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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엑소더스’ 시작됐다…진출기업 절반 이상 철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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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엑소더스’ 시작됐다…진출기업 절반 이상 철수 고민

중국 내 중견‧중소기업들 삼삼오오 모여 중국 사업 정리 방안 논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수년 내 사업중단설이 중국탈출 결정 부추겨
무역 악영향…대중 수출 갈수록 줄고 대중 무역적자는 증가세 지속,
글로벌 대기업의 중국 소재 기업과 거래 중단 결정도 중국 이탈 한몫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에서 둘째)이 지난달 24일 중국 톈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에서 둘째)이 지난달 24일 중국 톈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탈(脫)중국’ 움직임이 거세다.

2018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LG생활건강과 더페이스샵, 네이처컬렉션, 롯데홈쇼핑, CJ오쇼핑, 현대홈쇼핑, 이랜드그룹, 삼성물산 등 유통기업으로부터 시작된 중국 탈출 바람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중국의 강력한 봉쇄 조치로 공급망이 단절되면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제조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빠져나갔었다. 최근에는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제외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강력한 통상‧규제 조치가 시행되면서 중국 내 국내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래도 중국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던 우리 기업인들의 입장도 바뀌고 있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을 지원하는 에이전시 업체 관계자는 “중국 각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임원과 주재원들 모임의 최근 화두는 ‘어떻게 중국을 빠져나가느냐’라고 한다. 통계로는 잡히지 않지만, 현지에 있는 우리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을 포기하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 기업은 최근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중국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할 수 없도록 한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삼성과 SK 덕분에 중견‧중소기업도 좋은 대우를 받으며 중국으로 갔는데, 만일 5년 후 두 업체가 중국 사업을 중단한다면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남아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중국 관심도는 많이 떨어졌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제공하는 해외투자 변동 추세를 살펴보면, 한·중 수교 30주년이었던 지난해 중국에 설립한 국내 기업 신설법인 수는 194개로 1992년(174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최고에 달했던 2006년 2392개와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같은 해 베트남은 301개, 미국은 687개였다.
로컬 업체와의 경쟁력 차별화가 희석된 것도 우리 기업이 중국 내에서 생존하기 불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은 아직도 중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대부분이 해외 진출 경험이 적고, 중국 지방정부의 투자유치에 편승해 즉흥적인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중간 관리자의 확보와 양성이 어렵다. 하청과 분업 체제가 미비하며, 인건비 상승과 로컬 기업과의 기술 격차 축소, 중국 상거래 관행의 문제, 현지 은행의 대출 어려움,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투자유치 이전과 이후), 법규와 제도의 빠른 변화 등을 우리 기업들이 견디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조차 코로나19 사태로 현지에서 정상적인 사업을 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경영난이 지금도 복구가 안 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로컬 기업들의 약진과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편들기 정책은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미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탈출 증가와 신규 진출 감소는 대중 무역적자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국내에서 중국 기업이나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주로 장비와 중간재를 공급해 완제품을 제조하여 현지에서 판매하거나 제3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수십 년간 수출을 늘리고, 대중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상황이 뒤바뀌었다. 산업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 수출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했고, 대중 무역적자는 6개월 연속 이어졌다. 4월 1~10일 기간도 대중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1.9% 줄어든 26억6600만 달러로 대중 무역적자는 11억28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기업의 경쟁력 향상은 한국의 대중 수입을 늘리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중국에서 철수해 한국으로 돌아온 중견기업 관계자는 “돌아왔지만, 오히려 중국 제품과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이제 중국산 제품은 가격만 싼 게 아니라 품질과 성능도 좋아졌다. 우리 기업이 방심해 기술개발을 게을리한 게 크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중국 열풍은 다른 나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애플이 내년 5월부터 맥북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기로 하는 등 중국 내 제조업체와 제휴를 끊을 것임을 밝힌 데 맞춰 최대 협력업체인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이 미 정부의 중국 제재를 피해 인도에 7억 달러를 투자해 새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을 비롯해 대만 기업들도 중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

미국 PC업체 델 테크놀로지는 2024년부터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자사 PC에 쓰지 않기로 했으며, 일본 기업의 절반 이상도 중국에서의 부품 조달률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의 이러한 결정은 중국에 있는 제조업체의 사업장 이전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에서 철수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고 복잡해 감히 엄두를 못 내는 기업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분위기에 맞춰 중국 정부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중국 지사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사드 등으로 혐한령이 퍼져 있는 중국 내에서 한국 기업이 떠난다는 소문이 돌면서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다”며 “외국 기업에 다니다가 회사가 떠나면서 실업자가 된 중국인들도 증가해 중국 내에서도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