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 뉴욕증시 월스트리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린 소셜미디어 게시글 하나로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는 본인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씨티그룹과 최고경영자(CEO) 제인 프레이저(Jane Fraser)를 향해 파격적인 찬사를 보냈다. 씨티그룹이 올해 1분기 인수·합병(M&A) 자문 부문에서 대망의 1위를 차지했다며, 이를 "씨티의 대반전(Big Turnaround)"이라고 치켜세운 것이다.
이 찬사는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월가 전체의 실소를 자아냈다. 블룸버그와 딜로직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공인된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씨티그룹의 전체 M&A 자문 순위는 각각 7위와 5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즐겨보는 폭스비즈니스 방송에서 한 앵커가 출처 없이 언급한 '전력(Power) 부문 M&A 1위'라는 지엽적인 데이터를 트럼프가 오인하여 '전체 1위'로 둔갑시켜버린 촌극이었다. 트럼프의 포스팅 직후 씨티그룹의 주가는 일시적으로 1% 이상 급등했다가 사실관계가 바로잡히며 곧바로 차익실현 매물과 함께 내림세로 돌아섰다. 경쟁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은 "순위표 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지어내게 하면 된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트럼프 리스크'의 전형을 보여준 사건이었으나, 이 해프닝은 동시에 월가에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트럼프는 왜 수많은 글로벌 금융사 중 유독 씨티그룹을, 그리고 제인 프레이저를 콕 집어 그토록 가차 없는 '위인설관식' 칭찬을 늘어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월가 2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제인 프레이저의 혹독한 경영 철학과, 권력의 대전환기를 포착해 낸 그녀의 탁월한 정무적 수완이 자리 잡고 있다.
제인 프레이저가 씨티그룹에 안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당시 씨티그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정점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미국 정부의 대규모 구속금융(Bailout)으로 간신히 연명하던 암흑기였다. 그때 프레이저는 씨티그룹의 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방만한 구조를 재편하는 '소방수' 역할을 자처했다. 그녀는 냉철한 맥킨지식 분석력을 바탕으로 돈이 되지 않는 사업부를 도려내고, 씨티 프라이빗 뱅크(자산관리) CEO, 라틴아메리카 CEO 등을 역임하며 맡는 부서마다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특히 중남미 시장에서 고전하던 씨티의 사업을 재정비해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안착시키면서 그룹 내에서 '위기관리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녀는 2019년 씨티그룹 사장 겸 글로벌 소비자금융 대표로 승진했고, 마침내 2021년 3월, 마이클 코뱃의 뒤를 이어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이는 월가의 메이저 6대 은행(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을 통틀어 200년이 넘는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 탄생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월가 유리천장을 철저히 실력과 성과로 깨부순 것이다. CEO에 취임한 제인 프레이저 앞에는 거대한 난제가 놓여 있었다. 당시 씨티그룹은 방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랑했으나, 정작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경쟁사인 JP모건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덩치만 비대하고 내실은 없는 '비만형 공룡'이었던 셈이다.
프레이저의 진단은 명확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는 은행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그녀는 취임과 동시에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발표했다. 그 핵심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소매금융(소비자금융) 부문의 전면 철수였다. 한국을 비롯하여 호주, 동남아, 중남미 등 전 세계 13개 안팎의 국가에서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금융 사업을 매각하거나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한국씨티은행 역시 이 과정에서 소매금융 부문을 완전히 정리하는 아픔을 겪었다. 소매금융은 지점 유지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이 막대한 반면, 빅테크와의 경쟁 심화로 마진은 갈수록 떨어지는 사업이었다. 프레이저는 이 비효율적인 팔다리를 과감히 잘라내고, 씨티그룹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닌 기업금융(IB), 자산관리(WM), 그리고 글로벌 자금결제 서비스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내부 조직 개편 역시 잔혹할 만큼 무자비했다. 경영진 단계를 기존 13단계에서 8단계로 대폭 축소하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고, 수만 명에 달하는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월가에서는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를 두고 '냉혈한 컨설턴트의 귀환'이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 잔혹한 처방전은 실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최근, 씨티그룹은 10년래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구조조정 비용 반영이 끝나가고 기업금융과 주식 매매 부문에서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서프라이즈 실적을 달성하면서, 시장은 그녀의 개혁에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주가 역시 바닥을 치고 가파르게 반등하며 프레이저의 경영 능력을 입증해 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여 백악관으로 복귀하자, 프레이저의 이 도박은 거대한 정치적 자산으로 돌아왔다. 프레이저는 트럼프 취임 이후 법인세 감면과 금융 규제 완화(도드-프랭크 법안 완화 등)를 골자로 하는 '트럼포노믹스'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친트럼프 행보를 노골화했다. 트럼프가 애청하는 폭스비즈니스 방송에 수시로 출연해 정부의 경제 정책이 미국 기업들의 야성적 충동을 깨우고 있다며 비행기를 태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당시에는 블랙록의 래리 핑 크 회장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 금융 리더 자격으로 경제사절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트럼프의 외교적 레버리지를 활용해 씨티그룹의 중국 내 사업권을 확보하려는 철저한 정경유착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 것이다. 트럼프가 사실관계마저 왜곡해가며 소셜미디어에 씨티그룹과 제인 프레이저를 향해 찬송가를 부른 배경에는, 이처럼 대안이 없는 깊은 유대감과 트럼프 특유의 '내 사람 챙기기' 정서가 깔려 있다.
제인 프레이저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 뱅커라는 아웃사이더의 열악한 조건을 딛고 일어나 월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그녀는 맥킨지식 냉철함으로 씨티그룹의 방만한 제국을 해체하고 효율적인 강소 은행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그녀는 월가의 엘리트주의적 품격 속에 숨겨진 위선을 간파하고, 권력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했다. 남들이 리스크라고 고개를 저을 때 트럼프라는 거대한 정치적 자산에 베팅할 줄 아는 과감함이야말로 오늘날 그녀를 월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든 원동력이다.
이번 트루스소셜의 1위 조작 해프닝은 비록 실무적인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시장에 준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제 월가에서 규제 완화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을 은행이 어디인지, 그리고 백악관의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는 금융 권력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다루는 구조조정 전문가에서 권력의 심장부를 파고든 정치 거물로 진화한 제인 프레이저. 그녀가 이끄는 씨티그룹의 거침없는 질주가 트럼프 행정부의 비호 아래 월가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