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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선전 모방은 환상”… 홍콩 AI 정책, ‘밑 빠진 독에 돈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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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선전 모방은 환상”… 홍콩 AI 정책, ‘밑 빠진 독에 돈 붓기’

레지나 입 행정위원회 핵심 의장, 막대한 자금 투입 대비 허술한 뼈대 질타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 쏟아붓지만… 비싼 전기료 탓에 데이터센터 사업 타당성 의문
AI 도입 확대로 청년 일자리 직격탄… 지난해 신입 졸업생 채용 공고 전년 대비 55% 급감
홍콩 정부는 최근 인공지능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전례 없는 대규모 자금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홍콩 정부는 최근 인공지능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전례 없는 대규모 자금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홍콩 정부가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부으며 추격전에 나섰으나, 실리콘밸리나 선전 같은 거대 기술 도시를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홍콩의 처지에 맞는 현실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안목이 시급하다는 조언이 제기됐다.

인프라 구축과 보조금 지급에만 치중한 현 정책 기조는 알맹이 없는 예산 낭비로 전락할 수 있으며, 인재 양성과 윤리 기준, 노동 시장 변화를 모두 아우르는 체계적인 틀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8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게재된 레지나 입(Regina Ip) 홍콩 행정위원회 핵심 의장(소집자) 겸 신인민당 의장의 기고문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최근 인공지능을 미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전례 없는 대규모 자금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다.

수십억 달러 자본 투입의 그늘… ‘비싼 전기료’에 발목 잡힌 데이터 센터


그동안 홍콩 정부는 반도체 센터 건립에 28억 4,000만 홍콩 달러(미화 약 3억 6,400만 달러), AI 보조금 사업에 30억 홍콩 달러(약 5,880억 원), 첨단 연구개발 연구소에 10억 홍콩 달러를 배정하는 등 인프라 강화에 공을 들였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샌디 릿지 지역에 대규모 컴퓨팅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11헥타르에 달하는 대형 부지를 파격적으로 제공했다. 오는 2032년까지 홍콩의 인공지능 연산 능력을 현재보다 36배나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포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형 사업들은 시작부터 현실적 장벽에 부딪혔다. 중국 본토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홍콩의 전기 요금 체계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을 유인할 상업적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의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술 거두들이 인공지능 주권을 잡기 위해 매년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고, 월가의 골드만삭스가 올해 미국 내 AI 자금 유입액 전망치를 8,0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한 것과 비교하면 홍콩 정부의 예산 규모는 매우 적은 수준이다.

철저한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 ‘돈 쏟아붓기’는 결국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공지능이 청년 일자리 삼켰다”... 신입 공채 55% 폭락한 노동 시장 구조 변화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도입은 홍콩 노동 시장의 근간을 뒤흔들며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홍콩의 핵심 축인 전문 서비스 업종이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인공지능 도구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면서, 청년들이 진입해야 할 초급 일자리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홍콩 시내 8개 공공 대학의 공동 채용 시스템이 발표한 통계는 고용 한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2025년 기준 대학 졸업생들을 위한 신입 사원 채용 공고 건수가 전년 대비 무려 55%나 급감한 것이다.

정부가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겠다며 2년 내 주민 5만 명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초·중·고등학교 디지털 개발 청사진을 발표했으나, 교사들의 준비 부족과 일자리 구조조정 흐름 탓에 기존 기술만 가진 청년들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홍콩의 현실적인 생존법… “본토와 세계를 잇는 우수한 다리가 되어야”


레지나 입 의장은 홍콩의 인공지능 전략이 인프라 확장과 기업 보조금이라는 단편적인 대책에만 머물러 있는 점을 강도 높게 짚었다. 싱가포르가 총리 직속의 국가 AI 위원회를 설립하고 대중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데이터 관리 체계와 보안 위험, 윤리 기준의 방어벽을 촘촘히 짜고 있는 반면, 홍콩은 기술이 불러올 사회적 결과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입 의장은 “법률, 데이터 보안, 사회적 위험 등을 연결하는 일관된 정책 틀이 없다면 지금의 개별 사업들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묶이지 못하고 단절된 프로젝트로 끝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결론적으로 홍콩은 한정된 자원과 부족한 인재 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구조라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실리주의 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홍콩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넘어서거나 이웃한 선전의 첨단 제조 능력을 능가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으며, 애당초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기고문의 핵심 요지다.

홍콩의 진정한 독점적 우위는 국제적인 연결성, 선진화된 법률 체계, 개방된 금융 시장, 그리고 우수한 대학들의 연구 역량에 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완전한 인공지능 생태계를 독자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빠르게 진화하는 중국 본토의 인공지능 환경에 발맞추면서 본토와 세계 시장을 안전하게 이어주는 ‘지능적인 중개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홍콩 테크 정책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