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석유·가스업체 50여 곳 순이익 1300억달러 넘어…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3배
미국인 휘발유·경유 추가 지출 1470억달러…가구당 1100달러 이상 부담
미국인 휘발유·경유 추가 지출 1470억달러…가구당 1100달러 이상 부담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미국 석유·가스업계가 6개월 동안 1300억달러(약 173조9530억원)가 넘는 순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3배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미국 소비자들은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으로 1470억달러(약 196조7000억원)를 추가 지출한 것으로 분석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대형 석유·가스업체 50여 곳의 실적과 시장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순이익 합계가 130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수치는 실적 발표를 마친 업체들의 확정 순이익과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업체들에 대한 애널리스트 추정치를 합산한 것이다.
NYT는 지난 2월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3월과 이달 실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추산이라고 설명했다.
◇ 미 석유업계 순이익 1300억달러 돌파…전년의 약 3배
NYT에 따르면 미국 대형 석유·가스업체 50여 곳이 지난해 4~9월 거둔 순이익은 총 470억달러(약 62조8900억원)에 못 미쳤다.
올해 같은 기간에는 순이익이 13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1년 만에 약 3배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국제유가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 초기 여파도 석유업계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 정유업체들의 수익 증가가 두드러졌다.
중동과 러시아의 정유시설 상당수가 전쟁과 공격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세계 석유제품 생산능력이 줄어든 영향이다.
휘발유와 경유 공급이 부족해지자 가동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정유시설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미국 정유업체 발레로에너지의 올해 3분기 순이익은 68억3000만달러(약 9조1400억원)에 달했다.
필립스66도 같은 기간 56억2000만달러(약 7조52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 엑슨모빌·셰브론 이익 급증…정유 부문 실적 견인
미국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과 셰브론도 정유사업의 수익성 개선에 힘입어 최근 수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의 3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엑슨모빌의 3분기 순이익은 154억1000만달러(약 20조62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를 넘었다.
셰브론의 3분기 순이익은 99억2000만달러(약 13조2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거의 세 배로 증가했다.
엑슨모빌과 셰브론은 원유를 생산하는 동시에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도 제조하고 있다.
전쟁에 따른 원유 가격 상승뿐 아니라 정제시설 공급 부족으로 높아진 정제마진이 이익 증가에 기여했다.
닐 핸슨 엑슨모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연료 가격이 가계와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이같은 상황은 하루아침에 투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현재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투자 결정들이 수년 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아이마르 보너 셰브론 CFO는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확보한 현금이 재무구조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보너 CFO는 어려운 시기에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인 현금을 가격 상승기에 축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미국 가계 연료비 부담 1470억달러…가구당 1100달러 이상
석유업계의 이익 증가와 대조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의 연료비 부담은 크게 늘어났다.
미국 브라운대 기후해법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을 공격한 이후 미국 소비자들이 휘발유와 경유 구입에 추가로 지출한 금액은 이번 주 기준 1470억달러에 달했다.
가구당 추가 부담액은 1100달러(약 147만원)를 넘는다.
이는 전쟁으로 연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미국 가계와 기업이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는 의미다.
NYT는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이 차질을 빚을 때 누가 경제적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이번 실적을 통해 다시 부각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석유업계 순이익과 소비자의 추가 연료비 지출은 서로 다른 기준으로 산출된 금액으로 직접적인 이익 이전 규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 정제마진 배럴당 62달러…정유업계 수익 급증
미국 정유업체들이 전쟁 기간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제마진 상승이 있다.
원유를 휘발유와 경유로 가공할 때 얻는 정제마진은 전쟁 이후 크게 확대됐다.
원자재 가격정보업체 아거스미디어에 따르면 미국 정유업체들의 월평균 정제마진은 10월 23일까지 집계된 자료에서 배럴당 62달러(약 8만3000원)에 달했다.
중동과 러시아의 정유시설 피해로 세계 석유제품 공급이 줄어든 반면 연료 수요는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유업체들은 원유 상당량을 송유관으로 공급받아 국제 해상운임 급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
해상 운송 비용이 급등한 상황에서도 원료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점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됐다.
반면 미국의 원유 생산업체들은 유전이 분쟁지역 밖에 있어 전쟁에 따른 직접적인 운영 위험을 상대적으로 적게 부담하면서 높은 원유 가격의 혜택을 얻었다.
다만 미국 원유 생산업체들의 이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2년 수준에는 대체로 미치지 못했다.
올해 4~9월 미국 원유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약 90달러(약 12만원)로 2022년 같은 기간의 약 100달러(약 13만4000원)보다 낮았다.
◇ 석유기업들 증산보다 부채 감축·현금 축적 선택
막대한 이익을 확보한 미국 석유업체들은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보다 부채를 줄이고 현금을 축적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NYT는 많은 석유업체들이 기존 계획보다 원유 생산량을 더 늘리거나 정유시설을 확대하는 대신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유업체 발레로에너지의 호머 불라르 CFO는 지난주 애널리스트들과의 회의에서 현금을 많이 확보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본투자 전략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발레로에너지의 3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여섯 배를 넘었다.
불라르 CFO는 축적된 잉여현금이 궁극적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식은 밝히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확보한 현금이 단기간에 원유 생산이나 정제능력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 유럽 석유기업도 고유가 수혜…셸 이익 두 배 이상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의 수혜는 미국 석유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유럽의 대형 석유기업들도 정유사업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높은 순이익을 기록했다.
영국 셸의 3분기 순이익은 120억6000만달러(약 16조14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프랑스 토탈에너지스의 3분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82억6000만달러(약 11조500억원)에 달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비상장 정유업체 유나이티드리파이닝도 올해 확보한 추가 이익을 부채 상환에 활용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지지자인 존 캐치마티디스 유나이티드리파이닝 CEO는 NYT와 인터뷰에서 새 업무용 항공기를 구입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그는 78세라는 자신의 나이를 거론하며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언제 사겠느냐고 말했다.
NYT는 미국 석유업체들이 전쟁으로 높은 수익을 얻고 있지만 가계와 기업은 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업계가 확보한 추가 현금이 단기간에 생산시설 확충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