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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쓴맛도 익숙해져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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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쓴맛도 익숙해져야 할 때가 왔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세계경제는 어두운 협곡으로 들어서는 것 같다. 한국 경제는 가계부채가 1000조를 넘어 어디까지 치솟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가 어렵게 극복할 수 있었던 IMF보다 더 힘든 또 다른 시련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예상하여 본다. 지난 IMF시절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 했던 것은 잘 먹고 잘 살던 환경에서 내려와 제대로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면서 참으며 내핍생활을 해야만 했다.

사실 조금 힘들게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리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어 왔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맛없는 것도 먹어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인간의 3가지 욕망 중에 하나인 식욕이 마치 차단되는 것과도 같아 살고 싶은 맛이 나지 않는다.
승차감이 좋은 외제차를 타던 사람이 승차감이 불편한 조그만 차를 타야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힘에 겹다. 우리 감각은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일은 매우 쉽고 편하여 불편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내려와야 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이 든다.

비엔나 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늘 들어오던 사람이 초등학교 합주단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면 높아진 청각 수준이 이를 용서하지 못한다. 시각수준도 예외는 아니다. 유명 패션브랜드의 가격이 비싼 옷을 입던 사람에게 백화점에서 세일하는 옷으로만 입어야 한다고 하였을 때 그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일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자살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살아가느니 차라리 이 세상을 떠나버리겠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감각의 상실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감각 기능은 균형을 이루면서 각가지 감각을 고루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균형이 깨지면서 불안해지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감각을 상실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것을 먹어왔던 사람들도 이제는 맛이 없는 것에도 익숙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들이 즐겨 먹는 식품들은 대체로 달거나 짠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감칠맛 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쓴 것을 제외하고는 달거나 짠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TV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경우 감칠맛이나 단맛을 내는 음식점들이 많다. 물론 짭짤한 반찬들도 그 대상에 포함이 되지만 어느 유명 맛집치고 쓴맛의 음식을 내놓는 곳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쓴맛의 식품들도 평소 먹어 주어 균형을 이룬 맛의 세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쓴맛을 먹지 않게 되면 몸에서 균형이 깨져 병을 앓거나 하는데 이때 처방하는 약들이 대부분 쓰다. 한약재도 쓰고 양약도 모두 쓴 것들뿐이다. 물론 어린이들은 단맛으로 마스킹을 하여 쓴맛을 모르는 가운데 약을 먹일 수 있도록 맛을 속이기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체로 쓴맛 식품들에 함유되어 있는 유효한 기능 성분들을 포함하는 것들이 대부분 우리들에게 약으로 다가 오는 이유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면 내려가야 하듯 파도를 타는 것처럼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난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때론 그렇지 않은 것들도 먹어야 한다. 우리들이 하는 말 중에 ‘인생의 쓴맛을 좀 맛보아야해!’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은 좋은 일만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순간도 맞이하게 되는데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평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너무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순리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맛도 다를 바 없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대비하여 너무 맛있는 것만을 추구하지 말고 쓰디쓴 것들도 참고 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쿡방이나 요리 프로그램, 맛집 이야기들도 경제 한파가 휩쓸고 지나가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언제 우리가 그런 것에 관심이나 가진 적이 있느냐는 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쓴맛의 식품에도 익숙해질 때가 된 것이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