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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식품 비교표시제도의 도입은 신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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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식품 비교표시제도의 도입은 신중히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음식의 맛은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을 요한다. 한국에 온 서방인 들이 김치나 젓갈류와 친숙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우리가 변 냄새가 나는 치즈를 즐겨 먹기까지 수년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로 맛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식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년 전 식약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소금 섭취량이 많다는 보고를 토대로 이를 낮추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 한편으로는 대기업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소기업에서도 소듐(나트륨)의 양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수립할 수 있도록 했고 이를 토대로 점진적으로 일반 가공식품의 가이드라인 목표치를 제시하며 이를 맞추어 나갈 것을 요구한바 있다. 법적인 의무사항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의 성격을 띠고 있어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소금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한바 있다.
핀란드의 경우 30여년에 걸쳐서 조그만 행정구역에서 시작하여 그 효과에 따라 점진적으로 구역을 확대해 국민들이 맛의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오랜 기간에 걸쳐 캠페인을 수행하여 3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효과를 얻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가이드라인으로 운영하던 방법에서 좀 더 강화된 방향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비교표시제’라는 제도이다.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여 소듐이 높거나 낮거나 등을 표시하기 때문에 이 제도를 채택하게 되면 대부분의 가공식품들의 소듐 함량을 빠른 시일 내에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이 제도는 경쟁 회사가 제품의 소듐 양을 줄이는데 우리 회사 제품도 줄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소금을 적게 먹도록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매우 효과적인 제도일는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소듐의 양을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낮추어 제품마다 맛의 특성을 획일화해 버리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진 국가에서도 매우 신중하게 점진적으로 맛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렇게 강압적으로 수행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소금의 함량을 15~25%까지 낮추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소비자들의 건강을 생각하여 나서는 범세계적인 움직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빠른 시일 내에 어떤 효과를 제시하기 위하여 법으로 시도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짠맛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를 이미 확보한 선진국에서는 이런 신기술이 적용되는데 큰 무리가 없는데 반하여 우리는 아직 이를 대체할 기술력이 부족한 상태이며 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불리하다는 점이다.

비교표시제도가 도입되면 회사들마다 독특한 맛을 가지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고도의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소듐의 양을 줄이는 형태로는 좋은 제품을 제조하기가 어렵다. 소비자들에게도 다양한 품질의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짠맛이 충족되지 못한 제품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불만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소듐의 비교표시제가 실시된다면 제품의 맛특성이 획일화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짠맛 대체재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 나라 가공식품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져 수입식품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창조경제를 한편으로 부르짖으면서 현 정부가 창의성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품질의 획일화를 추구한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기간을 통해서 정부부처에 요구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맛에 대한 특성과 문제점을 정확히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건강문제 한 면만을 생각하여 요구하는 사항을 정부부처가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도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과감하게 품질과 기능을 관리하는 면에서 맛과 관련된 문제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가이드라인을 통하여 선진국에서 시도하였던바와 같이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국회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면 되는 일인데 너무 수동적 자세로 임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맛의 문제는 하루아침에 수치를 낮춘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맛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코카콜라가 맛이 조금 다른 제품을 출시하였다가 상당한 매출액의 손실을 보고나서 과거의 맛으로 돌아온 것처럼 제품의 맛은 매우 민감한 부분으로 겉으로 나타나는 성과위주의 접근 방법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