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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원산지보다 품질로 승부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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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원산지보다 품질로 승부하는 시대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미국 나파벨리는 포도주 공장과 과수원으로 유명하다. 사막의 날씨를 갖는 캘리포니아는 분명 당도가 높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좋기는 하지만 적절한 강우량이 있어야 하는데 캘리포니아 내륙지역에는 여름철 비 한 방울이 안 오는 사막지역이라서 과수농사에는 한계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민 온 개척자들은 19세기 샌프란시스코 항구 근처의 야산들이 바닷바람과 안개가 자욱이 끼는 것이 과수나무에 수분을 공급해주기에 참으로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곳을 포도주 과수원으로 개발하고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대학에는 포도주과를 만들고 연구비를 만들어 대학에 지원하고 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곳 포도주는 원산지를 속여 파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으며 마치 오늘날 국산 인삼으로 속여 파는 중국산 인삼처럼 그들도 나파벨리에서 생산한 포도주를 프랑스산으로 속여 팔기도 하였다. 품질은 좋은데 아직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76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와인 테이스팅에서 프랑스 최고의 와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나파벨리 와인이 최고 품질의 평가를 받게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의 바롱 필립드 로쉴드회사와 합작으로 1984년 첫 빈티지인 1979년산 오퍼스 원 와인을 세계 최고의 와인 반열에 올려놓은 바 있다.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프랑스 못지않은 포도주 수출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런 미국이 이번에는 커피를 생산하려고 칼을 빼 들었다.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커피원두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다. 최근 세계 각국의 커피 원두의 게놈분석을 완료하고 이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였다. 정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그 만큼 정보 활용에 있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확보한 커피 원두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면 어떤 품종은 어느 지역의 어떤 기후에서 잘 생산이 되며 어떤 품종은 로스팅 공정을 어떠한 조건으로 거쳐서 추출할 때 가장 좋은 향을 만들어 낸다는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어 이를 토대로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커피 중에 하나로 과테말라의 게이샤 품종을 꼽는데 특수 품종으로 생산량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 누구나 즐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독특한 커피를 비롯하여 다양한 커피원두를 미국 태평양 연안의 남쪽 샌 디에고에서부터 연안을 따라 워싱턴 주까지 이르는 산악 지대에서 재배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UC데이비스 대학교에 커피 과정 클래스에는 매 학기 전국에서 5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커피를 어떻게 키우고 가공하고 독특한 향기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연마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매년 증가 추세에 따라 대학에서는 커피 관련 분야의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미국은 커피 원두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뀔 것이고 품질 경쟁에서도 최고의 우위를 차지하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가격 경쟁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듯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는 품질경쟁은 식품분야에서도 첨단 과학을 활용하여 매우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4년 전 우리나라의 인삼씨앗이 대량으로 중국으로 밀반출되어 우리 나라 기후와 토양조건이 유사한 지역에서 비행기로 뿌려져 국산 인삼(장뇌삼)으로 탈바꿈하여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품종을 중국에서 재배한 경우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국내산인지 중국산인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폭발적으로 수입될 중국산 장뇌삼을 국산으로 속여서 파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를 명확히 구분해 낼 수 있는 기술이 확보된바 있으나 이번에는 중국의 식품관련 학회를 통해서 이런 연구기술을 확보한 과학자를 초청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대한민국에서 이를 구별해내지 못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 간의 원산지 개념은 점차 무너져 버릴 것이지만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내고 소비자들로부터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인삼 종주국으로 자부해 왔던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점차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1년에 몇 십편 정도의 논문이 발표되는데 비하여 중국에서는 우리 과학자들이 내놓는 것의 수십 배의 논문들이 쏟아지고 용어 자체도 고려인삼이라는 용어 대신에 아시아인삼이라는 표현으로 자꾸만 고려 인삼을 희석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최고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러한 방향으로 우리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