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선별적 통제' 본격화…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 증폭

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선별적 통제' 본격화… 에너지 시장 불확실성 증폭

이란, 이라크·파키스탄과 개별 협상하며 '통행권' 무기화
국제 원유·가스 수급망 체계 붕괴… 공급망 리스크 상시화 우려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에너지 물류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선별적 통제' 아래 놓이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Oilprice.com)은 지난 13일(현지시각),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흐름을 국가별로 선별하여 허용하기 시작했다"라며 "전통적인 자유 항행 원칙이 무너지고 이란의 입김이 작용하는 불투명한 거래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라크·파키스탄, 이란과 '물밑 거래'로 숨통… 국제표준 무력화


이란의 이러한 행보는 인접국인 이라크와 파키스탄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제2의 산유국인 이라크는 국가 재정 수익의 95%를 원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탓에 경제적 고립 위기에 처했다.

이라크는 터키 지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소량의 원유를 내보내고 있지만, 주력 수출항인 바스라(Basrah)항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최근 이라크 석유부 관계자가 로이터 통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라크는 이란 측과 개별 협상을 진행해 지난 주말 바스라산 원유 약 400만 배럴을 실은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을 해협 밖으로 안전하게 이동시켰다. 이라크 정부는 추가적인 원유 수송을 위해 이란과 지속적인 개별 협상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파키스탄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카타르산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중단으로 심각한 전력난을 겪던 파키스탄은 이란과의 양자 합의를 통해 최근 카타르산 LNG 선박 2척의 통행권을 확보했다.

중동 에너지 사정에 정통한 시장 관계자들은 "이라크와 파키스탄 모두 직접적인 대가를 지불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란의 통제권 아래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by-Case)'식 허가를 받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해운 물류의 '암흑지대'화… 가시성 사라진 호르무즈

문제는 이러한 '선별적 개방'이 국제 해운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해상 물류 정보 업체 윈드워드(Windward)는 최근 분석 보고서에서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상업용 선박들의 움직임이 기존의 투명한 감시 체계 밖에서 작동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과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던 국제 공해(公海)의 성격이 사라지고, 이란의 정치적·전략적 판단에 따라 통행 여부가 결정되는 '폐쇄적 클럽'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RBC 캐피털 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원자재 전략 책임자는 "이란은 2015년 핵 합의(JCPOA)에 준하는 조건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인 운영권까지 거머쥐려 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강경 노선과 맞물려 장기화 가능성… 공급망 재편 압박


에너지 시장의 시선은 미국 백악관으로 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이란이 제시한 협상안을 두고 "쓰레기(Garbage)"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미국의 초강경 대응과 이란의 해협 통제권 강화가 정면충돌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자유 항행 복구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근본적인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너지 투자법인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상시 리스크 지역'으로 분류되면서 해상 보험료 급등과 함께 대체 경로 확보를 위한 비용 부담이 급격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선별적 통제는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자원 민족주의'의 변종으로, 한국처럼 중동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는 원유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유 관리 체계 강화를 요구하는 엄중한 신호가 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