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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웨이저자(魏哲家) TSMC "모리스창 공식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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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웨이저자(魏哲家) TSMC "모리스창 공식 후계자"

웨이저자 TSMC CEO/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웨이저자 TSMC CEO/사진=로이터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는 웨이저자(魏哲家)가 이끌고 있다. 창업자로 불리는 모리스 창이 직접 선택한 후계자이다. 웨이저자는 1953년 대만에서 태어났다. 모리스창이 중국 대륙 본토 출신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웨이저자는 대만 국립교통대학에서 전자공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공학도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반도체 소자 물리학 분야의 전문성을 완성했다. 웨이저자의 강점은 현장 중심의 경력을 통해 다져진 실무 능력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입사한 TI는 당시 반도체 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렸다.웨이저자는 이곳에서 그는 티타늄 합금 저항 관련 연구를 수행하며 1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다. 기초 공정 기술을 완벽히 체득한 이 시기는 그가 훗날 공정 미세화를 지휘하는 기반이 되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및 차터드 세미컨덕터: 유럽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서 로직 및 SRAM 기술 개발 수석 매니저를 역임하며 글로벌 표준을 익혔다.

이어 싱가포르 차터드 세미컨덕터에서 기술 담당 수석 부사장(SVP)으로 근무하며 파운드리 비즈니스의 운영 구조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 유럽, 아시아를 아우르는 이러한 다국적 경력은 그를 단순한 연구원을 넘어 글로벌 기업 경영자로 성장시켰다. 998년, 웨이저자는 TSMC에 합류하였다. 당시 TSMC는 단순한 웨이퍼 제조를 넘어 고객사의 설계 요구를 생산에 최적화하는 기술 서비스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전략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TSMC의 경영진은 파운드리 비즈니스의 생리를 잘 이해하면서도, 공정 미세화와 수율 개선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할 수 있는 실무형 기술 경영자를 원했다. 웨이저자가 보유한 글로벌 현장 경험과 운영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TSMC의 성장 전략과 일치했다.

웨이저자는 TSMC 합류 후 8인치 팹 운영을 총괄하며 낡은 설비를 효율적으로 재조정하고 수율을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엔지니어 출신임에도 영업 및 마케팅 부문을 두루 거치며 고객 맞춤형 기술 지원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특히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애플의 아이폰 칩 물량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영업 전략을 주도한 것은 TSMC가 업계 1위로 독주하는 기틀이 되었다.

모리스 창 창업자는 TSMC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치밀한 승계 로드맵을 설계했다. 전략 기획의 마크 리우(Mark Liu) 회장과 실무 운영의 웨이저자 CEO를 공동 지명하여 리더십의 균형을 맞췄다. 마크 리우는 회장으로서 전략 기획과 거버넌스를 맡았고, 웨이저자는 CEO로서 생산 운영과 영업이라는 실무의 핵심을 담당했다. 이 둘은 2018년 모리스 창 은퇴 이후에도 공동 경영을 이어오다, 2024년 6월 마크 리우가 회장직에서 은퇴하며 웨이저자가 회장 겸 CEO를 겸임하게 되었다.
모리스 창이 그를 "연구개발, 운영, 사업 개발이라는 3대 핵심 분야를 모두 섭렵한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경영자"라고 평가한 이유는 AI 시대의 급박한 의사결정 속도와 생산 현장의 효율성을 결합할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웨이저자의 경영 스타일은 데이터와 수율에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에 기반한다. 퇴근 후에도 반도체 기술 서적을 탐독하고 최신 공정 데이터를 검토하는 등 지독한 성실함을 보여준다."고객이 성공해야 TSMC도 성공한다"는 모리스 창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실현하며 글로벌 설계 업체(Fabless)들과 기술적 동맹을 맺고 있다.

웨이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깊이 있는 학구열'이다. 그는 대만 교통대학(National Chiao Tung University)에서 전기공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으며 일찌감치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공학적 문제 해결 능력을 체계화한 이 시기는 그가 훗날 수만 명의 엔지니어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고, 기술이 어떻게 현실의 생산성으로 전환되는지를 연구하며 자신의 공학적 직관을 연마했다.

1998년 TSMC에 합류했을 때, 그는 이미 성숙한 기술 전문가였다. 그가 전설적인 경영자 모리스 창의 눈에 든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었다. 6인치, 8인치 팹(Fab)을 관리하며 보여준 '현장 장악력' 때문이었다. 그는 수율이 낮아 골머리를 앓던 생산 라인에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그가 보여준 집요함은 TSMC 내부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그는 "엔지니어는 결과로 말한다"는 신조 아래, 복잡한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며 회사의 수익성을 극대화했다.그는 기술을 넘어 비즈니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경영자였다. 엔지니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영업 및 마케팅 부문을 총괄하며, 애플과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TSMC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고객 맞춤형 신뢰 전략을 완성했다. 모리스 창이 그를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CEO"라고 불렀던 이유는 바로 이 '공학적 정밀함'과 '비즈니스의 유연함'이 한 몸에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는 화려한 사교계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의 가족 관계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한마디로 '초격차를 향한 고독한 질주'다. 그는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추격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흔들리기보다는, 오직 기술력이 가진 본질적 가치만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그가 대만의 작은 섬에서 시작해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의 운명을 손에 쥐게 된 비결이다.

웨이저자 회장의 인생은 한 편의 잘 짜인 반도체 회로와도 같다. 기초 학문이라는 기반 위에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축적하고, 비즈니스 리더십이라는 제어 장치를 통해 기술의 흐름을 통제한다. 그가 이끄는 TSMC는 이제 단순한 위탁 생산 기업을 넘어, 전 세계 디지털 경제의 생태계를 규정하는 절대 권력이 되었다.모리스 창이 건네준 바통은 무거웠으나, 웨이저자는 그 무게를 즐기며 자신만의 보폭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오늘도 실험실과 공장을 오가며,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웨이저자,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공학자이자, 실리콘의 제국을 지키는 냉철한 파수꾼이다. 그의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TSMC의 최첨단 칩 속에 촘촘히 새겨지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도 기술적 우위라는 방어력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지로 생산 거점을 확대하는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웨이저자 회장이 이끄는 TSMC는 단순한 생산 기업을 넘어, 전 세계 디지털 경제의 생태계를 규정하는 절대적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모리스 창의 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실용주의적 경영 모델을 정착시킨 웨이저자는, 오늘도 나노 단위의 한계를 돌파하며 인류 기술 문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의 리더십 하에 TSMC의 실리콘 제국은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엔진으로서 흔들림 없는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