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내 기름값·가전값 왜 오르나…관세·방위비·통행료 '3중 폭탄' 터졌다

글로벌이코노믹

내 기름값·가전값 왜 오르나…관세·방위비·통행료 '3중 폭탄' 터졌다

자유무역의 종언, 안보가 비용이 된 시대, 한국 기업 생존 셈법
SCFI 한 달 새 37% 급등·방위비 8.3% 증가…수출 원가 하한선 영구 상승 국면
해상 운송비가 '통행세'로 굳어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해상 운송비가 '통행세'로 굳어지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해상 운송비가 '통행세'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선박 운항 비용이 내려가도 운임은 내려오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 홍해 후티 무장세력의 공격, ·중 반도체 수출 통제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해상 운임이 구조적 고착 상태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 운임은 물류비가 아니라 통행세"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DP월드가 올해 1월 발표한 글로벌 무역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기업 경영진의 90%가 올해 무역 장벽이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는 운송·물류·통관 전 분야에서 비용이 상당히 또는 급격히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같은 달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가 "관세를 보호주의·전략 도구로 계속 쓸 것"이라며 불확실성 장기화를 경고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상호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6월 철강·알루미늄 232조 관세를 확대했고, 8월에는 800달러 소액 면세(117만 원) 제도를 폐지했다. KPMG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1분기 수입량은 관세 시행 직전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급증했다.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재고를 사전에 쌓은 결과다. 문제는 이 재고·보험·우회 물류비용이 한 번 고정비로 전환되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세가 완화돼도 기업들이 쌓아둔 비용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지금 주목해야 할 3대 지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지금 주목해야 할 3대 지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


방위비·보안비, 기업 손익에 직접 전이


안보 비용의 민간 이전은 이미 기업 재무제표에 찍히기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동 긴장이 고조된 시점을 기준으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한 달 새 약 37% 급등했다. 더 심각한 것은 보험 비용이다. 홍해 후티 무장세력의 선박 공격이 이어지면서 해당 항로 통과 선박의 전쟁 위험보험료는 항로당 기존 1~2만 달러(1465~2930만 원)에서 최고 50만 달러(73200만 원)까지 치솟았다.

머스크·하팍-로이드 등 주요 선사들이 희망봉 우회 항로를 사실상 표준으로 채택하면서 아시아~유럽 노선 운임은 위기 이전 대비 25~35% 높은 수준에서 고착되고 있다. JP모건 공급망 연구는 희망봉 우회 시 컨테이너 1TEU200~400달러(29~586200)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선박보험 분석기관 클플러(Kpler)"보험 시장이 한번 올린 리스크 가격을 내리는 데는 몇 주가 아닌 몇 분기가 걸린다""일정 수준의 프리미엄 상승은 사실상 영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OECD는 지난해 12월 관세 불확실성과 공급망 변화를 이유로 한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을 2.2%에서 2.1%로 낮춘 데 이어, 올해 3월 중동 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을 반영해 1.7%로 재차 하향 조정했다.

국가 차원의 압박도 강해졌다. 미국 법무법인 모건루이스는 올해 기업 리스크 보고서에서 "무역 정책 변화가 계약 권리·가격 모델·투자 전략·공시 요건을 동시에 바꾸고 있으며, 리스크 관리와 지정학 분석은 이제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체감하는 압박은 특히 직접적이다. 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따라 올해 분담금은 15192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8.3% 늘었다. 국방부 예산은 6586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현행 2.7%에서 3.5%로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 비중이 3.5%로 올라서면 연간 국방비 증가액은 약 20조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안보 서비스'가 공공재에서 사실상 유료 구독 모델로 전환되는 구조가 국가 재정에 직접 반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JIT 해체·JIC 전환 가속…한국, 기회와 위기 사이


비용 충격은 기업의 운영 철학까지 바꿔놓고 있다. 글로벌 트레이드 리뷰(GTR)가 올해 1월 발표한 설문에서 기업들이 2026년 최우선 대응으로 꼽은 것은 공급망 다각화(51%), 재고 확충(44%), 우방국 중심 프렌드쇼어링(36%) 순이었다.

딜로이트는 미국 기업의 40%가 올해까지 공급망 일부를 북미로 이전할 것으로 예측했다. 수십 년간 글로벌 제조업을 지배했던 '적기 생산(JIT·Just-in-Time)''사전 비축(JIC·Just-in-Case)'으로 대체되는 흐름이 구조적 대세가 됐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수출 원가 압박이다. 해상 운임의 고정세화, 우회 항로 전환 비용, 전쟁 위험보험료 상승은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제품의 원가 바닥을 영구적으로 끌어올린다. 가격 전가가 어려운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제조업 구조에서 마진 훼손은 불가피하다.

둘째, 에너지 안보 비용이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도입한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정이 에너지 도입 비용에 즉각 전이되는 구조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만 상승해도 한국의 연간 에너지 수입 비용을 약 70억 달러(102500억 원) 늘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셋째, 국방비 재정 부담이다. 증가하는 국방비는 기업 세 부담과 공공 지출 구조를 바꿔 민간 투자 여력을 잠식한다.

다만 기회도 동시에 열린다. 미국이 2027 회계연도 국방 예산을 15000억 달러(2198조 원) 규모로 늘리면 K-방산의 글로벌 공급망 편입 기회는 그만큼 넓어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은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의 수출 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안보 비용의 상시화라는 위기가, 방위산업 경쟁력을 갖춘 한국에게는 새로운 산업 성장의 문을 여는 역설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봐야 할 핵심 지표 3가지


한국 기업과 투자자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는 세 가지다.

① 글로벌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 고착화 여부다. 운임이 '뉴노멀' 수준으로 굳어지는 시점이 한국 수출 기업의 원가 하한선 확정 시점과 일치한다. SCFI2,000포인트 위에서 6개월 이상 횡보하면 구조적 전환으로 봐야 한다.

② 미국 제조업 공장 착공 건수다. 미국 리쇼어링 속도가 빠를수록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대미 수출 기회가 달라진다. 미 상무부가 분기별로 발표하는 제조업 건설 투자 통계가 기준이 된다.

③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중 변화다. 이 수치가 3%를 넘어서는 시점이 기업 세 부담 변곡점이자 K-방산 수출 확대 가속 시점을 동시에 가리킨다. 현재 2.7%에서 3% 돌파까지의 속도가 관건이다.

안보를 '비용'으로 청구받는 시대에, 이를 '투자'로 전환하는 전략을 갖춘 기업만이 마진을 지킨다. 지정학 분석이 재무 전략의 핵심 변수로 편입된 지금, 공급망 설계를 바꾸지 못한 기업은 마진이 아니라 시장 자체를 잃는 수순을 밟게 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