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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고사리와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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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고사리와 음식윤리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설이나 추석 명절에 빠지지 않는 삼색 나물이 있다. 뿌리나물인 도라지는 조상을, 줄기나물인 고사리는 부모를, 잎나물인 시금치는 자식을 상징한다. 그런데 정작 셋 중에 가장 연로한 것은 고사리다. 고사리는 홀씨로 번식하는 민꽃식물로서 꽃식물인 도라지나 시금치보다 지구에 등장한 시기가 앞서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대선배인 고사리. 그 어린 순을 음식으로 먹다니…….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생명을 먹는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에 기대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뿐 아니라 후손의 생명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를 필요로 하며,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를 음식으로 먹는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도 자신의 생명을 호락호락 내주지는 않는다.
날쌘 토끼와 느려도 등껍데기가 단단한 거북이. 동물이 자기 생명을 방어하듯, 식물도 자기방어를 한다. 감자가 싹이 날 때 생기는 유독한 솔라닌(solanine)이나 마늘의 항균성 물질인 알리신(allicin)도 제 몸을 보호하는 물질이고,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e)도 다른 해충이나 병균의 침입을 막는 물질이다. 자기방어 물질을 만들지 않는 식물은 없다.

고사리 역시 지구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 바로 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라는 테르펜류(norsesquiterpene)의 배당체(glycoside) 때문이다. 배당체는 당류와 비당류가 결합한 물질을 가리키는데, 타퀼로사이드는 불안정하여 당이 분리되면서 다이에논(dienone)이라는 발암물질이 된다. 다행히 다이에논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쉽게 테로신 B(pterosin B)로 바뀌면서 발암성을 잃는다.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은 이런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그래서 고사리의 어린 순만을 따서 끓는 물에 데치고 오랜 시간 흐르는 물에 담근 후 조리하여 먹거나, 데쳐서 말린 고사리 순을 필요할 때마다 다시 끓여서 흐르는 물에 담가 불린 후 조리하여 먹었다. 이렇게 처리하면 수용성인 타퀼로사이드나 다이에논 등 해로운 물질이 대부분 제거된다.

이번에는 고사리 섭취를 음식윤리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음식윤리란 음식관련 행위에 대한 윤리로서, 음식을 만들고 팔고 먹을 때 지켜야 할 도리이다. 고사리나물을 만들고 팔고 먹을 때 우리는 음식윤리를 잘 지키고 있을까?

음식윤리의 핵심원리에는 생명존중, 환경보전, 정의, 소비자 최우선, 동적 평형(절제와 균형), 안전성 최우선의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가 고사리나물을 먹더라도 고사리의 지속 가능한 생존은 끄떡없다. 생명력이 강한 고사리의 씨를 말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명존중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둘째, 산불이 났던 땅에서 제일 먼저 싹튼다는 고사리는 재배할 때 농약을 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환경보전의 원리에도 잘 부합된다.

셋째, 중국산을 국내산이라고 속이지 않고, 국내산을 국내산으로 판다면 정의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넷째, 고사리 순을 따서 파는 사람은 소비자를 위해 삶거나 데쳐서 말리는 수고를 기꺼이 한다. 따라서 소비자 최우선의 원리도 잘 지키고 있다. 다섯째, 고사리나물은 식이섬유를 공급하여 주는 대표적인 다이어트 음식이기 때문에 동적 평형(절제와 균형)의 원리에 잘 들어맞는다. 여섯째,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반드시 어린 순을 따서 끓는 물에 삶거나 데친 후 말려서 팔았고, 먹을 때는 그것을 다시 삶아 물기를 뺀 다음 조리함으로써 안전성 최우선의 원리를 제대로 지켰다.
이젠 삼색나물이나 비빔밥, 육개장에서 벗어나, 고사리나물을 더 맛있는 요리로 개발하여, 더 자주 더 많이 먹는 것이 음식윤리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올 명절에는 음식윤리의 편에 서서 ‘더도 덜도 고사리나물만 같아라.’라고 말하고 싶다.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