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 플랫폼 막론하고 '정체 단계'
타 플랫폼으로 진출 시도 가속화
하던 대로 하면 팔리지 않는 시대
글로벌 눈높이 맞춘 완성도 필요
타 플랫폼으로 진출 시도 가속화
하던 대로 하면 팔리지 않는 시대
글로벌 눈높이 맞춘 완성도 필요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의 2020년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빅 앤 리틀'이다. 개발진 약 100명 규모의 중·대형 게임 다수를 개발하는 것에서 탈피해 대규모 개발비가 투입되는 '빅 게임', 창의적인 소규모 조직을 내세운 '리틀 게임'을 구분해 개발하는 기조로 알려졌다.
경기도 판교에서 24일 열린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25의 키노트를 맡은 박용현 넥슨코리아 개발부사장 겸 넥슨게임즈 대표는 빅 게임에 대해 "단순히 기존 게임사들이 많은 비용을 투입해 개발해 온 '대작'을 넘어 글로벌 시장 눈높이에 맞춘 퀄리티, 콘텐츠를 겸비한 게임이 넥슨이 바라보는 빅 게임"이라고 밝혔다.
넥슨이 기존의 대작 게임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 이유로 현재 게임 시장이 세계적으로 '정체 단계'에 놓였다는 점을 거론했다. 박용현 대표는 "게임 시장이 미개척지였던 시절에는 각 게임사들이 저마다 분야에서 노력해 성공을 거두고 빅 플레이어로 성장했다"며 "지금은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패키지 게임을 막론하고 모두 정체기에 놓인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모바일 게임이 정체기에 놓였다는 근거로 △주요 게임 차트 매출 최상위권에 출시 후 5년, 10년 이상이 흐른 장수 IP 게임들이 다수 포진해있다는 것 △틱톡·유튜브 쇼츠 등 숏폼 플랫폼을 필두로 게임 이상의 매출을 거두는 앱이 등장한 것을 제시했다.
패키지 게임 시장의 어려움에 관해선 대표적인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예시로 들었다. 2018년작 '마블 스파이더맨'의 개발비는 1억달러(약 1360억 원) 수준이었으나 2020년작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는 1억5600만 달러, 2023년작 '마블 스파이더맨 2'는 3억1500만 달러로 5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개발비용이 급증했다.

게임 시장 정체기에 따른 결과로 게임사들의 플랫폼 다각화를 들었다. 박용현 대표는 "패키지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를 1000만 장 이상 판매한 워너브라더스가 온라인 게임을 바라보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중국 게임사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들이 우리의 세계로 들어온다면 우리 또한 그들의 세계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공략에 성공한 빅 게임의 예시로는 중국의 '검은 신화 오공'과 체코의 '킹덤 컴: 딜리버런스'는 물론 30명 규모 프랑스 개발사의 게임 '33원정대: 클레르 옵스퀴르'도 제시했다. 박 대표는 "사이즈 면에서 '대작'인 것이 아니라 글로벌 눈높이에 맞춰진 퀄리티를 갖춘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동유럽은 물론 중국도 이미 글로벌 진출을 개시한 만큼 한국 게임사들도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넥슨게임즈는 2020년도 들어 '블루 아카이브', '퍼스트 디센던트'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넥슨의 핵심 자회사로 떠올랐다. 넥슨게임즈의 차기작 '던전 앤 파이터: 아라드'나 넥슨코리아에서 준비 중인 '빅 게임' 차기작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나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 모두 국내외 게이머들의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박용현 대표는 "기존에 만들던 대작이 아닌 '아예 다른 물건'을 만들다 보니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며 "우리가 확인한 것은 해외 게임사들은 마케팅 방식부터 다르고, 우리가 해온 기존의 개발 경험은 오히려 방해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온라인·모바일 게임은 흔히 출시 2~3개월에 앞서 사전 등록, 캐릭터 등록, 트레일러 공개 등 형태로 출시 사전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해외 AAA급 대작들의 경우 인게임 트레일러 영상 공개와 실제 게임 출시 사이 기간이 3년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중국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은 해외 AAA급 게임 사례로 꼽혔다. 이 게임은, 2020년 최초의 게임 트레일러를 공개한 후 실제 출시는 4년 후인 2024년에 이뤄졌다. 박용현 대표는 "설립 당시 인력난을 겪던 오공 개발사는 최초의 트레일러 공개 후 오히려 수많은 게임인들의 이력서를 받고 조직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며 "마케팅 방식 변화가 개발 환경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논했다.
또 "개발력 누수, 개발 비용 확대 등을 이유로 '우리는 기존에 하던 대로 트레일러는 출시 직전에 내겠다'고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지금의 게임 시장은 기대감을 미리 끌어올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시대로, 개발이 늦어지더라도 안 팔리는 것보단 낫다"고 역설했다.
박용현 대표는 한국 게임이 글로벌 진출에 유리할 수 있는 이유로 △실리콘 밸리에 비하면 높지 않은 비용 구조 △독보적인 온라인 게임 라이브 서비스 경험 △K-컬처의 글로벌 유행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러한 이점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몇 해만 흘러도 이미 늦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키노트 말미에 박 대표는 '기회가 닫히기 전에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앞바다와 대작을 넘어 '빅 게임'을 개발하며 거친 대양으로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