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찾아간 인천 남동구 논현동 한화기념관. 수인 분당선 인천 논현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고(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 회장을 기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한화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있었다. 한화기념관은 크게 한국화약(한화의 전 사명)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본관, 화약 제조공실, 성 디도 채플(기도실) 등 세 곳으로 나뉜다. 2006년 6월 충북 보은공장으로 기능이 이전된 인천공장의 사무동 부지에 지어졌고 2009년 11월 문을 열었다.
기자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한화인의 길'이었다. 단순히 바깥 도로와 한화기념관을 연결하는 길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화약과 굵직굵직한 사업 추진을 위해 주요 정치·경제계 인사들이 이 길을 오고 다녔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큰 도움을 준 뜻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들어오시는 분들의 첫인상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했다.
이 길 끝에 있는 본관은 한화 인천화약공장의 실제 사무실을 개보수해 전시관으로 꾸며졌다. 본관 앞마당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다. 고개를 위로 크게 젖혀야 눈에 들어올 만큼 큰 덩치를 자랑했다. 이 나무는 한화가 첫 공채 신입사원을 뽑은 1962년에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 나이로 환갑이 넘은 것이다.
전시관은 국산 화약의 역사부터 한화의 화약 개발 과정 등에 대해 쉽게 알 수 있게 꾸며놨다. 화약, 폭약, 화공품, 연화 등 화약 제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접할 수 없던 화약 제품을 직접 볼 수 있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직접 연화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해놨다. 모양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던 불꽃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물론 위험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화약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공간으로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김종희 창업 회장의 흉상은 왼편에 자리했다. 그 옆에는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설치된 동그란 조형물이 위치했다. "화약인은 정직해야 한다. 또 정확해야 한다. 약속된 시간과 약속된 장소에서 반드시 폭발하는 화약처럼" 등의 생전 김 회장의 어록이 새겨져있다. 검은색 목재 프레임에 308개 백열전구로 구성된 박근호 작가의 작품 '묘화'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개척자의 정신을 불꽃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을 담당한 한하기념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화약 제조공실에는 지난 1956년 우리나라 최초로 생산된 초안폭약을 포함해 뇌관·다이너마이트 등 각종 제품과 생산 설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전'이 최우선으로 지켜졌다. 진입로인 흙둑 터널 오른편에는 조그만 종(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상벨이 없었던 당시, 이상 발생 등의 위험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화약 제조공실은 유사시 폭발로 인한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무로 지어졌다. 바닥에는 고무판이나 납판이 쓰였고 공실 안의 모든 틈새는 화약 침투를 막기 위해 천(광목)으로 발라졌다.
안전을 위한 노력은 마지막으로 방문한 성 디도 채플에서도 이어졌다. 이곳은 임직원들의 안전을 기도하기 위해 마련된 곳으로 창업주의 세례명을 따 성 디도 채플로 불리다가 지난 1981년 김종희 창업 회장이 별세한 후 '고 현암 김종희 디도 기념 성당'으로 바뀌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곳곳에 자리한 의자, 오르간 등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공장 이전을 앞둔 2006년 5월 미사가 종료됐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한화가 안전하게 발전하며 유익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소서"라는 한화의 안전을 위한 기도가 계속되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