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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산업정책이 바꾼 인텔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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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산업정책이 바꾼 인텔 재건

정부 지분·상무부 밀착관리·첨단 패키징 압박…미국 반도체 부활 시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7월 23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AI 경쟁 승리’ 정상회의에서 AI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손짓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7월 23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AI 경쟁 승리’ 정상회의에서 AI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손짓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백악관이 인텔 재건을 민간 기업 회복을 넘어 국가 산업정책의 핵심 과제로 끌고 가고 있다.

보조금과 지분 투자에 그치지 않고 고객사 확보, 생산기술 점검, 첨단 패키징 투자 방향까지 챙기며 미국 반도체 제조 부활의 시험대로 삼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 회복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애플, 엔비디아, 스페이스X 등 잠재 고객과 협력사를 설득해왔다고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애플과 인텔의 협력은 단순한 기업 간 계약을 넘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정책과 맞물려 진행됐다며 WSJ는 이같이 전했다.

그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세 협상과 보조금 전환, 상무부의 밀착 관리를 통해 인텔을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의 중심 기업으로 다시 세우려 했다는 과정이다.

인텔은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3월 취임한 뒤 비용 절감과 제품군 재정비, 파운드리 고객 확보를 추진해왔다.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중앙처리장치(CPU) 수요를 키운 점도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WSJ는 인텔 회복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적·전략적 후원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 보조금 넘어 지분으로 들어간 정부


트럼프 행정부의 인텔 지원은 전통적인 보조금 정책과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90억달러(약 13조5000억원) 규모의 연방 보조금을 인텔 지분 10%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텔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는 최근 미국 산업정책에서 보기 드문 국가자본주의 사례로 거론된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분을 보유한 뒤 전략 방향에 영향력을 미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인텔이 뒤처졌다며 재건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후 인텔은 미국 반도체 제조 부활이라는 정책 목표와 직접 연결됐다.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을 확보한 배경에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가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에 집중된 현실을 안보 리스크로 보고 있다. 인텔은 미국 안에서 첨단 제조 기반을 다시 키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형 후보로 부상했다.

◇ 상무부가 챙기는 인텔 경영 현안


미 상무부의 관여도 이례적이다.

WSJ에 따르면 탄 CEO는 한 달에 한 번가량 워싱턴DC를 찾아 상무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도 정기적으로 통화하며 고객 관계와 사업 상황을 공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 실무를 맡은 빌 프라우엔호퍼도 인텔의 경영 현안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로부터 분기마다 브리핑을 받고, 참모진은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본사에서 인텔 임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무부의 관심은 특히 파운드리와 새 제조기술에 집중돼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 정부는 인텔이 외부 고객용 칩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차세대 공정과 패키징 기술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WSJ에 따르면 정부가 돈을 대는 수준을 넘어 고객 확보와 기술 로드맵, 생산능력 확충까지 정책 목표 안에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 애플 협력은 관세 협상의 부산물


WSJ는 애플과 인텔의 협력도 이같은 산업정책 구도 속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여름 팀 쿡 애플 CEO는 반도체 수입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려는 트럼프 행정부 방침을 돌리기 위해 워싱턴DC를 찾았다. 관세가 현실화하면 아이폰과 맥북 등 애플 주력 제품 가격 부담이 커질 수 있었다.

애플은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약속하며 관세 예외를 얻었다. 이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장관은 쿡 CEO에게 인텔 공장을 활용해 애플 칩 일부를 생산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목은 기존 발표 기사와 구분되는 부분이다. 애플과 인텔의 협력은 단순한 기업 간 공급계약이 아니라 관세 협상, 미국 내 제조 확대 압박, 인텔 재건 전략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이 협상에 정통한 인사에 따르면 애플은 맥 노트북과 아이폰용 칩 일부를 인텔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애플 협력의 실제 규모와 양산 시점, 제품별 적용 범위는 아직 지켜봐야 할 변수다.

◇ 엔비디아·스페이스X도 협력망에 편입


백악관의 지원은 애플에만 머물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인텔에 50억달러(약 7조5000억원)를 투자하고 맞춤형 데이터센터 칩을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 협력을 역사적 파트너십이라고 불렀다.

지난 4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인텔을 테라팹 제조 구상에 참여시키겠다고 밝혔다. 테라팹은 초고성능 칩을 대규모로 설계하고 제조하며 패키징하는 구상이다. 테슬라와 xAI, 스페이스X가 필요로 하는 AI와 로봇, 우주 인프라 수요와 연결된다.

