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법 발효 10개월, 디파이 청산 역대급·연준 금리 인상 확률 50% 돌파
워시 의장 취임 즉시 인상 압박… "디지털 달러로 달러 빚 막기" 한계론
워시 의장 취임 즉시 인상 압박… "디지털 달러로 달러 빚 막기" 한계론
이미지 확대보기"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를 사들이게 하라."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 적자 완화의 우회 수단으로 민간 디지털 화폐를 낙점했다. 지난해 7월 발효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그 설계도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각) 공식 취임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금리 인하와 거리가 멀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연 3.8%로 치솟은 가운데, CME 페드워치는 올 12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50%를 웃도는 수준으로 반영한다. 인위적 유동성의 이면에서 상업은행 연쇄 뱅크런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스테이블코인으로 국채 수요 창출… 국채 조달 비용 낮추는 구조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7월 "지니어스법이 미 국채에 구조적 수요를 내재시킨다"고 분석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같은 날 성명에서 이 법을 "미국의 디지털 자산 주도권 확보에 필수적"이라 규정하며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 수요 급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 글로벌 시가총액은 지난해 중반 2900억 달러(약 439조 원)에 달했다. 주요 발행사 서클(Circle)은 준비금 대부분을 단기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Repo)으로 운용한다. 결과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 확대가 미 국채 조달 비용을 낮추는 간접 효과를 낸다는 것이 경제학계의 분석이다.
다만 완충 요인도 있다. 지니어스법이 규정한 1대1 담보 의무와 월간 공시 요건은, 아무 자산도 없이 발행되다 2022년 붕괴한 테라-루나식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과 구조적으로 다르다. 법 지지론자들은 "규제 공백을 제도로 채운 것 자체가 시스템 리스크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디파이 레버리지와 유동성 불일치… SVB 경로의 재연 가능성
진짜 뇌관은 탈중앙화금융(DeFi·이하 디파이) 생태계와 제도권 스테이블코인의 결합이다. 디파이 프로토콜은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일부 고위험 구조에서 두 자릿수에서 30%대까지 수익을 제시하며 연쇄 대출을 유인한다. 뱅크폴리시인스티튜트(BPI) 집계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10일 글로벌 암호화폐 강제 청산 규모는 200억 달러(약 30조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유동성 불일치'다. 미 연준은 지난해 12월 공개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24시간 실시간 환매 압력을 받는 반면, 담보 국채는 전통 금융시장이 열리는 평일 거래 시간에만 처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말이나 야간에 악재가 터지면 발행사는 담보를 팔지 못한 채 인출 압박을 홀로 받는 구조다.
이 경로는 전례가 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서클은 33억 달러(약 4조 9,990억 원)의 준비금을 해당 은행에 예치해뒀다. 서클이 자금 접근 불가를 공시하자 USDC는 0.87달러까지 폭락하며 달러 페그가 무너졌다. SVB와 직접 연관이 없던 스테이블코인 DAI도 연쇄적으로 페그를 잃었다. 연준 보고서는 이를 "코드 기반 금융 상품이 전통 금융 충격을 증폭시킨 전형적 사례"라 규정했다.
버클리대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WEF 기고(지난해 7월)에서 "공황 상태의 고객이 환매를 요구하면 발행사가 담보 국채를 내다 팔아야 하고, 그 결과 국채 가격이 폭락하며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BPI는 올해 1월 보고서에서 "디파이 대출 플랫폼 담보 자산이 5% 하락만 해도 강제 청산 연쇄 반응이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SVB 사태 당시의 세 배를 웃돈다.
