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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민투표 정치’ 논쟁 확산…인구 상한 추진에 유럽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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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민투표 정치’ 논쟁 확산…인구 상한 추진에 유럽도 주목

지난 2020년 9월 15일(현지시각) 스위스 아들리스빌에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스위스를 위한 행동(AUNS)’이 내건 반이민 국민발안 찬성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포스터에 “점점 더 혼잡해진다. 반이민안에 찬성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0년 9월 15일(현지시각) 스위스 아들리스빌에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스위스를 위한 행동(AUNS)’이 내건 반이민 국민발안 찬성 포스터가 게시돼 있다. 포스터에 “점점 더 혼잡해진다. 반이민안에 찬성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로이터

스위스가 인구 상한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를 추진하면서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잦은 국민투표가 사회 갈등을 흡수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위스가 오는 6월 전체 인구를 1000만명으로 제한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데 이는 유럽연합(EU)과의 협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현재 스위스 인구는 약 910만명으로 상한이 도입될 경우 외국인 노동자 유입 제한과 함께 EU와의 자유이동 협정에도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 “기차도 과밀”…생활 불편이 정치 의제로

스위스에서는 일정 수 이상의 서명을 모으면 법안이나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의회 법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려면 5만명, 헌법 개정안은 10만명 서명이 필요하다.

이 같은 제도는 오랫동안 사회 갈등을 조기에 드러내고 조정하는 장치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민, 부유층 과세, 인구 제한 등 민감한 이슈가 잇따라 국민투표에 오르며 사회 분열을 키운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취리히에서 베른으로 향하는 출근 열차에서 만난 공무원 안나 뮐러는 FT와 인터뷰에서 “기차가 점점 더 혼잡해지고 있다”며 “그래서 이번 투표에 찬성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극단적 제안’ 증가…정치 전략으로 활용


실제 통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1891년 이후 스위스에서 실시된 국민발안은 229건이며 이 중 26건만 통과됐다. 과거에는 연간 1건 미만이었지만 최근에는 연평균 4건 이상으로 늘었다.

베른대 정치학과의 한스페터 샤우프 교수는 “스위스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사회 갈등을 드러내는 ‘조기 경보 시스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세르지오 에르모티 UBS 최고경영자(CEO)는 “전국 투표를 발의하기가 지나치게 쉬워졌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치권에서도 국민투표가 정책 도구를 넘어 선거 전략이나 ‘이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오르크 루츠 스위스 사회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은 “이제는 주류 정당도 적극적으로 국민발안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EU 관계·이민 문제까지…유럽 전반 확산 가능성


스위스의 국민투표는 유럽 정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민 제한 논쟁이나 EU와의 관계 문제는 이미 다른 국가에서도 주요 정치 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스위스에서는 2009년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 금지, 2014년 이민 제한 등 논란이 큰 국민투표가 실제로 통과된 사례도 있다.

오는 6월 인구 상한 투표 역시 접전이 예상된다. 정부와 기업계는 반대 입장이지만 뚜렷한 대안이 부족해 유권자들이 상한 도입에 찬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 “신뢰 흔들리면 제도 기반도 약화”


한편, 최근에는 서명 위조 의혹과 전자투표 오류 등 제도 신뢰를 흔드는 사건도 발생했다. 바젤슈타트에서는 전자투표 2000표 이상이 집계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샤우프 교수는 “직접민주주의는 시민 신뢰에 기반한다”며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위스의 변화가 단순한 국내 문제가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전반이 겪는 구조적 긴장을 반영하는 사례라고 보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