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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코·엑슨모빌, 이란 전쟁 한 달 345조원 '전쟁 배당'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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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코·엑슨모빌, 이란 전쟁 한 달 345조원 '전쟁 배당' 챙겼다

유가 3월 최고 118달러 폭등 후 현재 95달러대…100대 석유기업 한 달 34조원 초과 이익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땐 배럴당 200달러…한국 수입물가 28년 만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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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코. 사진=연합뉴스
지금 이 순간에도 배럴당 95달러짜리 원유를 캐올릴 때마다, 그 가격 상승분의 상당 부분은 전쟁이 만들어낸 '공짜 돈'이다.

미·이스라엘 연합군이 이란을 공습한 지 한 달, 총성이 이어지는 사이 세계 최대 석유·가스 기업들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전례 없는 초과 이익을 쌓아 올렸다.

영국 가디언은 15일(현지시각) 기후 분석기관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와 에너지 정보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공동 분석 결과를 단독 공개보도했다.

분석에 따르면 세계 100대 석유·가스 기업이 지난 3월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전쟁 관련 초과 이익은 230억 달러(약 33조원), 시간으로 환산하면 매시간 3000만 달러(약 442억원)씩이다.
분석은 3월 평균 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기준으로 산출됐으며, 이 가격이 연말까지 유지될 경우 연간 추가 수익 합산액은 2340억 달러(약 345조 5000억원)에 이른다.

브렌트유는 3월 말 배럴당 118달러까지 치솟으며 선물시장 역사상 최대 월간 상승폭인 63%를 기록했다. 이후 미·이란 추가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16일 현재 배럴당 95달러대로 다소 내려앉았지만, 전쟁 이전(약 70달러)보다 여전히 35% 이상 높은 수준이다.

전쟁이 만든 '최대 수혜자'…아람코·엑슨·가스프롬의 공통점

수혜의 꼭대기에는 사우디 국영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가 있다. 올해 추정 추가 수익만 255억 달러(약 37조 6000억원)로 100대 기업 가운데 단연 1위다.

이란 전쟁 이전 아람코는 이미 2016년부터 2023년까지 하루 평균 2억 5000만 달러(약 369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온 기업이다. 전쟁은 그 압도적인 수익력에 또 하나의 가속 페달을 밟은 셈이다.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하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수십 년간 국제 기후협약의 속도를 늦춰온 핵심 주체들이다.

러시아 3대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Gazprom)·로스네프트(Rosneft)·루코일(Lukoil)의 올해 전쟁 관련 추가 수익 합산치는 239억 달러(약 35조 2800억원)에 달한다.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지난 3월 러시아의 하루 석유 수출 수입은 8억 4000만 달러(약 1조 2400억원)로 2월보다 50% 늘었다. 국제 사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줄을 죄려 할수록 이란 전쟁이 역설적으로 러시아 금고를 채워주는 구조다.

미국 엑슨모빌(ExxonMobil)은 올해만 110억 달러(약 16조 2400억원), 셰브런(Chevron)은 92억 달러(약 13조 5800억원), 셸(Shell)은 68억 달러(약 10조원)의 전쟁 관련 추가 수익을 거둘 것으로 추산된다.

이란 전쟁 발발 후 한 달 동안 엑슨모빌 시가총액은 1180억 달러(약 174조 2200억원), 셸 시가총액은 340억 달러(약 50조 2000억원) 불어났다. 셰브런의 마이크 워스(Mike Wirth) 최고경영자는 올해 1월부터 3월 사이 자사 주식 1억 400만 달러(약 1530억원)어치를 미리 팔아치운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위트니스의 패트릭 게일리(Patrick Galey) 뉴스조사 팀장은 "세계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석유 대기업은 호황을 누리고 일반인이 그 대가를 치른다"며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 의존을 끊지 않는 한 우리의 소비력은 강대국 지도자들의 변덕에 계속 묶여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왜 더 크게 흔들리나…'호르무즈 의존 70%'의 구조적 함정


초과 이익이 쌓이는 현장의 반대편 청구서는 한국에 가장 먼저, 가장 무겁게 날아들었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3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월보다 16.1% 올라 1998년 1월(17.8%) 이후 28년 2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특히 원화 기준 원유 수입물가는 전월보다 88.5% 폭등해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상승률이었다. 한국은행은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고유가나 원재료 공급 차질 영향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돼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6.5원으로, 고유가와 고환율이 겹치면서 에너지 수입 부담이 이중으로 가중되는 상황이다.

충격이 더 깊은 이유는 구조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원유 의존도 1위(국내총생산(GDP) 100만 달러당 5.63배럴)인 한국은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이 69.1%에 달한다.

블룸버그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는 원유 가운데 한국 비중은 12%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다. 폭 33km짜리 해협 하나가 막히면 한국 원유 공급망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구조가 50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연구기관에서는

전쟁이 수개월 더 지속된다면 배럴당 150달러, 경우에 따라서는 200달러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국영은행 KfW도 고객 보고서에서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시점이 내년 말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는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청와대는 강훈식 비서실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카자흐스탄·오만·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4개국을 방문해 올해 말까지 원유 2억 7300만 배럴과 나프타 210만t 확보를 이끌어냈다고 15일 밝혔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4월에는 5000만 배럴, 5월에는 6000만 배럴 규모의 대체 원유를 확보해 평시 월평균 수입 물량의 60~70% 수준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정유공장 가동률도 평시의 9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은 '횡재세'로 역공, 재생에너지 선택한 나라는 달랐다


석유 기업들이 전쟁 특수로 쌓아 올린 수십조원의 이익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압력이 유럽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독일·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오스트리아 재무장관 5명은 지난 4일 유럽집행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전쟁으로 이익을 본 기업들이 공공 부담 완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란 전쟁 이후 유럽연합(EU)의 화석연료 추가 지출은 220억 유로(약 38조 3000억원)에 달한다.

에너지·기후정보단(ECIU)의 제스 랄스턴(Jess Ralston) 에너지 팀장은 "이번 위기는 불안정한 화석연료 의존의 대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며 "탄소중립(net zero) 기술 투자야말로 영구적인 에너지 안보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E3G의 베스 워커(Beth Walker) 에너지정책 전문가는 "정부는 횡재 이익에 세금을 매겨 녹색에너지 전환을 앞당기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를 앞서 확충한 나라의 차이는 이번 전쟁에서 숫자로 드러났다. 영국은 지난 3월 한 달 풍력·태양광 발전 덕분에 10억 파운드(약 2조 원)어치 가스 수입을 줄였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풍력발전으로 절감한 소비자 부담 누적액은 1000억 파운드(약 200조원)에 이른다.

E3G의 마리아 파스투호바(Maria Pastukhova) 에너지전환 팀장은 "원산지가 자국이든 해외든 관계없이, 가정과 산업이 석유·가스에 묶여 있는 한 글로벌 가격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중동 원유 의존도를 50%대까지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고 분석했으며, 심해 가스전 탐사 프로젝트 등 자체 자원 개발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년 주기로 반복돼 온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이번에도 지나가고 나면, 50년째 굳어진 구조가 다시 한번 그대로 남을지가 진짜 질문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