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케빈워시가 잭슨홀에서 금리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한 이후 침체에 빠져있던 뉴욕증시가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월러 효과이다. 크리스토퍼 윌러(Christopher J. Waller) 연준 이사가 비둘기파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뉴욕증시에 랠리를 몰고왔다.
크리스토퍼 윌러는 동부 아이비리그나 월가 투자은행 출신들이 지배하는 연준 이사회 내부에서 지극히 이례적인 아웃사이더다. 1958년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난 그는 금융 귀족 가문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미 중서부 대평원의 거친 환경은 그에게 정치적 수사나 허세를 배격하고, 현실의 냉혹한 사실(Facts)과 숫자만을 직시하는 투박한 실용주의를 심어주었다.
그의 학문적 배경 또한 철저한 비주류의 돌파 과정이었다. 1981년 미네소타 북부의 작은 공립대학인 베미지 주립대학교(Bemidji State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화려한 인맥 대신 통계 데이터의 인과관계를 파고들던 그는 펜실베이니아의 프랭클린 앤 마셜 칼리지에서 석사를 거쳐, 1987년 워싱턴 주립대학교(Washington State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인디애나 대학교와 켄터키 대학교에서 거시경제학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며 정통 화폐이론(Monetary Theory)과 노동시장 매칭 이론의 권위자로 이름을 날렸다. 시장의 감정이나 정치권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수리적 모델로 경제의 균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그의 ‘차가운 피’는 바로 이 20여 년간의 학문적 수련에서 완성되었다.
윌러가 매파로 보이게된 결정적 국면은 2022년과 2023년의 긴축 레이스였다. 그는 단순히 금리 인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아니라, 연준의 금리 인상 폭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설계자’였다. 첫째, 그는 ‘75bp(0.75%p) 자이언트 스텝’의 방아쇠를 당긴 행동대장이었다. 2022년 6월, 통상적인 25bp나 50bp 인상에 머뭇거리던 파월 의장과 온건파들을 향해 윌러는 75bp 인상의 이론적 정당성을 들이밀며 판을 뒤집었다. 심지어 그는 2022년 여름, 물가지표가 튀어 오르자 “필요하다면 한 번에 100bp(1.0%p)를 올리는 ‘울트라 스텝’도 주저 없이 단행해야 한다”고 시장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시장을 공포에 떨게 만든 전례 없는 초강경 긴축의 실질적 지휘관이었던 셈이다.
둘째, 월가의 섣부른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가차 없이 처단해 온 ‘월가의 저승사자’였다. 2024년 초, 뉴욕증시가 “연준이 올해 6~7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내릴 것”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릴 때, 윌러는 브루킹스 연구소 연단에 서서 차가운 냉수를 끼얹었다.“과거처럼 서둘러 금리를 내릴 이유가 전혀 없다. 금리 인하는 질서정연하고 매우 신중하게(carefully and methodically) 진행되어야 한다.”이 단 한마디로 월가의 과열된 랠리는 즉각 박살 났고, 조기 인하 베팅은 순식간에 소멸했다.
셋째, 고통 없는 물가 안정을 주장했던 2022년의 ‘베버리지 곡선(Beveridge Curve)’ 논문 역시 실상은 완화가 아니라 ‘공격적 긴축을 지속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이 "실업률이 치솟으니 금리 인상을 조절해야 한다"고 압박할 때, 윌러는 "빈 일자리 공고부터 줄어들 것이므로 금리를 더 가혹하게 올려도 대량 실업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방패막이를 제공함으로써 연준이 5%대 중반까지 기준금리를 밀어 올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그는 긴축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위해 이론을 동원했던 철저한 매파였다.
윌러의 정치적 성향은 공화당의 정통 시장경제 철학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에 의해 발탁되었으나 맹목적 충성파가 아닌, 철저히 ‘작은 정부와 시장의 자율성’을 신봉하는 자유주의 보수파다.이 점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진보 진영과의 정면충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당과 진보 성향 관료들이 은행 건전성 평가에 기후변화 리스크를 의무적으로 반영하라고 압박했을 때, 윌러는 연준 내에서 가장 거세게 반발했다.
