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주한 미국 대사로 지명된 미셸 스틸(Michelle Steel, 한국명 박은주) 대사가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스틸 대사는 현장 취재진을 향해 유창하고 정갈한 한국어로 "고향에 돌아와 감회가 깊다"는 소회를 밝혔다. 공항에서 보여준 특유의 친화력과 당당한 태도는 단순한 미국 대사의 arrival을 넘어, 백악관 핵심부와 막힘없이 통하는 '실세 정치인 대사'의 등장을 알리는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한미동맹 역사상 두 번째 한국계이자 최초의 한국계 여성 주한 미국 대사이다.
미셸 스틸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정체성을 형성한 근본적 바탕은 부모 세대의 혹독한 수난사다. 그의 부모는 6·25전쟁 당시 공산 치하의 북한 지역에서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탈출한 실향민이다. 외가 쪽은 북한에서 운영하던 목재소가 공산당에 몰수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피란 이후 서울에 정착한 그의 부모는 외교관 및 국제적 활동을 이어가며 자녀들에게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과 국가관을 심어주었다. 공산주의 폭정을 피해 남하한 부모의 역사적 경험은 훗날 미셸 스틸이 정치인으로서 북한 인권 문제와 보수적 가치를 강하게 옹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미셸 스틸이 유년기와 학창 시절 일부를 일본에서 보낸 것은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의 해외 근무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거주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와 언어를 체득하였다.이러한 유년기 경험 덕분에 그는 한국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까지 3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훗날 동아시아 지형을 폭넓게 이해하고 한·미·일 삼각 협력 제반을 다지는 데 필요한 외교적 자산으로 작동하게 된다.1975년, 19세의 나이였던 미셸 스틸은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더 넓은 세계에서 교육을 받고 기회를 잡으라는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와 제안에 따른 결정이었다.1978년 어머니와 자매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온 가족이 미국에 정착하였다.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단신으로 건너가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이뤄낸 그의 삶은 미국 보수 정가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셸 스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있어 남편 숀 스틸(Shawn Steel)을 빼놓을 수 없다. 인물 및 이력: 숀 스틸은 변호사이자 캘리포니아 공화당 의장(2001~2003년)을 역임한 인물이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 보수 정가의 거물급 인사다.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운동을 주도하여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당선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숀 스틸은 아내 미셸 스틸의 정치 입문 과정부터 연방 의회 진출까지 주도적인 전략가이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강력한 공화당 내 네트워크는 미셸 스틸이 주류 정치권에 조기 연착륙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미셸 스틸 대사는 직업 외교관 출신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강력한 정치적 임명자(Political Appointee)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캘리포니아 공식 방문 당시 영접을 나온 유일한 지역 선출직 공직자가 미셸 스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그를 대통령 직속 아시아·태평양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지속적인 신뢰를 보였다. 조세 감면, 규제 완화, 강경한 대북 및 대중 정책 등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기조와 미셸 스틸의 의정 활동 방향은 대부분 일치한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보여준 당당함대로, 미셸 스틸 대사는 백악관 핵심부와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는 강력한 직통 채널을 쥐고 있다. 한미 간 관세 이슈, 방위비 분담금, 북핵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실세 대사' 미셸 스틸이 이끌어갈 한미관계의 새로운 장에 양국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