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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반도체 50년 내공…삼성전자 “위기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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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반도체 50년 내공…삼성전자 “위기는 기회였다”

위기 속에도 대규모 R&D 투자, 회사 연구진 기술개발 집중
이건희 선대회장 사재출연, 1974년 한미반도체 인수로 시작
선도기업 뛰어넘는 ‘월반(越班)’ 전략으로 위기 때 도약 이뤄
이재용 회장도 3나노 공정 세계 최초 상용화로 TSMC 압박
“가혹한 위기상황, 가장 빨리 미래 기술 개발해야” 독려中

2010년 5월 17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왼쪽 둘째)과 이재용 사장(당시, 왼쪽 넷째) 등 참석자들이 16라인 기공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2010년 5월 17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반도체 16라인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왼쪽 둘째)과 이재용 사장(당시, 왼쪽 넷째) 등 참석자들이 16라인 기공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올해 반도체 사업 시작 50년을 맞는 삼성전자가 2보 전진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분기도 심상찮다. 회사 전체 영업이익 적자 전환 우려까지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반도체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위기를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쁜 모습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보고 고민하는 여유조차 사치라고 여길 정도다.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라며 앞만 보고 간다는 이재용 회장의 말처럼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불황이 연구진들의 위기 극복을 위한 기술개발 의지를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이미 발표한 미래를 위한 투자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분기에만 6조5800억원에 달하는 분기 사상 최대 규모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같은 기간 거둔 영업이익 6400억원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시설 투자 또한 역대 1분기 기준 최대인 10조7000억원을 투입했다.

반도체 경기 진폭의 높고 낮음이 다른 사업에 비해 크다. 오늘 호황이면 내일은 불황, 모레는 다시 호황으로 돌아설 만큼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한다. 따라서 투자 시기가 앞서거나 늦어지면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 전체가 흔들린다. 반도체 사업을 타이밍 사업, 스트레스 사업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러한 반도체 사업을 삼성은 50년 동안 지속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숱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약하며 경쟁자를 하나둘 시장에서 내쫓았다. 업계에서 “삼성은 위기를 반기고, 즐길 만큼 내공이 쌓였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

삼성은 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이 사재(私財)를 털어 1974년 12월 6일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어 고 이병철 창업 회장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소위 ‘2‧8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주인공은 메모리 반도체였다. 1993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에 올라 현재까지 31년째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17년에는 미국 인텔을 제치고 전체 반도체 산업 1위에 올랐다.

후발 주자였던 삼성전자가 경쟁자를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은 남들보다 한 발 먼저 기술을 개발하고, 같은 기술을 동일한 시기에 개발하면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원가를 낮춘 반도체 제품을 경쟁사보다 빨리 상용화해 신제품 초기 시장을 점령한 덕분이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이러한 전략을 ‘학생의 성적이 뛰어나 상급 학년으로 건너뛰어 진급하는 일’이라는 뜻의 ‘월반(越班)’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월반해야 한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는 영원한 기술 후진국, 경제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월반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는 ‘스택(Stack)’과 8인치 웨이퍼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 당시 채택한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방식으로 지하로 파는 트렌치(Trench)보다 생산원가가 저렴하다. 1993년 도입한 8인치 웨이퍼는 기존 세계 표준인 6인치에 비해 생산량이 두 배 정도 많다. 장점이 크지만 일본‧미국 경쟁사는 위험 부담 때문에 채택을 꺼렸지만, 이건희 선대 회장은 과감히 결정했다. 그의 도전이 옳았다. 스택으로 설계해 8인치 웨이퍼를 적용해 양산한 16메가 D램으로 삼성전자는 1993년 10월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월반 전략은 이재용 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도 1등을 차지할 것이라고 천명한 그는 지난해 첫 결과물을 내놓았다. 대만 TSMC보다 먼저 3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그것도 차세대 트랜지스터인 GAA 구조를 적용한 방식이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절대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초미세 공정 기술에서 늘 앞서던 TSMC의 자존심을 할퀸 ‘사건’이었다. 또, 삼성전자는 고객사에 파운드리 양강 체제가 확립됐다는 강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TSMC 위주의 시장 판도를 흔드는 데에도 성공했다.

최근에는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이 지난 4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강연에서 “5년 안에 TSMC를 따라잡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삼성의 반도체 전략이 비단 TSMC 따라잡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재용 회장은 기존 관념을 넘어선 새로운 반도체 기술을 이른 시일 내에 만들어 진정한 반도체 부문 최고 기업이 돼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앞으로 2~3년이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골든 타임’이라고도 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힘들겠지만 잠시도 멈추면 안 된다. 신중하되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넘어서자. 위기 이후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흔들림 없이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 있다. 시간이 없다”고 하는 등 주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