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구라·비톨 등 4개 업체, 美 정부와 구매·임대 허가 협의
호르무즈 운송난에 유조선 운임 급등…재무부 개별 승인 검토
호르무즈 운송난에 유조선 운임 급등…재무부 개별 승인 검토
이미지 확대보기국제유가 상승과 유조선 부족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적인 원유 거래업체들이 미국의 제재 대상 유조선 약 50척을 다시 운항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급등한 원유 해상운송 비용을 낮추고 부족한 선박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미국 정부도 제재 선박을 합법적인 원유 운송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별 허가를 검토하고 있어 실제 승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라피구라, 비톨, 머큐리아,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등 최소 4개 업체가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유조선을 구매하거나 임대하기 위한 허가를 놓고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협의 중이라고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협의 대상은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선박 약 1600척 가운데 50척가량이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이들 업체의 신청을 검토하고 있으며 제재 대상 선박 전체에 대한 일괄적인 규제 완화보다는 개별 선박과 거래에 대한 허가를 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실제 허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승인 시점도 불확실하다.
◇원유 운송비 배럴당 5달러에서 40달러로 급등
원유 거래업체들이 제재 선박의 운항 재개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 유조선 시장의 심각한 선박 부족 때문이다.
특히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위험이 커지면서 유조선 운항에 차질이 발생했다.
선박들은 안전한 원유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운항 거리를 늘려야 했고 해협 통과에 따른 위험으로 보험료도 상승했다.
원유 거래업체들은 제한된 수의 유조선을 확보하기 위해 높은 운임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산 원유를 초대형 유조선으로 아시아까지 운송하는 비용은 지난달 초 배럴당 약 40달러(약 5만4560원)까지 치솟았다.
1년 전 배럴당 약 5달러(약 6820원)와 비교하면 8배 수준이다.
이후 운임이 일부 하락했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원유 해상운송 비용은 최종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운임 상승이 지속되면서 국제유가도 배럴당 100달러(약 13만6400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 유조선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부족한 운송능력을 늘려 원유 가격과 미국 내 에너지 비용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트라피구라·비톨 등 제재 유조선 확보 협의
이번 협의에는 세계 원유 거래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트라피구라, 비톨, 머큐리아는 국제 원유와 석유제품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다. ADNOC은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석유회사다.
이들 기업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제재 대상 유조선을 매입하거나 임대한 뒤 합법적인 원유 운송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협의 대상에는 원유를 최대 200만배럴까지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원유운반선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거래업체들이 제출한 신청을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특정 선박의 구매와 운항에 대한 허가를 내주는 방식이 거론된다.
그러나 협의가 실제 계약이나 운항 재개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트라피구라, 비톨, 머큐리아, ADNOC 측은 이번 협의와 관련한 논평을 거부했다.
◇美 "불법 유조선을 합법 선박으로"…제재 체계는 유지
미국 정부는 앞서 제재 선박을 합법적인 해상운송 시장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제재 대상 유조선을 매입해 수리한 뒤 합법적인 원유 운송에 사용하는 투자자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이트 장관은 이같은 방안을 불법적인 원유 운송에 동원된 유조선을 합법적인 선박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제재 선박을 무조건 시장에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구매자에게 매각하고 승인된 원유 운송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통해 선박 부족을 완화하면서도 제재 대상 원유 거래에 관여한 사업자들에게 새로운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상황은 막겠다는 구상이다.
블룸버그가 미국 재무부 자료를 집계한 결과 4일(현지시각) 기준 미국의 제재를 받는 선박은 1568척이다.
이 가운데 원유 운반선은 462척으로 집계됐다.
제재 선박 상당수는 위치추적장치를 끄는 등 운항 정보를 숨기는 방식으로 당국의 감시를 피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그림자 선단'은 러시아나 이란 등의 제재 대상 원유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활용돼 왔다.
미국 정부가 검토하는 조치는 이들 선박 가운데 일부를 합법적인 운송시장으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실제 선박 늘어나야 운임 하락…노후 유조선 안전성도 변수
다만 제재 선박의 운항을 허용하더라도 원유 운송비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허가받은 유조선이 실제로 새로운 운송능력을 제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운항하지 않고 있는 제재 선박을 수리해 시장에 투입하면 유조선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이미 그림자 선단으로 운항 중인 선박의 법적 지위만 바꾸는 경우에는 전체 운송능력이 실질적으로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텍사스주 연안에 머물고 있는 '스키퍼'호 같은 유휴 선박을 다시 운항하는 것이 운송능력 확대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선박의 노후화도 문제다.
제재 대상 유조선 대부분은 일반 상업용 선단보다 선령이 높아 정비 상태와 운항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들 선박을 장거리 항로에 투입하기 어려울 경우 미국과 카리브해, 중남미 사이의 단거리 운송에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새로운 유조선을 아시아 등 장거리 항로에 배치할 수 있어 전체 운송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허가만으로 모든 국제적 제재가 해제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EU)과 영국도 러시아·이란산 원유 운송 및 제재 회피에 동원된 선박에 별도의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개별 유조선의 운항을 승인하더라도 다른 국가의 제재와 보험·항만 이용 제한 등이 실제 운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가 안정 총력전에도 고유가 지속…정치적 부담 가중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추진해 왔다.
비상 석유비축량을 방출하고 일부 연료 관련 규정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등 원유와 석유제품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고유가가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대규모 패배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했다.
제재 유조선 운항 재개를 위한 협의도 에너지 가격을 낮추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번 방안의 실효성은 미국 재무부의 실제 허가 여부와 대상 선박의 상태, 국제 해운시장의 수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제재 선박을 합법적인 운송시장에 복귀시키는 조치가 선박 부족 완화에 기여할 수 있지만, 운임과 국제유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