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혁신과 기술의 시대
이미지 확대보기2026년 9월 1일 아침,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애플 파크는 또 한번 거대한 변곡점을 맞이한다. 지난 15년 동안 애플을 세계 최고 가치의 상업 제국으로 키워낸 팀 쿡이 마침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르는 새 CEO는 존 터너스(John Ternus)다. 터너스는 재무나 경영학 출신이 아니다. 평생 알루미늄을 깎고 실리콘 칩의 발열을 계산해 온 순수 엔지니어다. 스티브 잡스의 직관과 예술의 시대, 팀 쿡의 공급망과 효율의 시대를 지나 마침내 애플이 '기술과 엔지니어링'의 세 번째 시대로 닻을 올렸다.
존 터너스는 1975년 5월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기계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에 유독 집착했다. 장난감이 생기면 겉모양을 즐기기보다 나사부터 풀었다. 톱니바퀴와 스프링이 맞물려 돌아가는 원리를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던 소년이었다. 그의 성격을 형성한 또 다른 축은 수영이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Penn)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그는 대학 대표 수영 선수로 레인을 갈랐다. 자유형과 개인혼영에서 활약한 그는 수면 아래의 고독과 싸우는 법을 배웠다. 수영은 0.01초의 승부다. 손끝의 각도 하나, 미세한 물의 저항 하나가 승패를 가른다. 터너스는 훗날 "물속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저항을 줄이는 것은 직관이 아니라 정밀한 물리학의 법칙"이라고 회고했다.
기계공학과 졸업 프로젝트 당시, 그는 단순히 학점을 받기 위한 모형 제작에 머물지 않았다. 전신 마비로 손발을 쓰지 못하는 사지마비 환자들을 위해 오직 '머리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식사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돕는 정교한 '기계식 급식 로봇 팔(Mechanical Feeding Arm)'을 설계하고 직접 용접해 완성해 냈다.기술은 화려한 쇼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절박한 결핍을 메우는 도구여야 한다는 철학. 이 젊은 공학도의 가슴속에는 이미 인간 중심의 공학(Engineering for Humanity)이라는 묵직한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1997년 대학을 졸업한 터너스는 곧바로 대기업으로 가지 않았다. 초창기 가상현실(VR) 전문 스타트업인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에 입사했다. 당시의 가상현실 기기는 무겁고 어지러운 원시적 장비였다. 터너스는 그곳에서 하드웨어의 무게 중심을 잡고 광학 렌즈의 왜곡을 줄이는 하드웨어 설계의 기초를 밑바닥부터 체득했다.
스티브 잡스와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Jony Ive)가 이끄는 당시 애플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흡사 전쟁터였다. 아이브가 극도의 미니멀리즘과 얇은 두께를 요구하면, 엔지니어들은 발열과 내구성의 한계에 부딪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터너스는 화를 내거나 디자인팀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CAD 프로그램을 열고, 재료의 합금을 바꾸고, 내부의 나사산 하나까지 재배치하며 타협 없는 '공학적 해답'을 찾아냈다. 그는 조니 아이브의 극단적인 미적 이상주의와 팀 쿡의 빈틈없는 생산성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유일무이한 가교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존 터너스를 오늘날의 자리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국면은 2010년대 후반에 찾아왔다. 당시 애플의 하드웨어는 깊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얇음'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키보드는 툭하면 고장 났고(버터플라이 키보드 참사), 전문가용 맥북 프로는 발열을 감당하지 못해 성능이 저하되었으며, 포트가 전부 사라져 사용자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승진한 터너스는 결단을 내렸다."디자인을 위한 억지 타협을 멈추고, 기계 본연의 강력한 성능과 신뢰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팀을 이끌고 인텔 칩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대담한 프로젝트, 즉 자체 실리콘 칩(M1, M2...)을 탑재한 맥북과 아이패드 리디자인을 진두지휘했다. 두께를 살짝 두껍게 하더라도 풀사이즈 HDMI 포트와 SD카드 슬롯을 되살렸고, 고장 없는 가위식 키보드를 복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문가들은 애플로 돌아왔고, Mac 라인업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터너스의 이 같은 과감함과 침착함은 그의 유별난 취미에서 나온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소문난 포르쉐 레이싱 광이자 오프로드 랠리 애호가다. 주말이면 캘리포니아의 악명 높은 라구나 세카(Laguna Seca) 서킷에서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코너를 파고들며 포르쉐의 한계점을 시험한다. 심지어 동료 임원들을 워싱턴주의 험준한 비포장도로로 데려가 진흙탕 속에서 랠리카를 몰게 하는 거친 모험을 즐기기도 한다.
팀 쿡의 15년은 애플을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안정적인 기업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애플의 혁신은 끝났다", "더 이상 심장을 뛰게 하는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을 달고 살았다. 팀 쿡 체제가 '효율적인 공급망 관리와 금융 공학'의 승리였다면, 터너스의 취임은 본질적으로 '제품 우선주의(Product-First)'의 부활을 의미한다.터너스가 이끄는 새로운 애플의 도전 과제는 명확하다. 온디바이스 AI(인공지능)의 재정의: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사용자의 손안에서 가장 안전하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는 하드웨어-AI 결합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차세대 폼팩터의 완성: 비전 프로(Vision Pro)와 같은 공간 컴퓨팅 디바이스를 무겁고 비싼 실험작에서 일상의 필수품으로 다듬어내는 것. 카리스마가 아닌 '조용한 공학적 카리스마'의 리더십: 독선적인 카리스마나 건조한 경영 논리가 아닌, 팀을 격려하고 복잡한 기술적 딜레마를 돌파하는 엔지니어링 리더십을 뿌리내리는 것. 쿠퍼티노의 무대 위에서 터너스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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