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식품칼럼] GMO 표시제에 따른 고민

공유
3

[식품칼럼] GMO 표시제에 따른 고민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전쟁이나 외교전에서 언제나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면 유리한 입장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약점을 보이는 측은 상대방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고 말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이 떳떳하고 약점을 잡힐 만한 것이 없으면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요구할 수 있으며 거래에서도 당당히 거래를 할 수가 있는 일이다.

초콜릿을 만드는 원료를 수입하고자 할 때 원료시장을 꽉 잡고 있는 큰손들은 최상급 원료는 스위스로 보내지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중간 정도의 품질을 공급해주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런 원료를 수입하게 된다. 돈을 더 줄 테니 최상급 원료를 사겠다고 하여도 주질 않는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최상급 원료를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초콜릿의 맛을 즐길 수가 있는데 구태여 최상급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최상급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와 흡사하다. 국제 곡류시장에서나 각종 원료 시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질서는 우리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묘한 원칙이 있다.
한편, EU가 GMO곡물의 수입을 허용하지 않아 왔던 이유도 EU 농산물시장의 피해를 미리 막아 보려는 속셈으로 요구했던 사항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가 미국측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식량 자급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너희들 것을 수입하지 않더라도 우리 것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니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EU가 식량자급률이 100%를 상회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야하는데 이때 GMO곡물을 수입해 가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수입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농산물의 GMO 표시를 이행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서 이를 이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다. 24% 내외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로는 하는 수 없이 외국으로부터 76%에 해당하는 농산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어 non-GMO원료를 구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향후 식량 확보상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Non-GMO원료들은 현재 국제시장에서 1.2~1.5배의 가격을 지불해야만 구입을 할 수가 있으며 그 양도 충분하지는 않은 상태다. 그러나 우리가 상당히 많은 양의 non-GMO원료를 구입하고자 하면 국제시장에서는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이 뻔하다.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사겠다는데 가격을 올려 받고 팔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돈을 지불하고라도 그러한 non-GMO 원료를 구입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어떻게 이를 메꾸어 나가야 할 것인가!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하루 빨리 식량자급률을 더 끌어 올려야 떳떳하게 필요한 양과 더불어 가격을 흥정할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약점이 뻔히 노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구매 협상이 매우 불리한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자신이 아닌가? 매년 떨어져 가고 있는 식량자급률에 대하여 일반 소비자들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지만 국가 간의 분쟁에 의해 식량이 무기화된다면 우리나라는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량자급률을 끌어 올리는 문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GMO 표시 문제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고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 중국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 중 선진국은 GMO 표시에 대하여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니깐 적극 참여하리라 예상되나 중국의 경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방정부에서 관리가 소홀한 형편으로 아무런 검사 없이도 non-GMO 허가증을 남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원료단위로 수입하는 경우 말고 수입식품으로 들여오는 경우 진짜로 non-GMO인지를 확인하기가 불가능한 나라에서 수입한 제품이 조금씩 늘어나다 보면 이를 관리하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가짜 non-GMO 식품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로도 아직 가공 식품에서 non-GMO 여부를 정확하게 분석하지도 못하는 실정에서 제조자의 양심에 따라 이를 표시하라고 요구하는 문제가 가능하다고 보겠는가! 우리나라 제조회사들은 성실히 이행하고 수입식품을 제조하는 외국회사가 이를 성실히 지키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를 관리하여야 할는지 답답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GMO 표시제도 도입의 당위성도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러나 이를 대응하기 위한 분석방법의 확립과 기술 그리고 식량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겠는가 고민이 앞선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