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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26주년 맞은 두산그룹, 3대 新사업 육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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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26주년 맞은 두산그룹, 3대 新사업 육성 중

소비재서 중공업 변신했지만, 2012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재무위기로 위기 겪어
총수 등극한 박정원 회장,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단 2년 만에 재무개선약정 졸업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이 두산테스나 서안성 사업장에서 반도체 웨이퍼 테스트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그룹이미지 확대보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이 두산테스나 서안성 사업장에서 반도체 웨이퍼 테스트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기업경영에 지름길을 찾으면 안된다. 하나의 단계에 집착하지 말고,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항상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 나아가는 사람만이 편안함을 찾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강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회장은 생전 기업경영을 이렇게 정의했다. 쉽고 빠른 길보다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고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로의 작은 포목점에서 시작한 '박승직상점'이 국내 대표 대기업인 두산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새로운 길을 찾는 '개척정신'에 있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길을 찾는 것처럼 주류·소비재에서 기계·중공업으로, 다시 반도체·로봇·수소·SMR(소형모듈원자로) 등 미래첨단산업으로 그룹의 주력사업을 진화해왔다.

두산그룹은 창립 126년을 맞아 반도체&첨단IT·차세대에너지·수소비즈니스 등 미래신사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19세기 말 작은 포목점으로 시작했던 두산이 이제는 미래첨단산업의 리더로 도약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사세를 살펴보면 위기 때마다 새로운 길을 찾는 개척정신이 빛을 발했다. 위기를 기회를 만들며 국내 대표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실제 1930년대 말 박승직상점이 일제의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자 박두병 창업회장은 쇼와기린맥주 대리점을 차려 극복했다. 이 때의 인연으로 박두병 창업회장의 두산상회는 1956년 국내 최대 주류회사였던 동양맥주(이전 쇼와기린맥주·1995년 OB맥주로 사명변경)를 인수했고, 국내 대표 유통·소비재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두산의 개척정신은 3세대인 박용곤 회장 때에도 이어졌다. 1990년 발생했던 경영위기 당시 23개에 달하는 계열사들을 단 4개로 통합할 정도로 단호한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 이를 통해 두산그룹은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극복했고,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을 시작으로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에는 대우종합기계(이후 두산인프라코어·현 현대두산인프라)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단 10년 만에 중공업 기업집단으로 탈태환골 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위기도 초래했다. 중공업사업 위주로의 주력사업 전환을 마무리 짓던 2010년 전후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어 2013년부터 본격화된 두산건설 재무위기는 두산그룹을 수렁으로 몰아넣는 단초가 됐다.

박정원(4대) 회장은 결국 2020년 4월 결단을 내렸다. 산업은행과 채권단에서 1조원을 지원받는 것을 조건으로 재무개선약정을 체결하고,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두산그룹은 재무개선약정 체결 후 단 1년 11개월 만에 대부분의 채무를 상환했다.
채권단과의 재무개선약정을 졸업한 두산그룹은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았다. SMR과 수소비즈니스라는 차세대 에너지 사업 외에, 지난 5월 테스나(현 두산테스나)를 전격 인수하며 반도체 후공정 사업에 새롭게 진출한 것이다.

단호한 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이후에는 신사업에 나서는 두산그룹. 하나의 단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창업회장의 ‘개척정신’은 100년 두산그룹의 행보에 여전히 나침반이 되고 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