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후 3배’ 코어위브 학습 효과… 월가, 적자보다 AI 인프라 선점 주목
엔비디아·빅테크와 겹겹이 쌓인 경쟁… 오픈AI·아마존 동맹이 생존 열쇠
엔비디아·빅테크와 겹겹이 쌓인 경쟁… 오픈AI·아마존 동맹이 생존 열쇠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혁명의 심장부인 칩 설계 시장에 거대어가 등장한다. 디 인포메이션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AI 전용 차세대 칩 설계 기업 중 최대 규모로 꼽히는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가 약 350억 달러(약 51조 5300억 원)의 기업 가치를 목표로 상장을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기업공개(IPO)는 단순히 한 기업의 상장을 넘어, 공모 시장이 얼마나 많은 AI 칩 설계 기업을 수용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코어위브가 쏘아 올린 공, AI 인프라 낙관론의 실체
세레브라스의 장밋빛 전망 뒤에는 코어위브라는 강력한 선행 지표가 있다. 코어위브는 지난해 주당 40달러(약 5만 8900원)에 상장한 이후 여러 차례 시장 흔들림을 겪었으나, 지난 금요일 114달러(약 16만 7800원)로 장을 마쳤다. 공모가 대비 3배에 가까운 성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코어위브가 데이터 센터 확장을 위해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월가가 이를 '건전한 투자'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AI 인프라에 대한 시장의 갈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주 앤트로픽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컴퓨팅 용량 확보 계약을 체결한 사례는 현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은 코어위브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에는 분명한 호재다. 하지만 칩 설계 기업인 세레브라스에도 동일한 공식이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레드오션' 변하는 AI 칩 시장… 세레브라스의 무기는 '빅테크 동맹'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엔비디아를 필두로 AMD가 추격하고 있으며, 구글과 아마존 역시 자체 AI 칩을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에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독자 칩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사실상 '칩의 홍수' 시대에 접어들었다. 중국의 화웨이를 포함한 아시아권 기업들의 도전 또한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세레브라스가 내세우는 강력한 무기는 '우군'이다. 세레브라스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를 주요 고객이자 주주로 확보했다. 오픈AI가 브로드컴과 손잡고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음에도 세레브라스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아마존 웹 서비스(AWS)에 칩을 공급하며 아마존의 자체 AI 칩인 '트레이니움(Trainium)'을 보완하는 전략적 위치를 점했다.
하지만 시장의 포화 상태는 부인하기 어렵다. 이미 그로크(Groq)는 기술 라이선스를 엔비디아에 넘기며 핵심 인재들을 흡수당했고, 그래프코어(Graphcore) 역시 메타에 엔지니어들을 뺏기다시피 하며 사실상 독자 생존의 길을 포기했다. 세레브라스 역시 상장 이후 독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대형 테크 기업에 인수될 가능성이 크다.
AI 인프라 거품론의 심판대… '실적 증명' 잣대 엄격해진다
세레브라스의 공모 시장 데뷔는 AI 테마만으로 자금이 몰리던 초기 투자 시대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코어위브가 막대한 적자에도 클라우드망 선점 효과로 시장의 환호를 받았다면, 칩 설계 분야는 평가 기준이 다르다. 투자자들은 이제 혁신적 설계 도면을 넘어 실제 빅테크 데이터 센터에 칩을 얼마나 납품했는지 냉정하게 따진다.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 비용을 덮을 만한 독보적 성능이나 원가 경쟁력이 없다면, 350억 달러라는 몸값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시장의 엄중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K-반도체 생태계의 생존법… '엔비디아 의존' 줄이고 신흥 동맹 묶어야
칩 설계 시장의 레드오션 진입은 한국 산업에 뚜렷한 과제를 던진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토종 팹리스(설계 기업)는 단순 범용 성능 경쟁을 멈추고, 특정 데이터 처리에 최적화한 맞춤형 칩으로 틈새를 뚫어야 한다.
나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쏠림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세레브라스 같은 신흥 설계 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초기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동맹을 맺고, 비(非)엔비디아 진영의 핵심 부품 파트너로 자리 잡는 선제적 영업망 확대가 시급하다.
투자자가 챙겨야 할 '체크리스트'
세레브라스의 상장은 AI 투자 열풍의 지속 여부를 판단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투자자들은 다음 세 가지 지표를 통해 이들의 미래를 가늠해야 한다.
첫째, 현금 소진 속도(Burn Rate)다.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도 매출 성장세가 이를 압도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둘째, 고객사 유지력이다. 오픈AI와 아마존이 세레브라스 칩 사용 비중을 실제로 늘리는가도 중요 판단 근거가 된다.
셋째, HBM 수급 경쟁력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적기에 제품화하는가도 지켜봐야 한다.
AI 칩 시장은 이제 아이디어 단계를 넘어 대량 생산과 생태계 구축 단계로 진입했다. 세레브라스가 단순히 '또 하나의 칩 설계사'에 그칠지, 아니면 엔비디아의 독주를 견제할 '게임 체인저'가 될지는 상장 이후 첫 분기 실적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승자는 기술력보다 누가 더 견고한 '계산 동맹'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레브라스의 상장은 그 거대한 동맹 전쟁의 서막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