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직 다이가 성능 가른다… HBM, '메모리 부품'에서 '고객 맞춤 반도체 솔루션'으로 진화
이미지 확대보기브로드컴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각) 오픈AI와 공동 개발한 첫 추론용 칩 '할라피뇨'를 공개했다. 인공지능 칩 수주잔고는 730억 달러(약 110조 원)에 이른다. 각 기업의 자체 칩이 저마다 다른 사양을 요구하면서 규격화된 고대역폭메모리로는 대응이 어려워졌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지난 1월 23일 보고서에서 고대역폭메모리 6세대 확장 제품(HBM4E)부터 고객 맞춤형 설계가 주류가 된다고 이미 분석했다.
승부처는 로직 다이…성능이 메모리 셀에서 넘어왔다
경쟁의 초점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최하단 로직 칩(베이스 다이)이다. 지금까지 D램 공정으로 찍던 이 칩을 HBM4부터 파운드리 공정으로 옮기면서 고객사가 원하는 컨트롤러와 전력관리, 오류정정 회로를 직접 새겨 넣을 수 있게 됐다. 이제 고대역폭메모리의 성능은 메모리 셀이 아니라 로직 칩에서 결정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이 갈린다. 삼성전자는 자체 4나노미터 파운드리로 로직 칩을 만들어 설계 통합 속도를 높이는 대신 수율 안정화와 고객 인증이 과제다. SK하이닉스는 로직 칩을 대만 TSMC에 위탁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메인 서버용은 12나노미터, 엔비디아·구글 등 프리미엄용은 3나노미터 적용을 검토하는 이원화 전략이다. 한마디로 삼성전자는 통합 설계로 '최적화'를, SK하이닉스는 검증된 수율로 '안정성과 고객 록인'을 판다.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지난 4월 15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HBM4가 1볼트 미만 저전압에서 핀당 11기가비트, 고전압에서 최대 13기가비트를 구현했다고 전했다. 국제 표준(6.4기가비트)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샘플 경쟁도 불붙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29일 업계 최초로 12단 HBM4E 샘플을 출하했다. 스택당 3.6테라바이트 대역폭에 48기가바이트 용량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 6월 18일 당초 하반기 예정이던 12단 HBM4E 샘플 공급을 앞당겨 3주 만에 추격했다. 맞춤형 제품은 샘플을 먼저 넘길수록 고객사 검증을 빨리 끝내 양산 수주에서 유리하다. HBM4E는 내년 출시될 엔비디아 루빈 울트라의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3사 과점 심화…HBM은 SK하이닉스 58% 독주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은 하반기 6세대 제품 양산을 앞두고 재편 조짐이 관측된다. SK하이닉스가 58%로 독주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각각 21%로 추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성능을 앞세워 엔비디아 차세대 플랫폼 공급사 지위 확보에 나섰고, 하반기 점유율 반등을 노린다.
관건은 수율이다. 고대역폭메모리는 단 한 개의 불량 칩이 전체 패키지를 폐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12단 이상 적층에서 양산 장벽이 급격히 높아진다.
캐파 전쟁의 본질은 웨이퍼가 아니라 패키징
차세대 메모리 공급 부족의 핵심은 웨이퍼 생산량이 아니라 실리콘관통전극(TSV)과 첨단 패키징 병목이다. 산티아고앤컴퍼니는 지난 6월 7일 리포트에서 첨단 패키징 라인 증설에 최소 18개월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절반 이상 선점한 TSMC의 첨단 패키징(CoWoS) 병목까지 맞물려 메모리에서 패키징,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가 제약을 받는다. TSMC는 커스텀 HBM4E 로직 칩에 3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해 전력 효율을 두 배 이상 높이겠다고 밝혔다. 커스텀 경쟁이 파운드리 동맹으로 확산되는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4월 올해 D램 수급 격차 전망을 3.3%에서 4.9%로 올리며 15년 만의 최악 부족으로 진단했다. 이 불균형은 2028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로이터에 2026년 고대역폭메모리 물량 완판을 밝혔고,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은 SK하이닉스에 증설 자금을 대는 투자를 제안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일 미국 나스닥에 입성해 외국 기업 사상 최대인 265억 달러(약 40조 원)를 조달했다. 이 자금은 용인 클러스터와 청주 패키징 공장, 극자외선(EUV) 장비에 투입된다.
수익성 구조적 개선…HBM이 시스템 원가의 중심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한 개당 고대역폭메모리 탑재량이 8단에서 12단, 16단으로 늘고 첨단 패키징과 결합하면서 시스템 원가에서 메모리 비중이 커졌다. 부품에 머물던 메모리가 핵심 비용 항목으로 올라선 것이다.
가트너는 전 세계 고대역폭메모리 매출이 2025년 310억 달러(약 46조 원)에서 2027년 690억 달러(약 104조 원)로 연평균 49.5%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1분기 매출 52조5763억 원, 영업이익 37조6103억 원, 영업이익률 72%로 분기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엔비디아(65%)를 넘어선 수치다.
주가, 3단 방정식으로 움직인다
증권가는 고대역폭메모리 기업 주가를 단기 증설 속도, 중기 고객 다변화, 장기 기술 우위라는 3단 방정식으로 본다. 단기 노이즈는 크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23일 엔비디아 루빈 감산설과 자사 HBM4 증설 속도 조절 보도가 겹치며 하루 만에 12.5% 급락했다. 그러나 중장기 상승 논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IBK투자증권은 지난 2일 급락 이후에도 목표주가로 현재 주가를 크게 웃도는 400만 원을 제시했다.
향후 판도는 삼성전자가 4분기 HBM4 양산에 성공해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하는지에 달렸다. 진입하면 SK하이닉스 점유율은 50~60%대로 조정되며 기업가치 재평가가 불가피하다. 지연되면 SK하이닉스 프리미엄이 확대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메모리는 표준이 아니라 고객별 사양으로 정의된다. 커스텀 고대역폭메모리 생산 능력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다음 공급 주도권을 가른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