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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이란 ‘암흑 함대’가 공급망 붕괴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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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이란 ‘암흑 함대’가 공급망 붕괴 막았다

호르무즈 해협 ‘선택적 폐쇄’ 속 이중 해양 시스템 가동… 수출량 전쟁 전 수준 유지
러시아식 ‘그림자 물류’ 진화… 서방, 공급 충격 우려해 다크 플릿 작전 묵인하나
전 세계 석유 시장이 호르무즈 해협의 마비와 공급 중단 공포에 떨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이란의 이른바 ‘다크 플릿(Dark Fleet, 암흑 함대)’이 조용히 석유 흐름을 지탱하며 시장의 완전한 붕괴를 막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전 세계 석유 시장이 호르무즈 해협의 마비와 공급 중단 공포에 떨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이란의 이른바 ‘다크 플릿(Dark Fleet, 암흑 함대)’이 조용히 석유 흐름을 지탱하며 시장의 완전한 붕괴를 막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전 세계 석유 시장이 호르무즈 해협의 마비와 공급 중단 공포에 떨고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이란의 이른바 ‘다크 플릿(Dark Fleet, 암흑 함대)’이 조용히 석유 흐름을 지탱하며 시장의 완전한 붕괴를 막고 있다.

가시적인 지표상으로는 중동발 석유 수출이 9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보이나, 불투명한 소유 구조와 추적 회피 기술을 갖춘 그림자 선박들이 병행 시스템을 형성해 매일 15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실어나르고 있는 것이다.

12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가 시릴 위더쇼벤(Cyril Widdershoven)은 오일프라이스닷컴(Oilprice.com) 기고를 통해, 시장이 이란의 통제된 물류 시스템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호르무즈의 역설: ‘전면 폐쇄’ 아닌 ‘선택적 통로’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모든 이에게 열린 공해(公海)가 아니라, 이란의 묵인 아래 특정 선박만 통과할 수 있는 ‘규제된 관문’으로 변모했다.

서방과 연계된 정규 해운사는 보험 및 준수 규정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이란 연계 유조선과 불투명한 페이퍼 컴퍼니 선박들은 이란 해군의 관용 속에 해협을 유유히 통과하고 있다.

놀랍게도 현재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하루 150만~170만 배럴 사이로 추정되며, 이는 전쟁 전 수준과 거의 일치한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에만 1,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폐쇄된 줄 알았던 호르무즈를 통과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주변국들이 수출 제한으로 고통받는 동안, 이란은 해협 접근권을 규제하는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며 자국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

◇ 러시아에게 배운 ‘그림자 물류’… 정교해진 추적 회피 기술


이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를 피하기 위해 구축한 그림자 함대 모델을 자국 실정에 맞게 완성시켰다.
최소 40척 이상의 선박이 항해 중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끄거나 조작해 위치 추적을 피하고 있다.

이란 카르그 섬에서 적재된 석유는 인도양이나 동남아 해상에서 다른 유조선으로 옮겨 실어(Ship-to-Ship transfer) 출처를 세탁한다. 이 과정에서 석유의 최종 목적지는 주로 중국으로 향한다.

호르무즈 해협 밖에 위치한 자스크 터미널은 하루 100만 배럴의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 해협이 완전히 폐쇄되더라도 수출을 지속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 불편한 진실: 서방의 ‘전략적 묵인’과 모순된 정책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란의 다크 플릿을 전면 봉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공급 충격’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이란 석유를 시장에서 완전히 제거할 경우, 이미 치솟은 유가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세계 경제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란의 수입을 제한하려 하면서도, 시장이 대체하기 어려운 공급량을 유지하기 위해 암흑 함대의 작전을 일정 부분 용인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있다.

금융 시장은 공식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급 붕괴를 과대평가하여 가격을 책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림자 시스템이 위험을 완화하고 있는 셈이다.

◇ 가려진 위험: 불투명함이 잉태한 ‘장기적 취약성’


비록 다크 플릿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키고 있으나, 이는 본질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구조다.

암흑 함대 소속 선박들은 대부분 노후화되었고 관리가 부실하며, 제대로 된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단 한 번의 충돌이나 사고만으로도 막대한 환경 재앙과 함께 공급망이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공식적인 규칙이 아닌 정치적 관계와 접근성에 의해 흐름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글로벌 석유 시장은 규제된 층과 불투명한 층으로 양분되고 있다.

측정할 수 없는 흐름에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변수가 발생했을 때 시장은 더 파괴적인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 한국 에너지 업계에 주는 시사점


HMM이나 정유사들은 공식적인 유조선 이동 데이터뿐만 아니라, 그림자 함대의 활동과 연계된 대체 해상 경로의 물동량을 면밀 분석하여 원유 수급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란의 자스크 터미널 사례처럼, 특정 병목 지점(호르무즈)에 의존하지 않는 비상 도입로 및 전략적 비축 역량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선박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교차 검증할 수 있는 위성 분석 기술이나 블록체인 기반의 원유 이력 관리 시스템에 투자하여, 불투명한 공급망 속에서도 안정적인 자원 확보를 보장받아야 한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