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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AI가 서빙을 맡자, 중개인은 진짜 주방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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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AI가 서빙을 맡자, 중개인은 진짜 주방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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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부동산 중개 사무소. 에이전트 A는 오전 9시부터 매물 사진을 정리하고, 고객 문의에 답하고, 계약서를 검토한다.
점심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오후 3시까지 몰두하면 3건의 매물 설명과 고객 응대 5건, 계약서 검토 2건을 처리한다. 이 시각, 같은 동네의 에이전트 B는 같은 시간에 매물 설명 10건, 고객 응대 15건, 계약서 검토 5건을 끝낸다. 차이는 단 하나, 인공지능(AI)을 쓰느냐 안 쓰느냐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중요한 건 AI가 부동산 중개인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틀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식당에서 주방장은 요리에만 집중하고, 서빙은 직원에게 맡기듯이 말이다. 중개인은 거래 성사라는 핵심에 집중하고, 홍보와 설명과 응대는 AI에게 맡기는 구조다.

주방장과 서빙의 분업, 부동산 현장에서 시작되다


대형 식당에서 주방장이 요리를 하고, 손님을 응대하고, 설거지·청소까지 뛰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음식 맛은 떨어지고, 손님 응대는 늦어진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중개인이 거래부터 문의 응대, 자료 작성, 마케팅까지 전부 하면,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하거나 정작 중요한 거래 성사에 집중할 수 없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이 문제를 AI로 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건 AI가 모든 일을 다 하는 게 아니라 '주방'과 '홀'을 명확히 나눴다는 것이다.

'주방'에는 전문 부동산 솔루션이 자리 잡았다. 질로우(Zillow)의 Premier Agent는 고객과 중개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방대한 부동산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래의 시작점을 만든다. Follow Up Boss는 이메일·문자·전화·웹사이트 등 흩어진 고객 정보를 하나로 모아 관리하는 고객관계관리(CRM) 전문 솔루션이다. Curb Hero는 오픈하우스에서 QR코드로 방문자를 체크인시킨다. 그리고 즉시 CRM에 연동해 현장 리드를 놓치지 않게 한다.

Forewarn은 쇼잉 전 고객 신원을 확인해 중개인의 안전을 지키고, Agently는 목표 설정과 성과 추적으로 중개인의 생산성을 관리한다. 이들은 모두 '거래'라는 요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재료와 도구를 제공하는 주방 설비다.

'홀'에는 범용 AI 도구가 배치됐다. 챗GPT는 고객 문의에 답하고, 매물 설명 문구를 작성하고, 마케팅 콘텐츠 초안을 만든다. 서빙 직원이 손님에게 메뉴를 설명하고 주문을 받듯, AI는 고객과의 일상적 소통을 담당한다. Canva는 홍보 이미지와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CapCut은 부동산 매물 소개 영상이나 SNS 콘텐츠를 편집한다. 식당으로 치면 테이블 세팅과 음료 서비스를 맡는 셈이다.

전문 솔루션 중에도 서빙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Pivo Real Estate는 스마트폰으로 360도 투어를 자동 촬영하고, BombBomb은 비디오 이메일로 개인화된 메시지를 보내며, Real Geeks는 CRM과 고객 검색을 결합해 소통 창구를 통합한다. Lab Coat Agents는 커뮤니티 기반 교육과 마케팅 도구를 제공한다.
핵심은 이들이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방장이 요리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서빙 직원이 홀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전문 솔루션이 고객을 연결하면(주문을 받으면), 범용 AI가 설명 자료를 만든다(음식을 내간다). 전문 솔루션이 계약을 관리하면(주방에서 요리하면), 범용 AI가 고객 문의에 답한다(손님을 응대한다).

왜 범용 AI 서빙이 빠르게 퍼지는가

범용 AI가 서빙 역할로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배우기 쉽고, 바로 쓸 수 있고, 비용이 거의 안 들기 때문이다.

전문 부동산 솔루션은 주방 설비를 갖추는 것과 같다. 사용법을 익혀야 하고, 기존 시스템과 연결해야 하며, 비용도 만만치 않다. 대형 중개업소나 프랜차이즈는 도입할 수 있지만, 개인 사무소는 엄두를 못 낸다.

반면 챗GPT는 대화하듯 질문만 하면 된다. '이 주택을 첫 구매자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라고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온다. 서빙 아르바이트생을 하루 만에 교육시킬 수 있는 것처럼, 범용 AI는 즉시 투입 가능하다. Canva로 홍보 이미지를 만드는 데 10분이면 족하다. 예전에는 디자이너에게 맡기느라 사흘이 걸리고, 수백 달러를 들이던 일이다. 미국에서는 부동산 에이전트 절반 이상이 이미 범용 AI를 활용 중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별한 교육도, 큰 비용도 필요 없고, 개인 사무소도 바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방장 혼자 모든 걸 하던 작은 식당에 서빙 직원이 생긴 것과 같은 변화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2026년을 기점으로 이 분업 구조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전문 부동산 솔루션은 거래라는 '요리'에 필요한 데이터 정확성, 법적 안정성, 업무 표준화에 집중한다. 주방 설비가 더 정교해지는 것이다.

범용 AI 도구는 설명, 응대, 콘텐츠 생산이라는 '서빙'에 주력한다. 이는 반복적이면서도 사람의 시간이 많이 드는 영역이다. 고객은 이제 단순 매물 정보만이 아니라 개인 맞춤 설명과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한다. 신혼부부, 재테크 투자자, 은퇴 준비자에게 같은 매물도 다르게 설명해야 한다. 주방에서 같은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내놓듯, 서빙 AI는 고객별 맞춤 응대를 가능하게 한다.

향후 범용 AI 도구는 선택적 보조 수단을 넘어 기본 업무 환경의 일부가 될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 솔루션은 고객 유입, 거래 관리, 현장 운영 같은 구조적 업무는 효율화했지만, 영업 단계에서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개별 소통에는 닿지 못했다. 범용 AI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특정 산업 지식이나 복잡한 시스템 연동 없이도 즉시 활용할 수 있어 개인 에이전트부터 소규모 팀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앱 생태계는 결국 '주방은 전문 솔루션이, 홀은 범용 AI가' 담당하는 구조로 안정화될 전망이다.

주방장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


AI는 메뉴를 설명하고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를 수 있지만, 요리 자체는 못 한다. 부동산으로 치면 자료는 만들지만 고객의 미묘한 감정을 읽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쌓는 건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계약 성사라는 '요리 완성'은 사람의 몫이다. 미국 부동산 중개 시장이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거래는 사람이, 나머지는 AI가' 담당하는 분업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주방장이 홀 서빙까지 뛰어다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주방장은 주방에서, 서빙은 AI가 맡는 시대다. 그리고 이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과 기업이 살아남는다.