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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아르헨 밀레이...전기톱 대통령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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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아르헨 밀레이...전기톱 대통령의 몰락?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사진=아르헨 대통령궁이미지 확대보기
밀레이 아르헨 대통령/사진=아르헨 대통령궁
무너진 경제를 살리겠다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일레이 아르헨 대통령, 집권 3년이 경과하고 있는 지금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2023년 말, 헝클어진 머리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시동 걸린 전기톱을 허공에 휘두르며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Casa Rosada)에 입성한 하비에르 밀레이. 그는 국가 부도와 살인적 초인플레이션에 신음하던 아르헨티나의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전 세계는 ‘무정부 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를 자처하는 이 괴짜 경제학자의 파격적인 등장에 경악과 호기심을 동시에 보냈다.

취임 초기, 그는 맹렬한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18개에 달하던 중앙정부 부처를 단숨에 9개로 반토막 냈고, 수십 년간 국가 재정을 갉아먹던 방만한 공공 인프라 사업과 보조금을 단호히 폐지했다. 통화 남발을 멈추자 월간 25%를 넘나들던 물가상승률은 2%대로 주저앉았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나라는 14년 만에 연간 재정 흑자라는 기적 같은 수치를 찍어냈다. 뉴욕증시 투자자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박수를 보냈으며,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이를 두고 '밀레이의 기적'이라 칭송했다.

밀레이 돌풍은 오래 가지못햇다. 지금 밀레이가 마주한 현실은 싸늘하다 못해 참혹하다. 집권 초기 50~60%대를 호가하던 국정 지지율은 최근 30%대 중반까지 곤두박질쳤다. 의회에서의 고립은 깊어졌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광장은 연일 성난 군중의 최루탄 연기로 뒤덮이고 있다. 아르헨 거시경제의 숫자는 분명 '완치'를 향해 가고 있는데, 정작 그 치료를 받는 환자인 아르헨티나 국민은 왜 집도의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가. 전기톱 대통령 밀레이은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굶어 죽이고 잇다는 말을 듣고 있다.
밀레이 경제학(Mileinomics)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거시지표의 개선'이 '국민의 밥그릇'으로 치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밀레이는 페소화 방어를 멈추고 환율을 급격히 현실화했으며, 전기·수도·가스·대중교통에 투입되던 정부 보조금을 단칼에 끊어냈다. 이로 인해 국가 재정수지는 극적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는 고스란히 서민과 중산층의 가계부로 전가되었다. 하루아침에 전기세와 버스 요금이 몇 배씩 치솟았다. 물가상승률의 ‘속도(상승률)’는 둔화되었을지언정, 이미 천정부지로 솟구친 절대적 물가 수준은 내려오지 않았다.

긴축의 충격 속에 실질임금은 곤두박질쳤고, 빈곤율은 50%대를 훌쩍 넘어섰다. 공공 건설과 인프라 지출이 80% 이상 전면 중단되자 내수 경제는 얼어붙었다. 공장가동률은 5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으며 일자리는 증발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채권 수익률 표는 푸른빛(안정)으로 물들었지만, 식료품점 앞의 서민들은 빵 한 덩이를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수술은 대성공이었으나, 환자는 영양실조로 위독하다"는 비정한 통보였다.

아르헨티나 역사를 지탱해 온 자부심 중 하나는 라틴아메리카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두터운 지식인층과 중산층이었다. 밀레이의 전기톱은 이 사회적 완충지대를 무자비하게 잘라냈다.가장 결정타는 공립대학 예산 삭감과 연금 축소였다. 아르헨티나의 상징이자 중산층 사다리의 핵심인 부에노스아이레스대(UBA)를 비롯한 국립대학들의 운영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 교수와 학생은 물론 자녀를 대학에 보낸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책을 치켜들고 거리로 나선 '대학 수호 행진'은 밀레이 정권의 도덕성에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혔다.

평생 성실히 일하고 은퇴한 노인들의 연금 가치는 긴축의 칼날 앞에 휴지조각 신세가 되었다. 페론주의의 포퓰리즘에 넌더리를 내며 "이번엔 바꿔보자"고 밀레이를 찍었던 온건 보수층과 중산층이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약탈"이라며 등을 돌린 순간, 정권의 지지기반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밀레이의 인기 비결은 기성 정치 엘리트를 '부패한 도둑 카스트(Casta)'로 규정하고 거침없이 조롱하는 파괴적 화법이었다. 야당 시절이나 선거 운동 기간에는 이러한 거친 언행이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기성 체제를 깨부수는 아웃사이더 투사의 면모였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파괴가 아닌 통합과 조율의 자리다. 집권 이후에도 밀레이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국회의원을 향해 "쥐새끼"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학생과 지식인들을 "좌파 기생충"으로 매도했다. 비판적인 언론사의 취재를 원천 봉쇄하거나 대통령궁 출입을 금지하는 식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대중에게 극심한 정치적 피로감을 안겼다. 더욱이 '깨끗한 도덕성'을 무기로 삼던 밀레이 내각 주변에서 터져 나온 측근들의 부패 의혹과 뇌물 수수 스캔들은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기성 정치인이나 밀레이나 다를 바 없다"는 환멸이 번지는 순간, 그를 지탱하던 팬덤 정치의 마법은 깨져버렸다. 밀레이는 국제무대에서도 철저히 흑백논리에 갇혀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최대 농산물 수출국이자 경제적 젖줄인 중국을 향해 "공산주의자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며 날을 세웠다. 인접국이자 최대 교역 파트너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향해서도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냉혹한 국제 경제의 법칙 앞에서 이념은 밥을 먹여주지 못했다. 중국이 통화 스와프 중단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농산물 수입선을 다변화하려 하자, 아르헨티나의 곡물 메이저와 수출 제조업계는 비명을 질렀다. 결국 밀레이는 슬그머니 중국과의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외교적 신뢰마저 잃었다. 정치적 위기가 극에 달하자 전통적인 민족주의 결집 카드인 '포클랜드 제도(말비나스) 영유권' 문제를 돌연 꺼냈다. 이는 그러나 민심을 달래기보다 정권의 조급함과 바닥난 밑천을 드러내는 방증으로 읽히고 있다.

개혁의 엔진은 '전기톱'이 아니라 '인내'에서 나온다 하비에르 밀레이는 분명 역대 어느 아르헨티나 지도자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국가적 만성 질환에 메스를 들이댄 인물이다. 포퓰리즘 복지로 국가 곳간을 비우고 화폐를 마구 찍어내던 방만한 페론주의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그의 문제의식 자체는 정당했다. 그러나 그 메스가 '정밀한 외과의사의 칼'이 아닌 '무차별적인 전기톱'이었다는 점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경제 개혁이란 단순히 예산 숫자를 맞추는 산술적 작업이 아니다. 긴축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담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이 쓰러지지 않도록 어떤 안전망을 칠 것인가에 대한 지난한 정치적 대화와 설득의 과정이다.밀레이는 정치를 조롱했고, 사회적 대화를 거부했으며, 오직 시장이라는 신(神)의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국민들에게 무조건적인 고통 감내만을 강요했다. 하지만 빵이 없는 자유는 공허하며, 내일의 장밋빛 청사진은 오늘의 굶주림을 달래지 못한다. 지지율 30%대의 늪에 빠진 밀레이 정권의 위기는 명확한 교훈을 던진다.

눈앞의 문제는 전기톱으로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지 몰라도,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나라를 재건하는 일은 국민과의 공감,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정교한 타협의 기술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숫자는 구했지만 사람은 놓친 대통령, 밀레이의 위험한 실험이 거대한 난파의 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