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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BMW 안방 잠식한 中 전기차… '가성비' 넘어 '프리미엄'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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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BMW 안방 잠식한 中 전기차… '가성비' 넘어 '프리미엄' 선전포고

181개 신차 쏟아낸 베이징 모터쇼, 독일 3사 점유율 25% 급락에 폭스바겐 100만 대 감산
기술 주도권 뺏긴 유럽차의 굴욕… '헤리티지'보다 '미래 기술' 선택한 40대 큰손들
지커 SUV '9X'.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커 SUV '9X'. 사진=연합뉴스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철옹성이었던 고급차 시장을 정조준하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24일(현지시각) 개막하는 '2026 베이징 모터쇼(Beijing Auto Show)'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압도적 지배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로이터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에는 181개 양산 모델과 71개 콘셉트카가 출격하며, 특히 독일 3사(벤츠·BMW·아우디)의 핵심 타깃인 프리미엄 SUV와 스포츠 모델이 대거 포진했다.

이는 단순히 저가형 물량 공세를 넘어 기술력과 가치를 앞세워 고급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중국의 전략적 선언으로 풀이된다.

중국차의 도발, "포르쉐보다 빠르고 BMW보다 싸다"


이번 모터쇼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델은 덴자(Denza)의 'Z9 GT'와 지커(Zeekr)의 '8x'다. 지커 8x는 최고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SUV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3초 미만이다.

이는 판매가 13만 5000달러(약 2억 27만 원)를 웃도는 포르쉐 카이엔이나 20만 5000달러(약 3억 411만 원)에 달하는 BMW X5 M의 성능을 뛰어넘는 수치다. 반면 지커 8x의 중국 내 시작 가격은 약 5만 3000달러(약 7862만 원) 수준이다.

보 유(Bo Yu) 자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 분석가는 지난 2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시장 내 가격 전쟁이 이제는 가격 대비 가치를 따지는 '품질 전쟁'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치우 동슈(Ciu Dongshu)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 비서장은 "중국 자동차 구매층의 평균 연령이 30대에서 40대로 높아지면서 더 크고 고급스러운 가족용 차량을 선호하고 있다"며 "과거의 유산(Heritage)에 안주하는 독일 브랜드와 달리 중국 소비자는 미래 기술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독일차의 몰락… 5년 새 판매량 125만 대 '증발'

독일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은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S&P 글로벌 모빌리티의 시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 독일 브랜드의 합산 판매량은 2019년 510만 대에서 지난해(2025년) 385만 대로 무려 24.5% 급락했다. 5년 만에 125만 대 이상의 수요가 현지 브랜드로 옮겨간 셈이다.

글로벌 생산 비중에서도 아시아의 쏠림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의 최신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 승용차 생산량 중 아시아 비중은 62%(약 4890만 대)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은 2940만 대를 생산해 글로벌 점유율 37.4%를 차지했다. 이는 유럽연합(EU) 전체 생산량(1150만 대)의 약 2.5배를 웃도는 압도적 수치다.

중국 내 신규 등록 차량 또한 지난해 2420만 대를 기록하며 EU 시장 전체 규모(1080만 대)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필리페 무뇨스(Felipe Munoz) 자토 다이내믹스 수석 분석가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폭스바겐의 비명, 11% 감산과 5만 명 감원 '강수'


시장 점유율 잠식은 곧바로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인 폭스바겐(VW)은 비현실적인 생산 목표를 포기하고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올리버 블루메(Oliver Blume) 폭스바겐 그룹 회장은 지난 22일 독일 경제지 매니저 매거진(Manager Magazin)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시장 상황과 경쟁 환경을 고려할 때 과거의 물량 중심 계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전 세계 제조 역량을 약 100만 대(11%)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은 이미 중국 내 생산량을 100만 대 감축한 데 이어, 오는 2028년까지 유럽에서도 아우디와 폭스바겐 브랜드 합산 100만 대를 추가로 줄일 계획이다.

인력 감축 규모도 상당하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독일 본국에서만 전체 인력의 18%에 해당하는 약 5만 개의 일자리를 줄이는 고강도 혁신안을 실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차들이 소프트웨어 경쟁력과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시장까지 장악하기 시작했다"며 "브랜드 명성만으로 버티던 유럽 제조사들의 하락세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고 말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은 이제 '패스트 팔로어'를 넘어 '트렌드 세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자율주행 기술 등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분야에서 독일차를 앞서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폭스바겐의 감산 결정은 전통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과 중국주도 전기차 생태계로의 권력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향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디지털 기술'과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무한 경쟁 시대로 진입할 전망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