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규제·호르무즈 리스크·배터리 가격 하락… '3중 필연'이 해상 전동화 가속
'배터리 교환' 모델로 항만 체류비용 혁파… HD현대·한화오션, 공급망 선점 시급
'배터리 교환' 모델로 항만 체류비용 혁파… HD현대·한화오션, 공급망 선점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 중동발 에너지 공급망 위기, 장기 하락하는 배터리 가격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힘이 동시에 작동하며 해상 전동화를 '피할 수 없는 산업 전환'으로 만들고 있다. CATL이 그 변곡점에서 가장 앞서 달리고 있다.
배터리 탑재 선박 900척 돌파… 연내 1000척 넘본다
CATL이 2017년 해양 부문에 진출한 이후 현재까지 전기·하이브리드 선박 약 900척에 배터리를 공급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CATL은 중국 연안과 강·항구를 오가는 소형 선박을 중심으로 해상 배터리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연간 결산에서 CATL의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출하량 시장점유율은 30.4%로 5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39.2%로 9년 연속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미국·노르웨이·이탈리아 등 5개국 선급협회의 형식승인도 취득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기반도 닦았다.
CATL의 해양 사업 부문을 이끄는 수이이(Su Yiyi) 총괄은 중국국제해사전시회(마린텍) 발표에서 "해운 탈탄소화는 다음의 확실한 조 달러 산업"이라며 "수명이 길고 해상 환경에서도 안전한 특수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해양 전담팀 규모를 500명 이상으로 두 배 넘게 늘리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왜 지금 해운인가"… 3중 구조적 압력이 동시 작동
해운 전동화 가속은 우연이 아니다. 세 가지 힘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IMO 규제다. IMO는 2050년까지 해운 분야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결정에 따라 2027년부터는 국제 항해에 투입되는 5000톤 이상 선박이 강화된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오염 물질을 쏟아내는 벙커씨유의 대안 찾기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
둘째, 에너지 안보 리스크다. 닐 베버리지 번스타인 중국 에너지 리서치 책임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폐쇄 우려로 에너지 공급망이 요동치면서 글로벌 전동화 추세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배터리 선박이 에너지 안보의 완충재로 주목받고 있다.
"EV 성공 공식, 바다에서 재현"… 배터리 교환이 게임체인저
CATL이 해운에서 꺼내든 핵심 카드는 '배터리 교환(Battery-swap)' 모델이다. 전기 트럭에서 적용했던 방식을 해상에 이식한 것으로, 선박 구매 시 배터리 가격을 제외해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고 선박이 항구에 정박할 때 방전된 배터리 팩을 완충된 팩으로 통째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교환 모델의 확산 여부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해운 산업의 ‘에너지 표준’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평가된다.
이 모델이 해운에서 특히 유력한 이유가 있다. 선박은 정박 시간 자체가 비용이기 때문이다. 수 시간이 소요되는 충전 대기 시간 없이 팩 교환으로 항만 체류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전기차보다 오히려 해운에서 먼저 상용화될 가능성도 업계에서 거론된다. 실제로 중국 지닝(Jining) 6006호 전기 화물선을 통해 화물선급 배터리 교환 타당성을 입증했고, 중국교통운수협회는 이를 2025년 '국가 교통·에너지 통합 혁신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수이이 총괄은 "선박 설계사, 조선소, 항구, 전력망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시스템적 협력이 필수"라며 광저우 등 중국 주요 조선 허브 도시들이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점을 긍정적인 신호로 꼽았다.
장거리 항해에는 한계… 하이브리드가 현실적 대안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형 화물선이 대양을 건너는 장거리 항해에 순수 전기 배터리를 쓰기에는 여전히 에너지 밀도라는 벽이 남아 있다. 덴마크 머스크의 맥키니 몰러 제로카본 해운 센터 예비 타당성 조사에 따르면, 현재 배터리로는 대형 원양선 전용 에너지원으로서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배터리와 내연기관을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단기적으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CATL 내부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 정비(Zheng Bi) 해양배터리 솔루션 이사는 "관광선·도시 여객선에는 순수 전기, 내륙 화물선에는 컨테이너형 배터리 교환 방식, 원양·특수 선박에는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균형 있게 설계한 복합 솔루션을 적용하는 다원화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배터리 하나로 모든 선박을 해결한다'는 단순 접근 대신 세그먼트별 맞춤 전략을 택한 것이다.
창업자의 '해양공학' 원점 회귀… 실적이 뒷받침
CATL의 이 같은 행보는 창업자인 쩡위춘(Robin Zeng) 회장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 쩡 회장은 대학 시절 해양공학을 전공했다가 석사 과정에서 전자공학으로 전공을 바꾼 인물이다. 수이이 총괄은 "선박 공학은 쩡 회장의 원래 전공이자 열정이 담긴 분야"라고 전했다.
실적 기반도 탄탄하다. CATL은 2025년 순이익 722억 1000만 위안(약 15조 780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42.28% 증가한 수치다. 매출액도 4237억 위안(약 92조 6100억 원)으로 17% 늘었다. 에너지저장장치 수요 급증이 실적 성장을 이끌었고, 글로벌 생산 능력도 772GWh로 확장됐다.
다만 배터리 교환 인프라가 중국 중심으로 구축될 경우, 글로벌 해운업계가 특정 국가 기술 표준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 조선 3사, 배터리 공급망 전략 세워야 할 때
CATL의 해상 배터리 공세는 한국 조선업계에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한 공급망 문제가 아니라, 한국 조선업이 ‘선박은 만들지만, 에너지는 타국에 의존하는 구조’로 고착될 수 있다는 의미다.
HD현대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는 LNG 이후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주력은 암모니아·수소 연료전지 기반 추진 시스템이다. 배터리 공급망에서는 국내에 CATL에 필적할 해양 전용 배터리 업체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해양 배터리 시장 진입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 조선소가 배터리 공급선을 중국에 의존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공급망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며 "국내 배터리 기업과 조선소 간의 전략적 협력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3년 내 원양 전기선박… 해운 패러다임 바뀐다
CATL은 3년 내 원양 순수 전기 선박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이이 총괄은 "현재 내륙 강·호수·연안을 커버하는 해양 사업이 이제 심해 응용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며 "조만간 순수 전기 선박이 공해를 항해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연료 전환이 아니라, 해운 산업의 에너지 주도권이 산유국에서 배터리 제조 기업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변화로 해석된다.
향후 시장 참여자들이 지켜봐야 할 체크포인트는 세 가지다. ① CATL의 배터리 탑재 선박이 1000척을 넘어 원양 노선으로 확장되는지, ② 배터리 교환 모델이 항만 인프라 투자를 끌어내며 중국 이외 시장에서도 상용화되는지, ③ 국내 배터리·조선 기업이 대응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지다.
전기차 시장에서 그랬듯, 가격과 인프라를 동시에 장악한 기업이 산업의 규칙을 정의한다. 해운에서도 그 승자가 CATL이 될 경우, 글로벌 물류의 에너지 질서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을 뒤흔든 가격 혁명이 해운에서 재현될 경우, 한국이 세계 1위를 지켜온 조선 산업의 판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CATL의 '바다 위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됐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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