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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 中의 그늘… ‘데이터 라벨러’ 농촌 어머니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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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 中의 그늘… ‘데이터 라벨러’ 농촌 어머니들의 눈물

빈곤 탈출의 희망이었던 ‘데이터 워크숍’, 보조금 중단과 기술 고도화에 고사 위기
단순 반복 업무에서 전문 지식 요구로 체질 변화… “미래 없는 지루한 노동” 전락
한때 중국 정부의 빈곤 완화 캠페인과 빅테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결합해 탄생한 ‘AI 데이터 라벨링 워크숍’이 이제는 차가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미지=구글 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한때 중국 정부의 빈곤 완화 캠페인과 빅테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결합해 탄생한 ‘AI 데이터 라벨링 워크숍’이 이제는 차가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미지=구글 제미나이3
자율주행차가 베이징의 도로를 매끄럽게 질주하기 위해 필요한 ‘교통 표지판 인식’ 학습 데이터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구이저우성 통런(Tongren)의 한 산골 마을에서 만들어졌다.

한때 중국 정부의 빈곤 완화 캠페인과 빅테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결합해 탄생한 ‘AI 데이터 라벨링 워크숍’이 이제는 차가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인공지능이 똑똑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이들을 가르쳤던 ‘스승’인 농촌 어머니들은 일터에서 밀려나고 있다.

5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AI 발전의 보이지 않는 공신이었던 중국 농촌 여성들의 위태로운 삶을 집중 조명했다.

◇ ‘어머니들의 희망’이었던 3D 어안 분할 작업


2019년 알리바바와 중국여성발전재단, 통런시 정부가 손잡고 세운 이 워크숍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시작됐다.

집 근처에서 아이를 돌보며 일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초기 인력의 절반이 어머니들이었다. 당시 월급 4,000위안(약 75만 원)은 지역 평균보다 35%나 높아 절대 빈곤 탈출의 ‘생명선’과 같았다.

도로와 신호등 이미지에 상자를 그리는 ‘데이터 라벨링’은 특별한 교육 없이도 가능했다. 이들이 매일 클릭한 데이터는 알리바바의 자율주행 AI에 입력되어 엔비디아 드라이브 플랫폼 등의 핵심 자산이 되었다.

워크숍 앞 광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머니들이 번갈아 돌보며 일하던 풍경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2020년 50명이 넘던 어머니 노동자는 현재 2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 AI가 똑똑해질수록 일자리는 사라진다


워크숍의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훈련시킨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제 AI 기업들은 단순한 사물 구분을 넘어 의료 진단이나 복잡한 학술 데이터 라벨링을 원한다. 대졸 이상의 학력과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새로운 채용 기준에 농촌 어머니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훈련된 대형 모델들이 이제는 기초적인 라벨링 작업을 스스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수작업이 필요한 영역이 줄어들면서 노동 단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아졌다.

2021년 중국 정부가 ‘절대 빈곤 종식’을 선언하자, 워크숍 운영을 떠받치던 정부 보조금이 급감했다. 시장 논리에 내던져진 워크숍은 효율성을 위해 어머니들 대신 젊고 빠른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 “눈은 흐릿하고 미래는 없다”… 사기 저하된 노동 현장


남아있는 어머니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월 수입은 전성기의 절반 이하인 1,800위안(약 34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루 8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며 마우스를 클릭하는 작업은 극심한 시력 저하와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지루하고 무감각해진다"는 토로가 이어지지만,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이들에게 대안은 많지 않다.

제출한 데이터가 ‘불충분’ 판정을 받으면 보수를 받지 못하는데, 그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불만이 높다. 정부가 뒤늦게 품질 기준 지침을 마련했으나 현장의 불신은 여전하다.

국영방송 CCTV의 최근 보도에는 워크숍의 주인공으로 어머니들 대신 ‘새로운 기술과 함께 성장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빈곤 구제라는 명분은 사라지고, 또 다른 저임금 IT 노동 현장으로 변모한 셈이다.

◇ 한국 IT 정책에 주는 시사점


AI 강국을 꿈꾸는 한국 역시 데이터 라벨링 등 단순 디지털 일자리의 수명이 짧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취약 계층을 위한 디지털 일자리 정책 수립 시, 단기 고용을 넘어선 직업 전환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 라벨링 시장이 저물고 의료, 법률, 공학 등 전문 데이터 시장이 커짐에 따라 국내 관련 스타트업들은 고숙련 인력 확보와 자동화 툴 개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생성하고 가공하는 '인간'의 노동 가치를 어떻게 산정하고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데이터 주권과 공정 배분 문제는 향후 글로벌 AI 규제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