이들의 협력은 인텔 파운드리 신뢰 회복에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는 평가다. 외부 대형 고객이 늘어날수록 인텔은 미국 내 첨단 제조 기반을 다시 세우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후원과 대형 기업의 참여가 곧바로 장기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수율과 납기, 비용 경쟁력, 고객 맞춤형 설계 대응이 실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 파운드리 손실 줄이는 것이 관건


WSJ에 따르면 인텔의 가장 큰 과제는 파운드리 신뢰 회복이다.

인텔은 한때 PC와 초기 인터넷 시대를 이끈 반도체 강자였다. 그러나 모바일과 데이터센터, 스마트폰용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며 TSMC, 엔비디아, AMD 등에 주도권을 내줬다.

현재 인텔은 자체 칩을 설계·판매하는 제품 사업과 외부 고객의 칩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으로 나뉜다. 파운드리는 미국과 아일랜드,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인텔 자체 제품과 외부 고객용 칩을 함께 생산한다.

문제는 외부 고객 신뢰다. 최근 몇 년 동안 고객사들은 인텔 파운드리가 사용 가능한 웨이퍼를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왔다. 인텔 파운드리는 최근 4개 회계연도 기준 104억달러(약 15조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탄 CEO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경쟁사 출신 인재를 영입하며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기술 전문성이 높은 나가 찬드라세카란에게 더 큰 역할을 맡긴 것도 고객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 첨단 패키징에 집중되는 승부


미국 정부와 인텔이 가장 현실적인 경쟁 카드로 보는 분야는 첨단 패키징이다.

첨단 패키징은 여러 개의 작은 칩렛을 결합해 하나의 고성능 반도체처럼 작동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AI 반도체와 고성능 컴퓨팅에서는 미세공정뿐 아니라 패키징 역량이 성능과 공급능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이 뉴멕시코 공장의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을 확대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인텔과 정부는 이 분야가 세계 최대 첨단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와 경쟁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라고 보고 있다.

진스너 CFO는 지난 1월 실적 발표에서 파운드리 사업이 가까운 시일 안에 첨단 패키징에서 수십억달러 규모 매출을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탄 CEO도 조직 개편을 병행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중앙엔지니어링그룹을 신설하고 케이던스 출신의 실리콘 엔지니어 스리니바산 아이옌가르를 영입했다. 맞춤형 칩 설계 역량을 한 조직으로 모아 고객 요청에 더 빠르게 대응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 AI CPU 수요가 회복세 뒷받침


AI 붐은 인텔에 예상 밖의 우군이 됐다.

AI 투자가 그래픽처리장치 중심에서 데이터센터 전체 인프라 확충으로 넓어지면서 CPU 수요도 커지고 있다. 인텔의 전통적 강점인 서버용 CPU가 다시 부각되는 배경이다.

인텔은 지난 4월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22% 늘어난 51억달러(약 7조7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다만 같은 분기 회사 전체로는 37억달러(약 5조6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구글 클라우드는 4월 대기업 AI 도구 운용에 필요한 에이전트형 워크로드를 위해 인텔 제온 CPU를 대량 주문한다고 발표했다. 구글 클라우드는 탄 CEO 취임 이후 인텔이 고객 요구와 맞춤화 요청에 대응하는 방식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텔 회복세에 긍정적 요인이다. 동시에 AI 수요 확대가 일회성 반등에 그치지 않으려면 생산 안정성과 제품 경쟁력, 파운드리 고객 확보가 함께 이어져야 한다.

◇ 국가대표 기업 전략의 명암


인텔을 재건하는 일은 이제 한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아니라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상무부가 경영 현안을 챙기며 대형 기술기업과의 협력까지 유도하는 산업정책 실험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 미국은 인텔을 통해 첨단 반도체 제조의 국내 기반을 되살리고 공급망 주도권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조지타운대 안보·신흥기술센터의 제이컵 펠드고이스 선임연구원은 “기술 측면에서 인텔이 신뢰와 자신감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새 고객 약속과 제조 공정이 나올 때마다 신호가 개선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정부가 특정 기업을 국가대표로 밀어주는 방식에는 부담도 따른다. 케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은 “정부의 총애는 기업이 잘나갈 때만 작동한다며 상황이 악화되면 정치권은 짧은 시간표로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