국채 몰빵의 역설… "지니어스법이 되려 '머니마켓 런' 부추길 것"
지니어스법이 민간 자금으로 미 국채를 떠받치는 구원투수처럼 묘사되지만, 학계와 채권시장 전문가들의 시선은 냉혹하다. 1대1 단기 국채(T-bills) 담보 의무화가 오히려 특정 자산에 대한 과도한 쏠림을 유발해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가 뒤틀릴 때 발생한다. CME 페드워치가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을 50% 이상으로 반영하고 필라델피아 연은 서베이에서 이번 분기 CPI 전망치가 6%까지 치솟은 현 상황이 대표적이다. 금리가 예상 밖으로 가파르게 오르면 단기 국채 가격은 일제히 하락(국채 금리 급등)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지니어스법 발효 이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미 국채 시장의 초거대 고래로 성장했기 때문에, 시장이 흔들려 스테이블코인 환매 압력이 조금만 발생해도 이들이 담보로 쥔 국채를 시장에 투매해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짚었다.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가 경고한 '발행사의 국채 투매 ➡ 국채 가격 폭락(금리 급등) ➡ 전통 금융시장 붕괴' 시나리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가 설계한 "디지털 달러를 통한 재정 적자 우회 메커니즘"은 국채 시장이 안정적일 때만 작동하는 반쪽짜리 안전판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니어스법이 규제 공백을 메운 것은 사실이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와 미 국채 시장의 운명을 하나로 묶어버림으로써 리스크의 덩치를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워시 연준의 딜레마… 인상론이 고개를 든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상원의 54대 45 표결로 인준돼 지난 15일 공식 취임했다. 연준 역사상 가장 격렬한 분열이었다. 취임 직후 그가 마주한 지표는 냉혹하다. 노동통계국(BLS) 기준 4월 CPI는 전년 대비 3.8% 상승해 시장 예상(3.7%)을 웃돌며 3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연 6.0% 올라 예상치(4.9%)를 크게 초과했다. 주거비를 제외한 핵심 서비스 물가는 한 달 새 0.5% 뛰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를 낙점한 것은 금리 인하를 겨냥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서베이(2026년 5월)에 따르면 전문 예측단은 이번 분기 CPI가 6%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직전 전망치(2.7%)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CNBC는 5월 15일 "CME 페드워치 기준 12월 인상 확률이 약 51%로, 2027년 초에는 60%를 넘어선다"고 보도했다. JP모건 전략가들은 "연준이 2026년 내내 금리를 동결할 것"을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에버코어 ISI의 크리슈나 구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달 중순 메모에서 "4월 CPI는 금리 인하 가능성 앞에 장벽을 세웠고, 인상론에 힘을 실어줬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와 적자 재정은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고, 연준은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완화 카드를 꺼내지 못한다. 거시 정책 간 구조적 충돌이 본격화하고 있다.
서학개미 투자자 체크포인트 3가지
첫째, CME 페드워치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을 매주 확인해야 한다. 현재 12월 기준 약 51%인 인상 확률이 추세적으로 굳어지면, 시장 참여자들은 위험자산 전반의 재편 신호로 읽는다. 에버코어 ISI는 이 구간에서 고평가 기술주와 디파이 레버리지 상품이 가장 먼저 조정받는다고 분석했다.
둘째, 서클·테더 등 주요 발행사의 월간 준비금 공시 보고서를 주시해야 한다. 지니어스법은 발행사의 월간 공시를 의무화했다. T-bills 비중이 급감하거나 환매 지연 공지가 뜨면 스테이블코인 디페그(달러 연동 붕괴)의 초기 경보다. 2023년 SVB 사태처럼 공시 후 수시간 안에 연쇄 청산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연준 보고서의 분석이다.
셋째, 미국 중소형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CRE) 부실채권 비율을 점검해야 한다. 대형 은행보다 중소형 기관의 부실채권 증가 속도가 빠를 경우 SVB형 유동성 위기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BPI는 "이자를 주는 수익형 스테이블코인(Yield-bearing Stablecoin)이 상업은행 예금을 잠식한다"고 올해 1월 경고했다. 해당 은행 주식, 관련 고위험 채권은 선제 비중 축소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우세한 시각이다.
'디지털 달러로 달러 빚을 막는' 실험의 한계는 연말로 갈수록 선명해진다. 고수익 디파이 상품 노출을 줄이고, 실물 금과 현금 비중을 높이는 방어적 재편이 지금 필요한 이유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