾸려는 지정학적 시도다. 한국이 이 논의에서 어떤 포지션을 잡느냐 역시 향후 에너지 외교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에너지 안보는 이제 해상 항로 하나에 맡기기엔 너무 큰 도박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금의 움직임은 '에너지 주권'을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다. 걸프 산유국들이 30조 원을 쏟아붓겠다고 나선 것은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바다에 종속된 에너지 운명을 육지 위에서 다시 쓰겠다는 선언이다. 다만 현실은 냉정하다. 지금 당장 우회 가능한 물량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새로운 파이프라인의 비용은 고스란히 에너지 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에너지 배급제의 확산이 보여주듯, 이번 위기는 세계 경제가 가격 메커니즘이 아니라 구매력과 지정학적 위치가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걸프 국가들이 수십 년 만에 꺼내 든 삽은 그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삽질이다. 한국도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