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자로 공급망 병목으로 호주 인도 지연 우려… 한국 민간 인프라 주목
기술적 한계·원자력 협정 장벽 여전… ‘조건부 수혜’ 관점 접근 필요
기술적 한계·원자력 협정 장벽 여전… ‘조건부 수혜’ 관점 접근 필요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의회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거대 전함 건조 계획에 따른 원자력 공급망 과부하 위험을 공식 경고했다. 미국 해군의 원자로 생산능력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호주에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을 공급하기로 한 오커스(AUKUS) 동맹의 전략 일정에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반면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 조선 인프라와 원전 제조 역량을 동시 보유한 한국은 저농축 우라늄(LEU) 기반의 독자 핵잠수함 건조 전략을 구체화하며 반사이익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다만 실제 수혜로 이어지기까지는 한미 원자력 협정의 한계와 기술적 장벽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미 원자로 독점 공급망 '과부하'… 오커스 잠수함 인도 전선에 차질 우려
호주 공영방송 ABC는 6일(현지시각) 미 하원 군사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황금 함대(Golden Fleet)’ 계획이 기존 핵추진 함정 건조 일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15척 이상의 ‘트럼프급’ 원자력 추진 전함(BBG(X))을 건조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첫 함정인 ‘디파이언트’의 인도 목표 시점은 오는 2036년이다.
여기에 함정용 원자로 연료와 핵심 모듈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BWXT 테크놀로지스에 의존하는 구조가 발목을 잡는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법안을 통해 트럼프급 전함 사업이 본격화할 경우 기존 핵추진 잠수함과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원자로 공급망을 추가로 잠식할 수 있다는 '의회 차원의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유안 그레이엄 선임연구원은 “미국 해군 조선소는 이미 자국 함대 현대화 작업만으로도 포화 상태”라며 공급망 지연 리스크를 지적했다.
한국, '자체 건조' 노선 구체화… 민간 제조 역량 부각되나 기술 장벽 뚜렷
미국의 제조 병목 현상은 한국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SNS를 통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며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건조 장소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선체와 원자로는 국내 자체 기술로 직접 만들고 미국과는 연료 협의만 진행한다는 기조하에 '국내 자체 건조' 방침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26일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건조 사업을 '장보고 N사업'으로 공식화하고, 국내 원전 및 조선 역량을 활용한 저농축 우라늄(LEU) 기반의 독자 개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군 당국은 향후 10년 안팎인 2030년대 중반까지 1번 함을 진수하고 2030년대 후반 실전 배치를 완료한다는 구체적 목표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호주와 달리 강력한 민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구조적 이점이 크다고 평가한다. 방산업계에서는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와 독보적인 원전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호주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미국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인도 시기를 장담할 수 없는 호주와 달리, 국내 방산 생태계 내부에서 예산을 소화해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약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이 강점을 가진 민간 원전 제작 역량이 곧바로 잠수함용 원자로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병행 평가가 필요하다. 증권가에서는 원자로 소형화 외에도 펌프제트 추진, 저소음 축계, 전투체계 통합 등은 민간 원전 기술과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며 기술적 위험을 경고한다. 특히 미국과 영국이 고농축 우라늄(HEU)을 사용해 장기간 연료 교체 없이 운용하는 것과 달리, 저농축 우라늄(LEU)을 사용할 경우 주기적인 연료 교체가 필요해 잠수함의 장기 작전 지속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의 높은 벽… 투자자가 주시해야 할 3대 조건부 지표
가장 큰 변수는 잠수함용 연료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이다. 현행 협정은 미국산 우라늄을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최근 양국 정부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두고 실무 협상에 착수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으나, 협정 개정이 곧바로 핵잠수함 보유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일본의 사례를 보면 미국으로부터 재처리 권한을 허용받았음에도 군사적 활용은 철저히 금지당한 전례가 있다. 미국이 한국에 양보를 하더라도 농축 권한 자체를 주기보다 완제품 형태의 연료 공급 방식을 고집할 가능성이 커, 협상의 실질적 흐름을 보수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이에 따라 방산 및 원전 시장 전문가들은 협정 개정과 예산 확정, 기술 검증이 동시에 충족되는 '조건부 수혜' 관점에서 다음 세 가지 지표를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한미 원자력 협정 내 '군사적 추진 기관용 연료 공급'의 예외 인정 범위다. 완제품 연료 도입 방식에 그치는지, 혹은 국내 독자 재처리 권한까지 포괄하는지에 따라 원자로 압력용기 및 주기기 제작 역량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 등 원전 기자재 기업들의 실질적 낙수효과 규모가 달라진다.
둘째, 민간 주도 소형모듈원자로(SMR)의 해상 적용 기술 인증과 군사적 규격 충족 속도다. 잠수함 내부의 극한 환경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초소형 원자로 설계 능력이 입증되어야 실제 건조 계약으로 연결될 수 있다.
셋째, 국방중기계획 내 차세대 잠수함 예산의 공식 반영 여부다. 정부의 재정 투입 신호가 확인되어야 특수선 설계·건조 및 MRO(유지·보수·정비) 역량을 보유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사들이 리스크를 분산하고 특수선 전용 도크를 선제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글로벌 안보 공급망의 과부하 속에서 오커스의 공급망 리스크는 역설적으로 한국 민간 조선·원전 역량의 가치를 환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만 미국 해군 건조 역량의 한계가 한국에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의 복잡한 정치적 승인과 잠수함 특유의 독자적 기술 결합이라는 두 가지 핵심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