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금값, 고금리 공식 깨졌다…UBS “강세장 아직 안 끝나”

글로벌이코노믹

금값, 고금리 공식 깨졌다…UBS “강세장 아직 안 끝나”

러시아 외환보유액 동결 뒤 중앙은행 금 비중 확대
美 재정 불신·주식채권 동조화도 금 수요 구조적으로 지지
지난 2018년 10월 4일(현지시각) 우간다 엔테베의 아프리칸골드리파이너리(AGR)에서 1kg짜리 골드바로 주조되기 전 금 알갱이가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8년 10월 4일(현지시각) 우간다 엔테베의 아프리칸골드리파이너리(AGR)에서 1kg짜리 골드바로 주조되기 전 금 알갱이가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

금리가 오르면 금값이 떨어진다는 시장의 공식이 지난 2022년 이후 사실상 무너졌으며 현재의 금 강세장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서방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한 뒤 각국 중앙은행이 국채와 통화 대신 금을 보다 안전한 준비자산으로 보기 시작했고, 미국 재정에 대한 신뢰 약화와 주식·채권의 동반 움직임도 금의 투자 매력을 구조적으로 높였다는 것이다.

바누 바웨자 UBS 인베스트먼트뱅크 수석전략가는 3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2018년 시작된 현재의 금 강세장이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바웨자 전략가는 현재 강세장이 지금까지 연환산 약 1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며 과거 금 강세장과 비교해도 상당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이 자유롭게 거래되기 시작한 1971년 이후 지금까지 주요 강세장은 세 차례 있었다.

1971~1980년 첫 강세장에서는 약 8년6개월 동안 연환산 4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후 국제통화질서 붕괴와 큰 폭의 마이너스 실질금리, 지정학적 불확실성, 재정적자 확대가 금값을 밀어 올렸다.

1999~2011년 두 번째 강세장에서는 중국의 원자재 수요 증가와 미국의 느슨한 통화정책 등에 힘입어 연환산 약 18% 올랐다.

현재 세 번째 강세장은 2018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실질금리 하락과 코로나19 당시 양적완화 등 과거와 비슷한 요인이 작용했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금 시장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 바웨자 전략가의 판단이다.

◇2022년 러시아 자산 동결 뒤 ‘금리 공식’ 붕괴

전환점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을 동결한 사건이었다.

당시 러시아가 미국 국채와 독일 국채, 영국 국채 등으로 보유하던 약 6300억달러(약 856조2000억원)의 자산에 사실상 접근할 수 없게 됐다.

바웨자 전략가는 이 조치가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 운용 담당자들에게 ‘어떤 자산이 진정한 돈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다른 국가가 발행한 국채와 통화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동결될 수 있지만 실물 금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롭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흥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가 준비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늘렸다.

이들의 금 비중은 2022년 5~7% 수준에서 현재 약 11%로 높아졌다. 선진국의 약 26%와 비교하면 여전히 추가 확대 여지가 있다는 것이 바웨자 전략가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금과 미국 실질금리의 전통적인 관계도 무너졌다.

2000년대 초부터 약 20년 동안 미국 실질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금값은 반대 방향으로 약 14% 움직이는 관계가 나타났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금리가 오르면 국채 등 이자 수익을 제공하는 자산과 비교해 매력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22년 이후에는 이러한 공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실질금리 4%P 올랐는데 금값은 오히려 7% 상승

2022년 3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미국 5년물 실질금리는 4%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과거의 상관관계가 유지됐다면 이 기간 금값은 약 55% 하락했어야 한다.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금값은 약 7% 상승했다.

이후 약 2년 동안 미국 실질금리는 1%포인트도 채 떨어지지 않았지만 금값은 110% 급등했다.

바웨자 전략가는 금이 이제 실질금리 하락에는 과거보다 강하게 반응하면서 실질금리 상승에는 훨씬 둔감해지는 비대칭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금 적정가치 평가모델 상당수가 사실상 쓸모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기존 모델 가운데 상당수는 금값이 온스당 2500달러를 넘어선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심각한 고평가 상태라는 신호를 내놓았지만 실제 가격 움직임을 설명하지 못했다.

바웨자 전략가는 “이들 모델은 중앙은행의 자산 다변화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의 관계 변화, 미국 재정에 대한 신뢰 약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변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식 떨어질 때 채권도 하락…금의 분산 효과 부각

첫 번째 변수는 주식과 채권의 상관관계 변화다.

전통적인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는 주가가 떨어질 때 채권 가격이 오르면서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주식과 채권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잦아졌다.

주식시장이 흔들릴 때 채권이 충분한 방어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금이 주식 중심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분산하는 자산으로 더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전체 금융자산에서 금에 투자한 비중은 아직 약 3%에 불과하다.

바웨자 전략가는 이에 따라 민간 투자자의 금 비중이 추가로 높아질 여지도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물가상승률과 물가 변동성이 장기적으로 다시 낮아져 주식과 채권의 상관관계가 음(-)으로 돌아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보다 채권을 포트폴리오 분산 수단으로 다시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바웨자 전략가는 아직 그러한 단계에는 도달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美 32조달러 부채…재정 신뢰 약화도 금 지지

더 구조적인 변수는 미국 재정에 대한 신뢰 약화다.

바웨자 전략가는 이를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투자자가 단기채보다 추가로 요구하는 수익률인 ‘기간 프리미엄’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투자자는 장기간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많은 수익률을 요구한다.

현재 약 32조달러(약 4경3488조원)인 미국 정부 부채는 향후 10년 동안 이와 비슷한 규모가 추가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바웨자 전략가의 전망이다.

미국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의 약 6%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부채가 늘어나면 장기 국채금리가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미국 정부는 장기 차입비용 상승을 억제하려는 강한 유인을 갖게 된다.

바웨자 전략가는 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연방준비제도가 장기적으로 정책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추도록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시장이 우선 두 차례 정도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실질금리가 낮아지고 국채 기간 프리미엄이 높아진다면 두 요인 모두 금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정이 통화정책 좌우하는 조짐”

바웨자 전략가는 미국에서 ‘재정 지배’의 초기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정 지배는 높은 정부 부채와 이자부담 때문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물가안정보다 정부의 재정 부담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상황을 뜻한다.

이 현상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나타났으며 그 대가를 엔화 가치 하락이 치렀다고 그는 지적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중국 역시 불안한 재정 전망을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재정 위험을 반영해 상대적으로 국가 신용도가 높은 스위스와 호주, 캐나다 등의 통화에도 점차 프리미엄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웨자 전략가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뚜렷하게 반영하면서 실제 투자하기도 쉬운 자산은 결국 금이라고 평가했다.

금값은 단기적으로 금리와 달러,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큰 폭으로 등락할 수 있다. 실제 최근에는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조정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웨자 전략가는 2022년 이후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운용 방식과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과거와 달라졌다며 2018년 시작된 금 강세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