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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中 SMIC 7나노 반도체 개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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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中 SMIC 7나노 반도체 개발의 의미

채명석 산업1부 부국장
채명석 산업1부 부국장
10여 년 전 중국에서 달걀을 만들어서 시중에 유통했다는 뉴스가 토픽으로 나간 적이 있다.

이 뉴스는 가짜 소주, 가짜 아이스크림, 가짜 분유 등 가짜들이 넘쳐 나는 중국이 살기 위험한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일조했다.
이뿐만 아니다. 가전제품에서 의류, 명품 가방과 액세서리는 물론 최근에는 스텔스 폭격기 등 방산 제품까지…중국은 소위 '짝퉁 천국'으로 불리고 있다. 외국 제품은 물론 자국 내 경쟁사 제품도 버젓이 똑같이 베껴 시장에 내놓는다. “이들에게 창의성은 정말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런데 사실 중국만 짝퉁 제품을 만들었던 게 아니다.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짝퉁 계산기와 전자시계 등 전자제품을 너무나 싼 가격에 생산해 팔았는데, 짝퉁 수출액이 홍콩 전체 수출에서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경제 고도성장기의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용산전자상가가 생기기 전 전자 메카로 불렸던 세운상가는 조립한 ‘짝퉁’ 애플 PC와 IBM PC 등을 조립해 판매했다. 초년 시절, 기자가 동대문 의류 도매시장 내에 은밀하게 있다는 ‘슈퍼 짝퉁’ 명품 가방을 만드는 공장을 취재하기 위해 업무를 마친 후 현장에 가서 일주일여간 수소문한 끝에 만날 기회를 잡았다가 마지막 순간 발각돼 쫓겨난, 낭패를 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몇 해 전 베트남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호찌민 시내 한 쇼핑센터는 ‘짝퉁 시장’이라고 불렸다. 이전의 홍콩, 한국,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짝퉁 제품을 만날 수 있었다.

짝퉁 제품의 범람은 오리지널 제품의 판로를 악화시키고 떨어지는 품질 때문에 기업 이미지도 훼손하므로 공정한 시장경제 조성을 위해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하지만 짝퉁 제품은 나름대로 순기능을 한다. 비싼 명품을 갖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고, 짝퉁을 만드는 기술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고, 중국이 그러하며, 베트남도 그 길을 따라오고 있다.
중국 출장에 동행했던 한 무역업체 회장은 중국의 짝퉁 제품에 관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모든 자연 현상을 만들어 내겠다는 중국인들이 무섭지 않은가? 제조업의 기본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지금 중국인들은 모든 걸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 노하우가 모이고 쌓이면 엄청난 기술로 발전할 수도 있다. 중국 제조업이 그래서 무섭다.”

중국 화웨이가 내놓은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가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를 내장한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 특히 미국이 충격에 빠졌다. 미국이 강력한 제재를 통해 중국의 초미세공정을 적용한 첨단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막고 있는 가운데, 이를 비웃듯이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업체 SMIC가 만들어낸 것이다.

전문가들이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기자는 중국인들이 아주 단순한 생각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절벽 끝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만들어보자”, “어떻게든 해보자”, “하다 보면 방법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결실이다. 모방에 머물던 중국 제조업이 미국 등 서방의 제재로 창조정신·도전정신·개척정신을 키워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재미있는 점은 – 중국인들이 기억하고 있다면 - 반도체 부문에서 화웨이가 참고한 기업이 있다. 바로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한국의 SK하이닉스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병해 탄생한 하이닉스반도체는 2000년대 초반 IT 거품 붕괴,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 인수에 따른 대규모 자금 부족,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통상 공세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신제품 개발 비용을 충당할 여력도 부족했다. 그때 하이닉스반도체는 블루칩·프라임칩·골든칩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경쟁사에 버금가는 미세공정 반도체를 개발‧생산해냈다. 이를 통해 일본과 미국 반도체 업체의 공세를 극복했다.

화웨이와 SMIC의 이번 성과를 보면서 과거 SK하이닉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