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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열전]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1승9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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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열전]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유니클로 1승9패"

 야나이 다다시(柳井正)/사진=홈피 이미지 확대보기
야나이 다다시(柳井正)/사진=홈피
유니클로가 서울 대표 쇼핑·관광 상권인 명동에 복귀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노저팬)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1년 명동에서 철수한 지 5년 만이다. 그 창업주이자 CEO인 야나이 다다시(柳井正)는 1949년 2월 7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야나이 히토시는 그가 태어난 해에 '오고리 상사'라는 소규모 남성용 정장 가게를 창업했다. 전형적인 지역 상인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초창기부터 뚜렷한 기업가적 야망이나 비전을 품은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학창 시절에는 록 음악과 히피 문화에 심취하며, 가업을 잇기보다는 편안하게 살 궁리를 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1971년 일본 명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대형 유통업체인 자스코(Jusco, 현 이온 그룹)에 입사했으나 관료적인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과 9개월 만에 퇴사하며 고향으로 낙향하게 된다.

1972년, 23세의 나이로 부친의 오고리 상사에 입사하여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배운 경제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낡은 유통 및 재고 관리 방식을 개혁하고자 했으나,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직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이 퇴사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암흑의 10년'은 야나이 다다시가 매장의 모든 실무를 직접 감당하며, 기존 의류 유통 구조의 모순과 비효율을 뼛속 깊이 깨닫는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1984년, 부친으로부터 사장직을 물려받으면서 그는 단순한 양복점을 넘어선 거대한 경영 혁신을 본격화했다. 1991년 회사명을 '패스트리테일링'으로 변경하고, 현재는 일본 최고 부호이자 글로벌 패션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매김했다.

야나이 다다시는 다단계 유통 구조와 악성 재고 부담으로 인해 옷값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는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간파했다. 1984년 6월, 그는 히로시마에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Unique Clothing Warehouse)' 1호점을 개장했다. 훗날 상호 등록 과정의 실수로 'UNIQLO'가 된 이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일원화하는 SPA(제조 직매형 의류) 모델을 도입한 것이었다. 미국 갭(GAP) 등의 방식을 벤치마킹하되, 이를 일본 특유의 정밀한 품질 관리와 결합해 '좋은 옷을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특히 1998년 도쿄 진출과 함께 대히트를 기록한 플리스(Fleece)와 이후 출시된 히트텍(Heattech)은 글로벌 소재 기업인 도레이(Toray)와의 합작을 통해 원천 기술을 확보한 결과물이었다. 생산 거점을 철저히 해외로 다변화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를 최적화한 그의 전략은, 거시경제 흐름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고 불황기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한 구조적 승리였다.

그의 경영 철학은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이념에 집약되어 있다. 의류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품질의 생활 필수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1승 9패'는 치명적이지 않은 실패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실용주의적 도전을 상징한다. 그는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며 최선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전락했다"며, 신산업 시대에 진입했음에도 과거 제조업의 영광에 매몰되어 있는 기업 생태계와 역동성을 잃은 국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철저한 능력주의를 신봉하여 자녀에게 기업의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천명함으로써,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를 확립하고자 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