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식품칼럼] 라면과 팜유

공유
0

[식품칼럼] 라면과 팜유

윤석후 우석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윤석후 우석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1989년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우지파동’이라 불리는 전대미문의 대형 식품 관련 사건이 발생했다. 라면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업체들이 라면을 튀기는 기름으로 식용이 아닌 우지, 즉 공업용 쇠기름을 수입하여 라면을 생산했다는 것이었다. 제2의 주식으로까지 불리며 주곡이 모자라던 시절 우리 식생활에서 큰 몫을 담당했던 라면에 대한 불신과 라면 생산 업체에 대한 비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지의 명칭에 대한 무식함과 식용유지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과학적 검증과 오랜 법정 다툼을 거쳐 7년 후에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다.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동안 해당 업체들이 당한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정부에서는 쇠기름을 라면 제조에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법령을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라면 업계는 라면 제조에 왜 쇠기름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튀김에는 쇠기름이 일반 액체 식용유지보다 튀김 적성이 좋기 때문이다. 쇠기름에는 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 오랜 시간 열을 가하더라도 산패되는 것이 적어 튀김 식품의 품질을 높이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쇠기름을 사용하여 튀김을 할 경우 쇠기름의 풍미가 라면에 스며들어 구수한 맛을 더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쇠기름을 사용한 제일 큰 이유는 첫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면 쇠기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어떠한 기름이 대신 사용될 수 있을까? 영양학적 관점과 기술적·경제적 관점에서 채택된 것이 바로 팜기름이다. 일반적으로 쇠기름, 돼지기름과 같은 동물성 지방에는 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열을 가해도 산화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의 식물성 기름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장시간 가열할 경우 산화안정성이 떨어지게 되고, 최종 제품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팜기름은 기름팜나무에서 얻어지는 식물성 기름임에도 불구하고 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 장시간 가열에도 산화안정성이 높아 튀김기름으로 적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기름에 튀긴 라면(유탕 라면)은 거의 대부분 팜기름을 이용하여 튀긴 것이다.

우리나라 등 세계 각국에서는 라면뿐만 아니라 제과, 제빵, 마가린 제조 등 각종 식품에 팜기름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동안 팜기름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즉 팜기름의 주요 구성지방산인 팔미트산(이 명칭은 팜유로부터 유래되었다)을 지방산 상태로 동물에게 급여했을 때 동맥경화증, 혈전증 등과 같은 질병이 유발된다고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즉 “팔미트산은 몸에 나쁘다. 팜기름에는 팔미트산이 많다. 그러므로 팜기름은 몸에 나쁘다”라는 삼단 논리가 개진된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팜유는 몸에 나쁘지 않으며 다른 식물성 기름과 비슷한 영양학적 성질을 갖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팜기름을 먹을 때 팜기름 전체를 먹는 것이지 팔미트산만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팜기름에는 팔미트산 이외에도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올리브 기름의 주성분)과 리놀레산(콩기름의 주성분)이 반 이상 함유되어 있다. 또 토코페롤, 카로틴 등 산화방지성분도 다량 들어 있어 이들이 팔미트산의 나쁜 영향을 보완하고 전체적으로는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현재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전체 식용유지의 약 45%를 팜기름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식용유지를 생산하는 나라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모든 식품에 자기네 기름을 사용하기를 원한다. 팜기름이 그렇고 콩기름이 그런 예다. 그러나 모든 기름은 그 성질에 맞는 적당한 용도가 있는 법이다. 팜기름은 튀김에 좋고 콩기름은 조리에 적합하며 참기름, 들기름, 올리브기름 등은 샐러드에 적합하다. 어느 한 가지 기름이 모든 용도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는 식용유지와 그 원료의 약 97%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양이 워낙 미미하여 수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 식용유지의 용도를 고려하여 최적합한 유지를 선택하여 수입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하고 당연한 일이다.
윤석후 우석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