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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푸틴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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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푸틴의 심리학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외교 전문가다. 두 차례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냈다. 그에게는 애버렐 해리먼이라는 외교 스승이 있었다. 구소련 주재 대사와 상무장관을 역임했다.

미 외교가에선 그를 현자(The Wise man)라고 부른다. 1979년 그는 특사로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했다. 30대 풋내기 상원의원 조 바이든이 동행했다. 그들의 상대는 독재자 티토.
공산권 리더의 한 명으로 서방 세계에선 다루기 힘든 인물로 분류됐다. 해리먼은 티토를 만나기 전 한 가지 사실을 바이든에게 주지시켰다. 외국 지도자에 관한 지식을 그대로 믿지 마라. 직접 만나본 후 판단하라.

티토와 오랜 시간 면담한 바이든은 해리먼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철의 심장을 가진 독재자 티토는 자신의 영웅담을 수다스럽게 늘어놓길 좋아하는 한 명의 노인이었다. 이후 미국은 티토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23일(현지 시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첫 반응은 “놀라지 않았다”였다. 예상했던 일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그는 한 달 전 “내가 프리고진이라면 먹는 것을 조심할 것이다”라며 경고까지 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 연방보안국(FSB·전 KGB) 요원 리트비넨코나 야권 지도자 나발니에게 독성 물질이 든 홍차를 건네 살해하거나 사경을 헤매게 만든 사실을 빗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러 차례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스승 해리먼의 말대로 상대를 판단할 만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졌다. 푸틴은 정적 제거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품이다.

독이 든 홍차를 건네주기도 하고 언론인 폴리콥스카야처럼 총으로 쏘아 죽이기도 했다. 물론 푸틴이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경우처럼 누구나 푸틴 배후설을 의심하지 않는다.

푸틴은 왜 이처럼 잔인할까. 그는 연방보안국 출신이다. 음모와 공작에 익숙한 그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 점에서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을 빼닮았다.

스탈린은 1930년대 70만 명 이상을 반체제로 몰아 처형했다. 구체적인 죄목이 없어도 의심만으로 사람을 죽였다. 스탈린은 심지어 “가장 믿음이 가는 자를 가장 의심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의심 가는 당사자는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처형했다.

스탈린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심각한 폭력에 시달렸다. 어른이 된 스탈린은 스스로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의 이런 성향을 염려한 레닌은 유언을 통해 “스탈린을 서기장에서 해임하라. 그보다 뛰어나지 못할지 모르나 더 참을성 있고, 진실한 동지에게 그 자리를 맡겨야 한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유언장은 스탈린에 의해 공개되지 못하도록 처리됐다.

스탈린은 측근과 경호원들도 의심했다. 스탈린은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가 평소대로 아침에 일어나지 않자 경호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그의 명령 없이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사이 의학적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야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이미 ‘위대한 지도자 동지’는 죽어 가고 있었다. 이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스탈린의 명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리고진은 지난 6월 용병 집단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푸틴의 철권통치가 뿌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푸틴은 프리고진을 제거함으로써 서방에 여전히 러시아를 통제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한편으론 러시아 내부에 ‘배신자에겐 죽음’이라는 무거운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스탈린식 통치 방식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