월가와 언론은 중앙은행가를 평가할 때 언제나 손쉬운 이분법의 함정에 빠진다. 금리를 올리면 ‘매’, 내리면 ‘비둘기’라는 도식이다. 그러나 이 낡은 잣대로 크리스토퍼 윌러를 재단하려 들면 반드시 해석의 파산에 직면하게 된다.그는 2021년과 2022년,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75bp 자이언트 스텝을 요구하고 심지어 100bp 인상 가능성까지 입에 올리며 시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이 시기의 단면만 보면 그는 영락없는 ‘슈퍼 매파’다.그러나 2023년 말, 연준 내 정통 비둘기파들조차 인플레이션 재발을 두려워해 입을 닫고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며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역사적인 피벗(통화정책 전환)의 멍석을 깔아준 장본인 역시 윌러였다. 만약 그가 신념형 매파였다면 결코 던질 수 없는 승부수였다.
그렇다고 그를 경기 부양을 최우선으로 치는 비둘기파로 볼 수 있는가. 그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시장이 조금이라도 통화 완화의 단맛에 취해 조기 인하 폭주를 시작하면, 브루킹스 연구소 등 공개 석상에 나타나 "서둘러 내릴 이유가 전혀 없다"며 가차 없이 시장의 뺨을 후려쳤다.결국 그는 ‘매의 발톱’도, ‘비둘기의 날개’도 자신의 본체가 아닌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인물이다.
그가 2022년에 금리를 무자비하게 올리자고 외친 이유는 ‘경제를 때려잡는 매파적 본능’ 때문이 아니었다. 노동시장의 ‘베버리지 곡선’ 데이터를 돌려본 결과, 빈 일자리(구인율)가 기형적으로 치솟아 있어 금리를 극단적으로 올려도 대량 실업이 나지 않는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올리자고 한 것이다.
반대로 2023년 말과 최근에 이르러 “더 이상의 인상은 필요 없다”며 동결과 인하의 논리를 편 것 역시 자비로운 비둘기파로 전향해서가 아니다. 물가 상승률의 둔화 속도와 실질 기준금리(명목금리 - 인플레이션율)의 상승 데이터를 확인한 뒤, “이대로 두면 실질금리가 경제를 불필요하게 옥죈다”는 객관적 결론이 도출되었기 때문에 방향을 튼 것이다. 그에게 통화정책은 도덕이나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숫자를 집어넣으면 결과가 도출되는 정밀한 기계적 공정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윌러는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과도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파월은 본질적으로 ‘합의를 조율하는 정치 관료형 의장’이다. 12개 연은 총재와 이사들의 상반된 의견을 조율하고, 백악관과 의회의 눈치를 살피며, 경제 데이터가 완전히 굳어질 때까지 확인한 뒤에야 가장 뒤늦게 움직이는 후행적 행보를 보인다. 그래서 파월의 발언은 늘 조건절로 가득 차 있고 모호하다.반면 윌러는 ‘선제적 선도자(First Mover)’다. 그는 합의를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이 구축한 데이터 모델에서 임계점이 포착되면, 위원회 내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장을 향해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직격탄을 쏜다.
2021년 파월이 망설일 때 ‘인플레이션 일시적론’을 가장 먼저 폐기 처분하라고 윽박지른 것도 윌러였다.2022년 파월이 50bp 인상을 머뭇거릴 때 75bp 자이언트 스텝의 이론적 길을 터준 것도 윌러였다.2023년 말 파월이 긴축 종료를 공식화하기 직전, 시장에 피벗의 물꼬를 터준 것 역시 윌러였다.시장이 파월의 모호한 기자회견보다 윌러의 명쾌한 논문과 연설에 더 열광하고 거액의 자금을 베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윌러는 파월의 뒤를 따르는 참모가 아니라, 파월이 몇 달 뒤에 걸어가야 할 길을 데이터로 먼저 닦아놓는 ‘연준의 실질적 설계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윌러를 ‘매파’라고 부르는 것도 반쪽짜리 오독이며, ‘비둘기파’나 ‘중립파’라고 칭하는 것 또한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게으른 규정이다.그는 날씨에 따라 외투를 갈아입듯, 데이터에 따라 매의 발톱과 비둘기의 날개를 갈아 끼우는 냉혹한 현실주의자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해가 뜨면 우산을 접는 행위를 두고 “왜 어제는 우산을 썼으면서 오늘은 우산을 쓰지 않느냐”고 따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렇기에 이번 뉴욕증시를 뒤흔든 “추가 금리 인상은 필요 없다”는 그의 선언은, 매파의 변절도 비둘기파의 승리도 아니다. 오직 데이터가 가리키는 균형점을 포착한 승부사가 시장을 향해 던진 가장 냉철한 ‘현상 보고서’일 뿐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