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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완성차 공장, 中 전기차 업체에 줄줄이 넘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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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완성차 공장, 中 전기차 업체에 줄줄이 넘어가나

스텔란티스·포드·폭스바겐, 중국과 공장 공유·매각 협상… 단기 고용 유지냐, 장기 경쟁력 포기냐 기로
中 브랜드 유럽 전체 판매 9%, 전기차 14% 점유… 관세 우회 '현지 생산' 가속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의 수출용 전기차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산둥성 옌타이 항의 수출용 전기차들. 사진=연합뉴스


유럽 자동차산업이 중국 업체들과의 공장 공유·매각이라는 전례 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스텔란티스가 이달 스페인 공장의 중국 합작 파트너 이전을 공식 검토한 데 이어 포드, 폭스바겐까지 잇따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 자동차산업 재편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AFP 통신은 지난 8일(현지시각) 프랑코·이탈리아·미국계 복합 완성차 그룹 스텔란티스가 스페인 마드리드 비야베르데 공장을 중국 전기차 업체 리프모터에 부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스텔란티스는 2023년 약 18억 달러(약 2조 6499억 원)를 투자해 리프모터 지분 약 20%를 확보한 데 이어, 2024년 양사 합작법인 '리프모터 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그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공장 절반이 놀고 있다… 위기의 유럽 자동차벨트


코로나19 이후 유럽 완성차 시장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공장 평균 가동률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BYD(비야디), MG, 체리, 지리, 리프모터, 재쿠, 샤오펑 등 3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브랜드들이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포스에 따르면 이들 중국 브랜드의 유럽 전체 판매 비중은 9%, 전기차 판매에서는 14%까지 치솟았다.

중국 업체들의 유럽 공략이 더욱 거세지는 데는 구조적 배경이 있다.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들은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해 유럽 내 직접 생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체리자동차가 202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 닛산 공장 부지를 사들인 게 그 출발점이었다. 체리는 스페인 자동차 업체 에브로와 합작 투자를 통해 올해 안에 이 공장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9년까지 연간 최대 15만 대 생산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럽 현지 소형 전기차 개발을 위한 연구·디자인 센터를 파리에 설립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닛산은 유럽 최후의 거점인 영국 선더랜드 공장을 체리 또는 중국 둥펑자동차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텔란티스가 먼저 문을 열었다


유럽 완성차 업체 가운데 이 흐름을 공개적으로 받아들인 첫 사례는 스텔란티스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지난해 순손실 223억 유로(약 38조 원)를 기록한 스텔란티스는 비야베르데 공장 매각 검토와 함께 사라고사 공장에서도 리프모터 브랜드 모델 생산을 추진 중이다.

리프모터의 전기 크로스오버 'B10'이 오는 8월부터 사라고사 인근 피게루엘라스 공장에서 연간 최대 4만 대 규모로 생산될 예정이다.

오펠 브랜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사라고사에서 리프모터와 협력해 생산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 독일·중국 협업 모델은 여타 스텔란티스 차종의 개발 틀로도 활용될 것으로 전해진다.

블룸버그 통신은 스텔란티스가 오랜 협력사인 둥펑에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공장 각 1곳씩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현지 노동조합 관계자는 AFP에 둥펑 대표단이 최근 프랑스 공장을 방문했다고 확인했다.

포드 역시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 일부를 중국 지리자동차에 부분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지난 7일 확인했다. 지리는 브라질과 한국의 르노 공장 공동 소유주이기도 하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 올리버 블루메는 최근 "중국 차량을 유럽에 들여오거나 중국 파트너사와 협력하는 기회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방산 업체에 공장을 매각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블루메 CEO는 "공장 폐쇄는 최악의 선택이자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자동차 부품 업체 오피모빌리티(OPmobility)의 펠리시 부렐 CEO도 "유럽 공장을 중국 완성차 업체에 매각하는 것은 공급 과잉을 늘리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눈앞의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그러나 경계의 목소리도 거세다. 보르도대학교 자동차산업 전문가 베르나르 쥘리앵 교수는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악튀(autoactu.com) 기고문에서 "완성차 업체, 부품사, 근로자, 지방 당국 모두 폐업 대신 중국 업체에 매각을 택하는 데 유혹을 느낄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강력한 경쟁자에게 유럽 심장부에서 사업을 확장할 발판을 그대로 넘겨주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쥘리앵 교수는 스텔란티스처럼 유럽에서 입지가 흔들리는 업체들이 전동화를 사실상 중국 파트너에게 맡기는 구조로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같은 각자도생 전략은 중국 업체만 살찌우고 유럽 자동차산업을 무너뜨리는 결말로 이어질 것"이라며 "입법부만이 유럽 업체들이 이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논쟁의 배경에는 숫자가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3월 유럽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7% 성장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BYD의 유럽 전체 판매량은 같은 기간 약 7만 3800대로 점유율 2%대를 돌파했고, 체리자동차는 전년 대비 342% 급증한 6만 9907대를 팔았다. 중국 업체들의 3월 유럽 판매량 합계는 14만 대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스텔란티스의 공장 재편이 단순한 경영 선택이 아니라 유럽 자동차산업 전체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내수 시장은 올해 들어 경쟁 심화와 판매세 면제 축소로 하방 압력을 받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유럽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유럽 완성차 업계가 단기 일자리 보전과 장기 산업 경쟁력 사이에서 내리는 선택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