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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황혼의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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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황혼의 혼밥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입으로 나간 말이 가까운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힐 때가 있다. 침묵이 금인데, 참지 못하고 기어코 내뱉는 백해무익한 말 말 말. 이런 일로 후회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가슴 아픈 경험이 있다.

금실 좋은 노부부가 계셨다. 두 분의 사랑은 애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처럼 천사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두 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셨는데, 어느 날 부인께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한평생 둘이 사랑하다가 갑자기 남겨진 남편에게는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냥 손을 잡아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슬픈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남편분을 다시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셨지만 왠지 외로워 보였고, 간혹 돌아가신 부인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러다가 그분이 "입맛이 없는데다가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힘드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네, 그러시겠지요."하고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먹을거리 전공자의 알량한 의협심과 위아래 가리지 않고 가르치려는 선생 기질이 발동했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지어 드셔야 해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칠 정도로 후회되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성껏 '황혼의 혼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겠는가? 나 스스로 못할 일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분은 "아,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셨다.

필자가 너무도 죄송하게 떠올리는 그 분의 모습은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 부부 중의 한 사람이 떠나면 남은 사람이 겪어야할 삶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이다. 이 '황혼의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①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삶 ②건강하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는 삶 ③아픈 데다가 경제적 여유도 없는 삶 ④아프지만 경제적 여유는 있는 삶 등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분은 다행히 ①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삶에 해당한다. 마음만 추스르면 황혼의 혼밥을 지어 드실 수 있다. ②건강하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는 삶에 해당하는 분들은 특별한 반찬 없이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황혼의 혼밥을 드시거나, 탑골공원 등에서 무료급식을 드실 수 있다. ③아픈데다가 경제적 여유도 없는 삶에 해당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정부든 가족이든 돕지 않으면 황혼의 혼밥은커녕 황혼의 삶도 꾸려나갈 수 없다. ④아프지만 경제적 여유는 있는 삶에 해당한다면, 그나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황혼의 혼밥을 드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에는 미혼이나 비혼에 기인한 청년 1인 가구, 이혼이나 별거에 따른 중년 1인 가구, 사별로 인한 노인 1인 가구가 있다. 이 가운데 노인 1인 가구, 즉 독거노인 가구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독거노인 가구의 가장 큰 걱정은 아픈 것과 경제력 부족이지만, 외롭고 끼니를 챙겨먹기 어려운 황혼의 혼밥 문제도 본질적이면서 실제적인 어려움이다. 그렇다. 언젠가 황혼의 혼밥 대신 따뜻한 집밥을 준비해 그분을 찾아뵙고 죄송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